메뉴 건너뛰기

close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각 일 병"을 외치고 들어간 술자리가 길어졌을 뿐.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뜨고야 잠에서 깼다. 뒤늦은 반성을 하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신문을 폈다. 일면엔 흑백 증명사진들이 촘촘히 걸려있었다. 천안함 침몰 전사자 46인이었다. 대부분 내 또래였고 한 이는 같은 고향 출신이었다.

뉴스에서 비친 사건을 보며 눈물 흘린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꼽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랄까. 외려 끔찍한 사건들은 많이 보며 자랐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이듬해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그 뿐이던가. 2001년에는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9·11 테러가 있었다. 문제는 TV를 통해 본질보다 현상, 현상보단 이미지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망자수를 보며 "또 죽었다! 또 죽었다!"며 깐죽거리다 어머니에게 혼 난 적도 있다.

 달라이 라마, 마음이 뇌에게 묻다
달라이 라마, 마음이 뇌에게 묻다 ⓒ Yes24 사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좋아한다. '우리는 유전자의 생존기계다'라는 간명한 정리가 사랑이나 그리움 따위보다 인간세상을 더 적나라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박쥐가 피를 토해 또 다른 박쥐에게 주는 행위마저 '이기적 유전자의 지시'라는 냉소. 그 냉소만이 추락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동아줄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불교는 그런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유전자 결정론이 아닌 '마음'의 역할에 주목한다. 책 <달라이 라마, 마음이 뇌에게 묻다>는 말한다.
"고정된 것은 없으며 항상 변화한다."

서구 신경학계는 오랫동안 "뇌만이 뇌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의식마저 뇌 활동의 결과"라고 했다. 뇌는 기능별로 구획되어있으며 신경계의 하부 단위인 뉴런은 재생산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어느 날 달라이 라마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마음 수행을 통해 뇌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 변하는지 증명해보고 싶다는 비주류 신경학자들의 서신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쿨'하게 허락한다.

"만약 어떤 불교적 신념이 과학적 오류가 있거나 진리에 위배된다는 것을 발견하면, 수천 년 동안 인정했다 할지라도 그 신념이나 경전의 가르침을 포기해야 한다."

비주류 신경학자들의 거침없는 도전

1967년 록펠러 대학 노테봄은 카나리아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한다. 카나리아가 다른 새들과 달리 매년 다른 노래를 부른 것에 착안한 것이다. 그는 새로 태어난 카나리아의 뇌에 방사선 물질이 포함된 타미딘을 부착한다. 그 결과 뇌실에서 만들어진 세포가 노래를 통제하는 영역으로 이동해 새로운 뉴런을 만들었다. 이는 주류 신경학계에 "저주와도 같은 반응"을 일으켰다. 뉴런 재생산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예외일 수 있다는 반론에도 답했다. 스웨덴 신경학자 에릭손은 54세에서 72세 사이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죽은 환자에게 특정물질(BruD)을 주사해 해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해마에서 새로 생성된 세포 안에서 특정물질(BrdU)이 반짝 거리며 반응한 것이다. 이는 죽은 순간까지 뇌세포를 만들었다는 증거였다. 그 양도 대단했다. 각종 뇌세포를 만드는 신경줄기세포가 500개에서 1000개에 이르는 뉴런을 매일 생산한 것이다. 뉴런은 재생산되지 않는다는 기존 학계의 입장을 뒤엎는 결과였다.

뇌가 기능별로 구획되어 있다는 입장도 뇌졸중 치료 실험에서 엎어졌다. 마흔 명 중 스물한 명에게 강제운동유발치료를 했다. 정상적인 팔을 묶고 장애를 입은 팔을 억지로 사용하도록 했다. 2주가 지나갈 때 쯤 치료받은 이들은 대조군에 비해 큰 효과를 나타냈고 2년 후에는 거의 정상에 가까워졌다. 비록 뇌졸중으로 특정 운동영역이 죽었지만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다른 영역이 대신 활성화한 것이다. 뇌를 재조직화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

마음 쓰기도 훈련이다

하지만 훈련이 말처럼 쉽지 않다. '주의 집중'이 필요하고 특히 강제운동유발치료는 참여자들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주어 중도 포기하게끔 했다. 책은 '마음 챙김 명상법(Mindfulness meditation)'을 소개한다. 공중에서 현란한 회전을 하는 다이빙 선수들처럼 이미지 트레이닝만으로도 좋은 훈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강박증이나 우울증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이 명상법은 수련을 할 때 의식은 완전히 깨어 있어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리지만 판단은 하지 않은 채 자기 내면의 경험을 관찰한다. 뇌가 야기하는 생각과 감정들이 그냥 흘러가도록 하면서 모든 것이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즉, 자신의 마음 밖에 서게 되는 셈이다."

사실 말로는 쉽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음은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온다. 강박이나 분노가 치달을 때 "이건 내 생각이 아니고 단지 고장 난 뇌 회로가 배출한 쓰레기야"라고 생각하는 것.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흘러 보내면서 객관적으로 관찰하라고 한다. 실제 라마승들은 명상을 할 때 행복과 관련된 좌측 전전두엽에서 굉장히 활발한 반응이 일어난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명상을 하지 않을 때도 이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여기에 '행복 기준점'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튕겼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고무줄처럼 행복에도 기준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처럼 꾸준한 훈련을 통해 이 기준점을 확장하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불쌍한 사람에게 느끼는 연민. 그리고 '모든 중생을 고통으로 구제'하는 자비심을 키우라고 한다. 또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내가 돕겠다"는 적극적인 의미의 '대자비' 경지를 말한다.

뭐 그것이 굳이 불교뿐이겠는가. 다리를 저는 도둑고양이서부터 무참히 파헤쳐진 강에 멸종위기 생물들까지 연민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실천의 경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공짜 점심'이 없듯 착한 마음도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모처럼 4대강 사업으로 4대 종단이 한 자리에 모였다. 윤리에 대한 그들의 내공 역시 엄청날 거다. 나 역시 차분히 마음 수행을 해야겠다. 대자비의 경지, 나라고 못 할 거 뭐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게재



달라이 라마, 마음이 뇌에게 묻다

샤론 베글리 지음, 김종옥.이성동 옮김, 북섬(2008)


#달라이 라마#마음이 뇌에게 묻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울트레블러17 대표 인스타그램 @rreal_la 전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오프로드 야생온천>,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