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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의 외출' 닷새째인 9일(금요일)은 초등학교, 중학교 1년 선배이자 교우였던 신상규 변호사를 만나는 날이었다.

 

79년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81년 수원지검으로 첫 발령을 받아, 2009년 7월14일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마지막으로, 28년 검사 생활을 마친 신 변호사는 작년 9월부터 서울 강남에 있는 법무법인 '동인'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신 변호사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서울에서 다녔다. 그래서 한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70년대 들어 함께 등산을 다니며 호연지기를 기르기도 했다. 초임검사 발령을 받아 군산을 떠날 때까지 같은 교회를 다니며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으며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중신아비'로 나섰던 추억도 얘깃거리로 남아 있다.

 

이날도 전날 대공원에 갈 때처럼 넷이서 조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막내 누님 집을 나섰는데, 평택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금정역에서 내려 4호선으로 갈아타고 사당역에서 헤어졌다. 매형과 누님들 목적지는 충무로였고, 나는 강남이었기 때문이다.

 

딸(28세)에게 전화해서 11시 30분에 신 변호사와 만나기로 했다며 찾아오는 길을 알려주었더니 12시 30분까지 오겠다고 했다. 객지에서 외롭게 지내며, 아버지와 40년 가까이 교분을 쌓아온 변호사를 알아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양해를 구했었다.

 

사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강남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가니까 신 변호사가 출근하는 법무법인 '동인' 사무실이 있는 빌딩이 보여 17층으로 올라가니까 프런트에서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친절하게 맞이했다.

 

신상규 변호사를 만나러 왔다니까, 확인해보더니 앞서며 안내했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깔끔하게 정돈된 실내 분위기가 부담을 느끼게 했다. 깨끗이 청소해놓은 부잣집 안방에 들어갔을 때 양말에 흙이라도 묻어 있는지 살펴보던 것처럼.

 

신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실에 들어서니까 신 변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갑게 손을 잡았다. 왜 혼자 왔느냐고 묻기에 딸은 조금 후에 올 것이라고 했다. 점심은 초밥이 어떻겠냐고 해서 좋다니까, 전화를 걸더니 12시 30분에 가겠다며 3인분을 예약했다.

 

 

사무실 책장에는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명패와 재직기념패 등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특히 광주지검장에서 인천 지검장으로 영전을 축하하는 재직기념패(2007.3-2008.3)와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취임(2009.3) 축하 기념패가 검사 재직 28년의 회한과 영예를 설명하는 듯했다.   

 

아래 칸에는 성경과 등산관련 책들이 10권 넘게 꽂혀 있었는데 아련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산에서 찍은 기념 사진과 스냅사진이 여러장 남아 있을 정도로 등산 관련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고, 10.26과 5.18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던 80년을 전후해 교회에서 만나 세상을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아가씨가 내온 차를 마시며 25년 가까이 묶어두었던 얘기보따리를 풀었는데, 신 변호사는 다섯 살 연하의 부인과 88세 노모를 모시고 있었다. 아들 둘을 두었는데, 큰아들(82년생)은 사관학교 졸업 후 대위로 근무 중이고, 둘째(83년생)는 학교에 다니느라 늦게 군대에 갔다고 했다. 

 

얘기 듣는 재미에 빠져 있는데 휴대전화기가 울려 받았더니 30분쯤 늦겠다는 딸의 전화였다. 첫 약속이라서 난처했는데, 앞에서 지켜보던 신 변호사가 눈치를 채고 식사를 1시로 늦추라는 전화를 해주었다. 고마웠다.

 

'수사검사 출신이라 다른 데가 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부산지검 마약전담 검사 시절(90년) 80억 대 히로뽕 밀매조직 두목과 운반책, 수금책 등을 검거하고 TV 뉴스에서 인터뷰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해서 얘기를 꺼냈더니 주로 수사와 마약전담 검사를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신 변호사와 대면은 24년 만이었다. 초임시절 군산지청(1985년)에 재직하다 영전해서 떠날 때 인사를 왔는데도 만나지 못했다. 아내 얘기를 듣고서야 가게에 다녀간 것을 알았는데, 찾아와준 신 검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후로는 인사이동 뉴스를 접하면 축전을 띄우거나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으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촌놈'인 것을 확인했던 점심시간

 

1시쯤 되니까 딸이 도착해서 인사를 시키고 잠시 대화를 나누다 식당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지하통로를 이용했다. 지하 6층까지 작은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며 놀라니까 딸은 지하에서 살면 계절 감각이 사라진다며 달갑잖은 표정을 지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서울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선생님을 따라다니던 내 모습이 그려지면서 "내가 촌놈은 촌놈이로구나!" 하는 소리가 입속에서 맴돌며 미소가 지어졌다. 고층 빌딩 사이에 지하로 연결된 통로를 처음 걸어봤기 때문이었다.

 

밑창이 돼지 발톱보다 두꺼운 신발에, 청바지 차림의 내 모습이 반짝이는 바닥에 비치는 것 같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며 걷는 내 모습을 보고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식당에 들어서니까 곱게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안내했는데, 피아노반주가 잔잔하게 퍼지면서 무게가 느껴졌다. 차림표를 보니까 1인분에 2만 5천 원 하는 초밥이 기본이었는데 주문을 하면서도 조금은 미안했다.

 

가벼운 잡담을 나누며 식사를 하는데 신 변호사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집에서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였는데 "전부 가짜예요, 가짜! 제가 확인해보겠으니 안심하세요!"하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군 복무 중인 둘째 아들이었는데, 통화를 마친 신 변호사는 집으로 전화하며 어이없어했다. 2분도 안되어 '사기전화'임이 밝혀졌는데, '둘째아들을 보호하고 있으니 급히 돈을 준비하라'는 협박에 놀란 어머니가 전화했던 모양이었다. 검사를 그만두니까 그런 전화도 걸려오는 모양이라며 한바탕 웃었다.

 

2시쯤 되니까 막내 매형이 점심이 끝나면 남산에 있는 한옥마을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마침 신 변호사도 미팅이 있다고 해서, 추석 때 성묘하러 군산에 내려오면 다른 친구와도 연락해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덧붙이는 글 | 2004년 가을 이후 6년 만에 이루어진 외출에서 의왕 철도 박물관, 서울대공원, 옛 친구와의 만남, 남산 한옥마을 탐방, 강정구 교수 강의 참석, 수원 화성 시티투어 등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6-7회 정도로 나눠 담아보려고 합니다. 


#여행#신상규#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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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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