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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어린이날엔 아이들 셋과 함께 인천 월미도에 다녀왔다. 그때 아이들과 약속하기로, 내년 5월에도 어디론가 가자고 했다. 헌데 올해 5월 어린이날을 맞이하면서,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내가 속한 지방회에서는 제주도로 2박3일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갔지만, 경비가 부족한 나는 그 모임에 동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어린이대공원이었다. 물론 어린이날 당일에는 너무 넘쳐 날 것 같아, 그 전날 다녀왔다. 세 아이들은 그것도 좋다며 어찌나 신나 하던지, 그 전날 밤잠을 설친 듯 했다. 아내도 서울에 온 지 몇 년이 되었어도 한 번도 대공원에 가보지 못했다며, 아이들보다도 더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우리 식구들은 마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구이역에서 갈아타 곧장 어린이대공원역에서 내렸다.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그 짧은 전철 역 안에서 아이들은 곯아 떨어졌다. 어제 저녁 기대감에 잠을 자지 못한 탓이었다. 이어 대공원역에서 내린 뒤에는 이정표를 따라가며 계단을 찾아 올라갔다.

 

"어, 저기 산이 보이네."

"그래, 저 산을 올라가면 어린이대공원이다."

"아빠, 진짜 산이에요?"

"응, 한 번 올라가 보자."

 

아이들은 어린이대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그려져 있는 산을 보고서, 그것이 등반하여 올라가는 산인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초등학교에 이제 갓 입학한 첫째 딸 민주 눈에도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나는 녀석들이 말하는 말에 맞장구를 쳐 주려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가까울수록 계단임이 드러나자, 첫째 딸아이는 실망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그 아이디어는 광고천제 이제석한테서 얻은 것 같았다.

 

그 계단에서 어린이대공원입구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생각한 정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계획한 것은 정문 입구에서부터 쭉 걸어나와 동물원과 식물원을 구경하고, 그리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코스였다. 그런데 처음 발을 디딘 곳이 후문 쪽이었으니, 아내에게 뭐라고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래도 후문 입구에서부터 예쁜 꽃들이 생기발랄하게 피어 있었고, 그 후문을 통해 들어오는 여러 아이들이 파워레인저 엔진포스 풍선 놀잇감을 한 아름씩 들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되자, 아내와 아이들도 평정심을 찾게 되었다. 만일 그곳에 어른들과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더 큰 불평을 들었을지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꼬리부터 맛보는 것이 더 좋은 맛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놨을지 모르겠다.

 

그곳에서부터 우리는 연꽃과 인공 나비, 그리고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나무 계단 길을 둘러, 분수대 앞쪽으로 걸어왔다. 예전에 본 분수대에서는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오르는 분수대를 보며 감격했는데, 우리 식구들이 찾은 그 시각에는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실망감이 없지 않았지만, 곧장 식물원과 동물원 이야기를 꺼내며 그 실망감을 달래주었다.

 

"아빠, 저기 놀이터에 가요."

"아니야, 이따가 식물원과 동물원을 보고 나오면서 갈거야."

"그래요?"

 

아이들 눈에는 눈에 맨 먼저 들어오는 것이 제일인 듯 했다. 세 녀석들은 우선 당장 많은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 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곧장 아이들을 식물원과 동물원으로 이끌었다. 물론 식물원은 모두 둘러보지 못하고, 작은 곳 한 곳만 둘러본 뒤에, 원숭이부터 시작되는 동물원 입구로 올라갔다.

 

"민주야. 원숭이 똥구멍은 뭐라고 그러지."

"원숭이 똥구멍은 빨게."

"근데 왜 원숭이 똥구멍이 안 빨갛지?"

"…."

"저기, 저 나무 위에 계속 올라가 있잖아."

"아, 이제 알겠다. 원숭이가 나무에 비비니까 똥구멍이 꺼멓게 된 거죠."

"그렇지, 우리 민주는 역시 똑똑해. 얘들아, 저기 코끼리야."

"어디, 어디. 우와, 저기 코끼리 있다."

 

원숭이를 본 뒤에, 코끼리를, 그리고 사자랑, 표범이랑, 여우랑, 그곳 한 바퀴를 돌고, 곧장 놀이터로 갔다. 가는 도중에 어찌나 아이들이 풍선 놀이감을 사 주라고 울고불고 하는지, 나는 주머니에서 만 원 짜리 한 장을 꺼내 똑같이 세 개를 사주었다.

 

그것은 아이들을 편애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려는 태도였다. 사실 그날 새벽, 성경을 통해 이삭과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편애한 것을 살펴보았다. 아버지는 에서를 끼고 돌면서 별미를 만들어 축복하도록 했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가로 채 야곱에게 시켰다. 결국 그 편애와 이기적인 사랑으로 인해 두 형제는 갈라지게 되었다. 그만큼 어린 아이들을 골고루 사랑하는 것은 부모에게 중요한 몫이자 바른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놀이터에 다다른 아이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했다. 민주는 밧줄처럼 된 것들을 타고 하늘 끝까지 올라가려 했고, 민웅이는 우주선처럼 생긴 미끄럼틀을 좋아했고, 그리고 민혁이는 누나를 따라다니며 여러 놀이터를 돌고 돌았다. 늘 아쉬운 것이 있는데, 중간에 낀 민웅이가 안쓰럽다는 사실이다. 민주와 민혁이는 절친한 우애를 과시하는데, 민웅이가 약간은 그 틈에서 서운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그것을 보완해 주려고 하는데, 그럴 때면 또 첫째와 셋째가 그 틈을 놔 주지 않으니, 그도 만만치 않는 과제다.

 

2010년 5월 어린이날은, 그렇게 해서 어린이대공원을 다녀왔다. 사실 그 전날에 가긴 했지만, 그것이 우리 집 세 아이들에게 준 어린이날 선물이지 않나 싶다. 물론 어린이대공원에 다녀온 것보다 더 큰 선물이 따로 있는데, 그것은 그날 오후 늦게 안과에 가서 발견한 사실이다.

 

사실 내 눈이 가렵다는 이유로 그곳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첫째와 둘째 아이에게 원시성 난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 가는데 여러 것들을 구경시켜 주는 것도 크나큰 즐거움이겠지만, 그것들을 맘껏 보고 느끼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 주는 것도 더 좋은 선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0년 5월 어린이날은 우리 집 세 아이들에게 더욱 뜻있는 날이지 않나 싶었다. 무언가를 원하는 대로 맘껏 채워주고 먹여주는 것보다도 무언가를 볼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주었고, 또 녀석들이 앞으로 무언가를 자세히 보며 스스로 뭔가를 깊이 있게 깨달을 수 있도록 그 눈도 터 주려 했으니, 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 형편으로서 이정도면 좋지 않으랴 싶었다.

 


태그:#2010년 어린이날, #어린이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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