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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굴 가이드>의 김미월의 첫 번째 장편소설 <여덟 번째 방>은 이 시대 청춘들에게 노골적으로 묻는다. "꿈이 무엇이냐?"고. 소설의 주인공이자 갓 제대한 스물다섯 살 휴학생 오영대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좋아했던 누나가 물어올 때도 침묵했고,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가 물어올 때도 웅얼거릴 뿐이었다. 영대는 속으로 반문하고 싶을 뿐이다. 도대체 왜 꿈을 묻는 것이냐고.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오영대는 그런 질문들을 받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껏 살아온 시간이 만족스러웠는지, 행복했는지를. 오영대는 선뜻 '예스'라고 말할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 말대로 "거절보다 수락이 쉬웠"기 때문에 남들이 권하는 대로 살았고 "수락보다 쉬운 게 포기"이기에 그것들을 금방 포기했었다. 오영대는 무엇이든 끝까지 해본 적이 없다. 사랑마저도 그랬다.

 

좋아하는 누나로부터 "니가 아직도 고등학생인 줄 아니? 니 인생에 좀 진지해져봐.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 찾아야지. 인생은 남이 대신 살아 주는 게 아니니까"라는 말을 듣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과 수치심을 느낀 오영대는 독립을 결심한다. 넉넉한 집안 살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중에 있던 20만 원을 갖고 방을 구하러 나서기로 한다. 그래서 찾은 방이 '잠만 자는 방'이다. 방이라고 정의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방이지만 어쨌든 오영대는 그렇게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독립을 선언했다고 해서 정말 독립을 한 걸까?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꿈보다 중요한 것이 돈이다. 그는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별다른 재주 없는 오영대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생길 리는 만무하다. 누가 보더라도 그의 독립 선언은 흐지부지해질 것처럼 보인다. 그러던 중에 오영대는 자신의 이삿짐에 다른 사람의 짐이 섞였다는 걸 안다. 박스를 풀어 보니 노트들이 있다. 누군가의 일기가 담긴 노트였다. 오영대는 그것을 열어본다. 김지영이라는 이름의, 오영대와 어느 정도 비슷해 보이는, 어느 청춘이 남긴 삶의 기록이었다.

 

<여덟 번째 방>에 등장하는 청춘들은 상처받은 어른아이들이다. 88만원 세대를 연상케 하는 오영대는 물론이거니와 노트를 통해 알려진 김지영 또한 이태백 세대다. 세상이 걱정하는 그들, 그들은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몸을 간신히 눕힐 수 있는 작은 방안에 있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없다. 현실은 냉혹할 정도로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알려준다.

 

그럼에도 김미월은 그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려 한다. 꿈을 찾는 게 꿈인 청춘일지라도, 친한 사람들에게서 버림받는 것이 청춘일지라도 김미월은 그들에게 낙천적인 주문을 전하고 있다. 명랑하게, 그리고 즐겁게 그들에게 꿈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묻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당장 하루 살기도 힘든 청춘에게 꿈을 묻는다는 건, 그래서 현재의 삶이 만족스러운지, 행복한지를 묻는다는 건 얼토당토하지 않은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마저 없다면 어떨까? 어쩌면 그것이 있기에 88만원 세대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의 그들이 그랬듯 말이다.

 

<여덟 번째 방>에 등장하는 이들은 무기력하고 소심한 외톨이들이다. 꿈도 희망도 없다. 그럼에도 꿈을 찾고 있기에 그들의 뒷모습은 듬직해 보인다. 그들의 청춘이 그저 걱정할 것이 아님을, 기대해도 좋을 것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것이 청춘의 매력이 아닐까? 냉혹한 세상에서 특유의 낙천성과 유머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김미월의 <여덟 번째 방>, "행복이 별거냐? 아직 살아 있잖아!"라고 외치는 그 목소리가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여덟 번째 방

김미월 지음, 민음사(2010)


#김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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