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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계절 감각은 점점 무뎌지나 봅니다. 세월이 감정을 무뎌지게 한 탓이겠지요. 언제 부턴가 봄 냄새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먹고 사는 일 때문에 바쁜 탓도 있겠지요.

 

조변석개하는 날씨 탓도 있을 겁니다. 꽃샘추위도 아닌 것이 갑자기 맹위를 떨치며 봄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을 종종 봅니다.

 

얼굴에 여드름이 듬성듬성 했던 사춘기 때는 노란 개나리꽃만 보아도 마음이 싱숭생숭 했습니다. 노란 셔츠를 단정하게 차려 입은 내 또래 소녀를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요. 

 

첫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낮 부끄러운 풋 사랑도 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핀 봄에 찾아 왔습니다. 봄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가지고 있는 소녀였습니다. 교정을 노랗게 물들인 개나리꽃 사이를 함께 걷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그 소녀도 나를 첫 사랑 소년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랑 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또는 본능적으로 하는 어떤 행동도 가슴이 너무 콩닥거려서 하지 못 했거든요. 손을 잡는다거나 뽀뽀를 한다거나 아니면 좋아 한다고 고백한다거나 하는 그런......!

 

사춘기가 지나고 난 후에는 목련꽃을 보며 봄을 느꼈습니다. 입대 할 때 날 배웅 해준 목련꽃이 너무 예뻐서 그 이후로는 목련꽃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90년 5월, 논산 훈련소 들머리에 하얀 목련꽃이 만발 했습니다. 고무신 거꾸로 신을 만한 애인도 없이 입대한 처지라 손을 흔들어 주며 아쉬워 해줄 만한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훈련소에 들어서자마자 목련이 나를 보며 방긋 웃는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하마터면 나도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 뻔 했습니다. 꽃길이 끝날 때 마음속으로 손을 흔들며 꼭 널 만나러 다시 한 번 올 거라 다짐 했지요. 

 

하지만 그 후로 봄을 잊어 버렸습니다. 예쁘게 웃던 논산 훈련소 목련꽃도 다시 보질 못했어요. 누군가 봄이 왔다고 귀띔 해 줘야 겨우 알아차릴 정도 였습니다. 바쁘다 보니, 생활에 쫒기다 보니 그런 것이라 생각 했습니다.

 

며칠 전 봄을 다시 찾았습니다.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생활에 쫒기며 살고 있지만  봄은 다시 내 곁에 돌아왔습니다. 노란 개나리를 보며, 하얀 목련을 보며 봄이 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제는 나이 탓도, 바쁜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두 핑계였을 뿐입니다. 바로 내 마음이 문제 였습니다. 봄을 끌어안고 춤출 만한 여유가 내 마음속에 없었던 것입니다.

 

겨우내 먼지가 뽀얗게 묻어 있던 낡은 자전거를 꺼내서 먼지를 툭툭 턴 다음 끌고 나왔습니다. 바쁜 출근 시간에 한가하게 웬 자전거냐며 아내가 눈을 흘겼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 했습니다.

 

 

안양천변에는 참 고운 꽃들이 많았습니다. 사춘기 때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개나리도 있고 박박 머리로 입대하는 내게 예쁜 미소를 보내준 목련꽃도 있었습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어슴푸레 느낄 수 이었습니다. 사춘기 때 노란 셔츠를 입은 내 또래 소녀를 만났을 때처럼.

 

기뻤습니다. 봄이 내 곁에 다시 돌아 온 사실이 소름끼치도록 좋았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콩닥 거렸던 것이지요. 결국 세월이 내 감각을 무뎌지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몸도 마음도 너무 빨리 달리다 보니 개나리도 목련꽃도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느릿느릿 살고 싶어서 자전거를 탓더니 봄이 내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봄#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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