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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Oilpeak. 13year(오일피크 이후13년)

드디어 석유수입이 중단되었다. 갑자기 생긴 일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으로서는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거나 지금까지 석유를 기반으로 하던 모든 일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 큰 정유사들도 폐업하고 말았고 도로위의 자동차는 눈에 띄게 줄었다. 리터당 4000원하던 휘발유값은 며칠 새 30만원에 이르렀고 대부분의 주유소는 문과 주유기를 걸어 잠그고(철조망을 친 곳도 많았다) 기름값의 추이를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운행하는 자동차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자동차 도로위에는 자전거행렬이 줄을 이었다. 월급을 축내지 않고 출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전기, 수도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소비재 값이 10배 가까이 오르고 말았다. 생산을 위한 설비가동에 기름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길거리엔 구걸하는 이들이 넘쳐났고 곧 약탈자들이 등장했다. 시골에 적을 두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할아버지를 찾아, 또는 사돈에 팔촌의 당숙이라도 찾아서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보따리를 쌌다.

대형마트는 텅텅 비었고 밤에 도시의 가로등도 꺼졌다. 간간히 들리는 비명소리가 치안의 부재, 범죄 증가 현상의 증거였다. 아파트의 불도 모두 꺼지고 난방을 위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물정 모르는 누군가는 무심코 세상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켜놓고 쓰다가 다음달 전기, 수도 고지서를 받고는 야반도주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가장 타격을 덜 받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소개되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이 사는 마을을 부러워했다. 그곳은 태양광, 소규모 풍력발전소가 있으며 축산물의 분변으로 가스를 생산한다고 했다. 틈나는 대로 자전거를 돌려서 축전해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티브이를 본다고 했다. 빗물을 받아서 허드렛물로 쓰고 있으며 식수로 사용하는 지하수는 아이들 놀이터의 기구를 이용해서 퍼올리고 있었다.

윗 글은 가정이다. 물론 저렇게 갑자기 '사단'이 나길 바라지 않는 마음이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던가. 미국도 석유확보를 위해 전 세계를 상대로 되지도 않는 사기를 치는 세상이다. 지금 한국과 같은 상황이라면 국제정세를 국민들에게 숨기기에 급급할 것이 뻔해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스스로 대비하는 수밖에.

나는 최근 전기 스쿠터를 구매해서 출퇴근에 이용하고 있다. 아직 미숙한 경지의 기술을 증명이라도 하듯 컨트롤러가 과부하로 고장이 나서 이번 주에 정비할 예정이다. 불편하지만 생활에서 기름을 줄이려는 노력은 순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물론 환경오염에 대한 죄책감도 일부 있긴 하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상상을 해보면 당장 손놓고 충격에 빠질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스스로 대비하는 데에 배경지식이 될 만한 정보를 담고 있다. 국내 홍성 문당리, 부안군의 유채오일, 태양광에 몸을 던진 광주, 제주 자치도등의 사례를 보여주고 해외 도쿄의 절전소, 산골마을 구즈마키의 전력자립, 중국의 사례 등을 몸소 찾아서 보고 들은 내용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사례들은 희망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맹목적이 아닌 신념과 열정에 의한 에너지 자립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도 이야기 한다. 희망의 싹이 곳곳에서 자라고 있으니 널리 퍼질 일을 기대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학교버스를 바이오디젤로 움직이는 일. 석유가 아니라 식물재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요즘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바이오디젤도 미래를 위해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유채기름 버스 학교버스를 바이오디젤로 움직이는 일. 석유가 아니라 식물재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요즘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바이오디젤도 미래를 위해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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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군의 유채 혁명은 법과 제도의 한계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바이오디젤 업체에서 폐식용유를 무료로 공급받아 학교 버스를 운영하려던 협약은 BD20을 자가 정비, 주유 시설 없이 바로 주유할 수 없다는 법규에 위반된다는 산자부의 지적으로 곧바로 취소됐다. 무료로 소형 바이오디젤 생산기를 기증받기로 한 것도 2007년 7월에 석유 및 석유대체 연료법이 개정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판매목적이 아닌 바이오디젤 자가 제조와 소비는 법적인 규제 대상이 아니었는데, 법 개정으로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책 속에서

활성화와 지원을 위한 지자체의 조례를 만들고(광주의 경우처럼) 청와대와 국회에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는 등의 일이 벌어져야 할 것이다.

가끔 발생하는 정전도 견디지 못하는 우리. 석유는 30년이면 바닥이 날것이라 한다(정유사측은 좀더 길게 잡기도 하지만). 차도, 컴퓨터도,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미리 대비하는 일은 시민 스스로가 해 나가야 한다. 동네에서부터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머지않은 미래에 다같이 난민이 되지 않으려면 꼭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뭐든 새로 시작하는 자들은 먼저 눈 쌓인 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자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 통해서 길이 닦이면 뒤에 가는 이들은 편안하고 안전하게 길을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탈석유' 움직임은 '길 닦기' 단계로 보인다.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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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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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최남단의 섬 마라도, 섬전체가 천연기념물로 보호되는 이곳엔 태양광 발전소가 있다. 46가구가 사는 마을에 27억의 돈을 들여서 설치한 120킬로와트 발전 시설은 주민들에겐 불평의 대상이다. 평시의 전력소모량을 기준으로 설계했는데 관광객들을 위한 전기자동차와 에어컨이 가동되는 철이면 심각하게 모자라서 기름을 들이는 발전기로 전력을 충당한다.

왜 돈 들여서 저렇게 밖에 못 지었냐는 말이 나온다. 반면 경남 산청의 한 마을에서는 태양광 조리기와 자전거, 개인이 설치한 태양광 발전기 정도로 낮은 수준의 에너지 소비를 하면서 외부인들에게 그들의 기술을 전파하는 모델이 되고 있다.

무조건 재생에너지 시스템을 설치한다고 해서 그것이 삶의 만족도나 가사운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바꾸어 말하면 같은 시설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주민의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활용정도와 만족도는 극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 이유진 지음/ 이매진/ 10,000\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 - 우리 동네 에너지 농부 이야기

이유진 지음, 이매진(2008)


태그:#동네에너지, #대체에너지, #신재생에너지,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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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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