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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천재 이제석〉
▲ 겉그림 〈광고천재 이제석〉
ⓒ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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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루저'였다가 세계를 놀래킨 간판쟁이가 있다. 이제석이 바로 그다. 그는 대구에 있는 협성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불량학생으로 낙인 찍혔었다. 그런 그가 막판 스퍼트 300점과 함께 그림 하나로 계명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했고, 수석으로 졸업을 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그런 실력파였는데도, 그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스펙 때문에 대기업 광고회사들의 문턱을 넘을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한국에서는 1등 학벌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실감했던 것이다. 더욱이 2005년 당시 스스로 창업한 간판집 일이 동네 명함집 아저씨에게 밀린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그 때문에 세계 최고 광고쟁이들이 모인다는 뉴욕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가 쓴 <광고천재 이제석>에는 그가 세계적인 거물급 간판쟁이가 되기까지 어떤 역경을 헤집고 나갔는지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는 단돈 500달러와 함께 짐이 든 가방 하나를 메고 뉴옥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chool of Visual Arts)에 몸을 맡겼다. 그곳은 프랭크 안셀모를 비롯해 잭 마리우치, 리처드 와일드 등 세계의 광고계를 이끌어가는 걸출한 스타들이 주름잡고 서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유색인들이 겪어야 하는 냉대와 모멸을 이겨내면서도, 오직 비주얼 하나로 승부를 걸기로 결심했다. 이승엽이 때리는 홈런 한 방에는 그만큼의 피와 땀이 들어가 있듯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오직 그림 하나로 승부수를 띄우려 노력했던 것이다. 그만큼 그는 그림 하나 하나에 명확한 메시지를 담으려 했고, 주제도 남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가려 애를 썼다.

2007년, 급기야 그는 수업시간에 만든 '굴뚝총'이란 작품으로 원쇼 광고제 공모전에서 최고상인 금상을 받았다. 그것을 계기로 유학 온 지 10개월 만에 전 세계인들이 선망하는 꿈의 궁전인 'JWT NEW YORK'에 인턴으로 출근하게 되었고, 2008년 1월엔 몸값이 수직으로 상승하여 세계적인 광고대행사인 FCB에 안착했다. 1년 뒤엔 '빅앤트'란 회사로 자리를 옮겨 연봉도 7만 달러를 받게 되었으니, 단돈 500달러와 가방 하나로 뉴욕에 오던 때와는 전혀 다른 성공신화를 일군 것이다.

"인터넷에 이제석을 검색하면 '광고천재'라는 수식어가 뜬다. 내가 광고 천재라고? 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아마 내 실패작들을 모으면 적어도 트럭 몇 대 분량은 나올 거다. 그걸 알면 나를 '광고 바보'라고 부를 사람 많을 거다. 지금도 뉴욕의 내 방에 가면 큼지막한 캐비닛이 있다. 거기에는 아이디어 메모한 것과 취재한 자료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다. 캐비닛이 아이들의 무덤은 아니다. 훗날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SF 영화 속 냉동인간들 같다고 보면 된다."(153쪽)

그렇다. 오늘날 이제석을 있게 한 것은 남다른 게 아니었다. 모든 성공 스토리들이 그렇듯이 그의 성공신화도 피와 땀으로 이룬 결과였다. 중학교 때부터 불량학생으로 낙인 찍혀 선생에게 얻어터질 때에도 오직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고, 대학생 때에도 그림에 미쳐 있었고, 뉴욕 SVA에서도 온통 그림뿐이었다. 그것이 오늘날 그를 있게 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그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어내고 있을까? 그가 만들어내는 기발한 아이디어들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것은 세상을 평면으로 보지 않고 입체적으로 보는 데서, 세상을 똑같은 룰로 보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룰로 보는 데서, 자기 안에 있는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길을 찾는 데서, 그 같은 아이디어들을 얻어내고 있다.

이른바 광고계에서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클리오 어워드 동상 수상작인 "누군가에게 이 계단은 에베레스트 산입니다"라는 것도 그랬단다. 그 광고는 몸집이 뚱뚱한 흑인 할머니가 지하철에 놓여 있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뱉은 불만을 듣고 난 뒤에, 그가 착안하여 만들어낸 광고였단다. 또 2009년 영남일보 글로벌 캠페인의 일환으로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홍보를 위해 만든 "오늘밤 누군가는 이 신문을 이불로 써야 합니다"는 광고도 그랬단다.

"나는 세상으로 나아갈 때 자신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어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야 뒤집기도, 한판승도 가능하다. 내가 타이슨과 주먹으로 싸울 수는 없다. 타이슨과 싸울 때는 손가락으로 두 눈을 찌르면 천하의 타이슨도 꽥! 불리한 룰이 있다면 유리하게 룰을 바꾸거나 새로운 룰을 만들어야 한다. 룰을 바꾸지 않으면 타이슨에게 맞아 죽는다."(215쪽)

2009년 5월 그는 '이제석 광고연구소'라는 문을 열었단다. 그것은 오직 '홍익인간'을 실현해 보고픈 욕심에서란다. 착한 광고를 하면 살 수 없다는 풍토를 바꿔 보려고, 소비자를 배려하는 광고문화가 없는 것을 바꿔 보려고, "광고는 거짓말이다"는 이미지를 고쳐 보려고 그걸 세웠다고 한다. 진정으로 사람과 세상과 피조세계가 화평케 될 수 있는 길을 꿈꾸며, 비주얼 하나로 공공의 유익을 창출할 생각에서 그것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가 가려는 길을 함께 지켜봐 주길 바란다.


광고천재 이제석 - 세계를 놀래킨 간판쟁이의 필살 아이디어, 개정판

이제석 지음, 학고재(2014)


태그:#이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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