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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화가 브뢰겔이 그린 <바벨탑>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이후 수많은 <바벨탑> 그림의 시초가 된다.
▲ 피터 브뢰겔 <바벨탑>(1563) 네덜란드 화가 브뢰겔이 그린 <바벨탑>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이후 수많은 <바벨탑> 그림의 시초가 된다.


주께서는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백성으로서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주께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주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창세기 11장 5~9절)

페테르 빈터호프 슈푸르크의 <바벨탑에 갇힌 세계화>(배명자 옮김, 21세기북스 펴냄)는 독일에서 미디어심리학과 조직심리학을 가르치는 저자가 피터 브뢰겔의 유명한 그림 <바벨탑>(1563)을 통해 세계화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은 올해 4월에 나온 뜨끈뜨끈한 신간으로 세밀하고 풍자적인 묘사에 일가견이 있는 브뢰겔의 <바벨탑>에 등장하는 인물, 장면의 특징들을 12가지로 나누어 각각의 주제와 세계화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

부제가 '미처 몰랐던 세계화에 대한 12가지 진실'인만큼 저자는 세계화의 폐해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한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각국을 동질화시키고 세계를 더욱 좁게 만들고 있는 세계화는 현대판 바벨탑이며, 따라서 종국에는 바벨탑으로 인해 온 땅에 흩어지도록 벌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화는 우리의 삶을 파괴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꽃피기 시작한 16세기에 나온 <바벨탑>

저자는 브뢰겔의 <바벨탑>을 통해 세계화가 몰고올 파국에 대해 경고한다.
▲ <바벨탑에 갇힌 세계화>, 슈푸르크, 21세기북스 저자는 브뢰겔의 <바벨탑>을 통해 세계화가 몰고올 파국에 대해 경고한다.
ⓒ 손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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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슈푸르크는 우선 브뢰겔이 살았던 16세기 당시의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16세기 네덜란드는 무역국으로 발돋음하면서 황금기에 접어들었다. 이로써 네덜란드의 중산층 가정에는 진귀한 가구, 예술품이 들어서게 되고 '돈'을 축적하게 된다. 때를 같이 하여 사람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종교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로마 가톨릭교회를 비판한 종교 개혁자인 에라스무스를 시작으로 칼뱅, 루터가 등장하면서 파급된 '프로티스탄티즘 윤리'는 자연스럽게 직업에의 충실, 부의 축적이 올바른 가치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베버의 책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책은 <바벨탑>에 나타난 성직자, 뚱뚱한 건축행정관, 반석에 난 균열, 똥 누는 일꾼, 잠자는 사람들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설교하는 경제학자, 살찐 고급 노동자, 균열된 사회, 자기애에 빠진 사람들, 인간적인 노동 윤리에의 향수 등을 읽어낸다. 특히 심리학자인만큼 세계화가 개인 심리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부분이 탁월하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21세기 또 하나의 성격으로 '자기애'를 들 수 있으며, 이를 발전시켜 21세기가 만들어낸 사회성격을 '히스트리오닉'이라 명명한다.

그는 "관계불안이 낳은 히스트리오닉 성격이 바로 서비스 사회에 적합한 사회성격(p.185)"이라며 히스트리오닉의 탄생배경을 설명한다. 덧붙여 알렝 에른베르를 언급하면서 아래와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히스트리오닉 성격을 묘사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알렝 에른베르는 <지친 자아>에서 "회사, 학교, 가족 등을 보면 세계는 새로운 규칙을 갖는다. 더이상 순종, 훈육, 도덕성이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유연성, 변화, 빠른 반응과 적응이 중요하다. 자기제어, 심리와 감정의 유연성, 거래 능력이 요구된다. 모두가 세계에 지속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그런데 세계는 지속성이 없고 불안정하며 일시적이다. 이리저리 갈팡질팡 한다.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이런 변화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고 정리했다.

그리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이런 세계에 딱 맞는 사회성격이 형성되었다. 히스트리오닉은 가장 이상적인 전제조건을 갖추었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기껏해야 미디어의 연출에 잠시나마 정치적 행동주의를 보이는, 평소에는 사회참여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미래의 시민인양 자신을 연출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연결불안의 토양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p.200)

연결불안으로 나타나는 히스트리오닉 성격

요즘 들어 대중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하여 학계에서는 '다중'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쓰고 있는데, 다중의 특징이 이와 유사하다. 진보적인 정치적 행동주의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해 우파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고 표심에서는 우익에 손을 들어주는 등 감을 잡을 수 없는 특징을 가진다. 물론 네그리나 하트가 썼던 '다중' 개념에는 진화한 대중의 형태라는 좀 더 희망적인 의미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자기애를 보이는 사람은 거대한 환상이나 자괴감 징후를 보이고 타인의 인정과 감탄에 과도하게 연연한다. 더 나아가 주변 사람에 대한 감정이입 능력이 없고 그들과 착취관계를 맺으며 질투심에 불탄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오직 선과 악 두 종류로만 인식한다. 이런 특징을 고려할 때 정치가는 확실히 자기애가 높다. (p.217)

슈푸르크는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난 현대인들이 자기애가 높고 자기애를 가장 잘 실현하는 사람의 대표적인 예로 정치가를 들고 있다. 21세기 현대인의 성격 중 자기애적 특질과 함께 언급되는 '히스트리오닉'은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해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으로 '연결불안'이 가장 큰 요인이다. 

연결불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경제 세계화는 특히 개인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직장에서 그리고 직장 때문에 겪는 불확실한 연결은 인간의 영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불확실한 연결을 매일 경험하면서 인간의 영혼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그에 적합한 성격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런 성격형성이 사회적 보편으로 자리잡으면서 새로운 사회 성격이 형성된다.

오늘날 사회성격은 어떠한가? 쉽게 흥분하고 쉽게 변하며 단조롭고 피상적이고 과장되고 비주체적이다. 이런 성격은 자주 공격적인 감정폭발을 보이고 절망적인 우울로 이어진다. 자기중심적이고 피상적이며 직관적이다. 구조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인상을 중요하게 여긴다. 오랫동안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낭만적인 가치관으로 일상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감동하고 쉽게 영향을 받는다. 활기차고 다채로우며 감정을 충전하고 자극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재빨리 모방한다. 강력한 경험 욕구를 바탕으로 자극적인 외적 사건을 쫓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내적 공허를 채운다. 육체적 매력과 외모에 몹시 신경을 쓴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조종하거나 공격적으로 도구화한다. 모든 활동에서 자신의 성적 매력을 활용하고 도움이 된다면 질병도 연출한다. 언제나 관심의 중심에 서려고 애쓴다. 한마디로 '히스트리오닉'이다. (p.220)

세계화는 '평평'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어떤가? 대부분의 현대인이 공감하는 자신의 성격이 아닌가?

여기에 동의한다면 '히스트리오닉'을 사회성격으로 분류한 저자의 말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성격이 세계화의 영향임을 또한 수긍해야 할 것이다. 고로 세계화로 인해 현대인의 성격이 '히스트리오닉' 하다는 의미다. 최근 늘어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우발적인 폭력, 범죄 역시 히스트리오닉한 사회성격의 한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세계화에 대한 저서는 이미 꽤 많이 나왔다. <세계는 평평하다>를 쓴 우파의 대표적 이론가 토머스 프리드먼이나, 자본주의 승리의 팡빠레를 이르게 터트린 <역사의 종말>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이 세계화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나타내는 반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진영도 만만치 않다. 특히 자본의 세계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최근들어 높아진 편이다. 지난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자본에 세금을 매기는 '토빈세'도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바벨탑에 갇힌 세계화>는 지금까지 나온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관련 책들과 유사하게 세계화가 가져온 빈부격차, 노동을 위한 노동, 낮아진 삶의 질 등을 다루면서도 이로 인한 인간의 심리학적 측면을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 책들과는 거리를 유지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바벨탑 이야기가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세계는 결코 '평평하지' 않으며,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화를 불러오기 마련이라는 저자의 경고는 결코 다가올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수백년의 역사를 통해 그리고 현재에는 더욱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바벨탑에 갇힌 세계화 - 미처 몰랐던 세계화에 대한 열두 가지 진실

페테르 빈터호프 슈푸르크 지음, 배명자 옮김, 21세기북스(2010)


태그:#바벨탑에 갇힌 세계화, #브뢰겔, #바벨탑, #슈푸르크, #프로탄티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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