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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에는 지난 초겨울, 그러니까 김장을 하기 전에 다녀왔습니다. 여행노트를 보면 언제인지 금세 알 수 있지만 저마다 허리띠를 매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운문사 배추밭이 생생히 기억 나는 걸 보면 초겨울이 틀림없을 겁니다.

운문사를 가려면 운문댐을 지나야 합니다. 내륙 깊숙한 곳에 댐을 만들어 냇가가 호수가 되어버린 곳이 많습니다. 색다른 볼거리라 자랑삼아 얘기하곤 합니다만 마을 어르신들의 애환이 담긴 가슴 시린 냇길 정경만 하겠습니까? 내 고향 근처에도 용담댐이 있습니다. 졸지에 찻길이 물길이 되고 농부가 어부가 되어버린 쓰라린 일이 벌어졌습니다. 농촌 고향을 떠나 낯선 바닷가로 이사한 심정이겠지요.

운문댐 건설로 가슴 시린 냇길의 정취는 사라졌습니다
▲ 운문호 운문댐 건설로 가슴 시린 냇길의 정취는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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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삼켜버릴 듯한 운문호 물에 떼밀려 정신없이 가다 보면 운문사 입구에 이르게 됩니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 진정됩니다. 소나무 밭이 무거운 발길을 반깁니다. 굵직굵직한 소나무가 세속과 피안의 세계를 갈라 놓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살살 부는 바람이 세속의 찌든 때를 씻어 냅니다. 서산 개심사의 소나무 숲이 세심동(洗心洞)이라면 운문사 소나무 밭은 세심전(洗心田)입니다. 운문사는 일주문이나 천왕문이 없습니다. 소나무 밭이 이를 대신합니다.

몸집이 좋은 소나무는 흠집이 나있습니다. 건장한 몸집이 탐욕의 희생물이 됩니다. 일제시대 때 송진을 공출하려고 소나무 가죽을 벗긴 게지요. 일제의 잔재는 무섭게도 지워지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괴롭힙니다. 아예 잘라 버릴 걸 그랬나 봅니다. 일제청산은 미적거리지 않고 단칼에 했어야 했듯이 이 소나무도 단칼에 베어냈어야 우리의 마음이 덜 아팠을 것 같습니다.

소나무 밭은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세계를 갈라 놓습니다. 개심사 소나무 숲이 세심동(洗心洞)이라면 운문사 소나무 밭은 세심전(洗心田)입니다.
▲ 운문사 소나무 밭 소나무 밭은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세계를 갈라 놓습니다. 개심사 소나무 숲이 세심동(洗心洞)이라면 운문사 소나무 밭은 세심전(洗心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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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북쪽으로 길게 나있는 담장길이 인상적입니다. 키 작은 담 너머로 벚나무가 가지를 내밀고 있습니다. 여기가 경치로 따지면 운문사 제일경이라 할 만합니다. 벚꽃이 만발한 봄이면 더욱 좋겠지요. 자신없는 사람은 벚꽃이 피기 전에 다녀와야 합니다. 운문사가 구름 대신 사람을 머물게 할지 모릅니다. 벚꽃이 지고나서야 운문사를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요.

운문사의 제일경입니다. 지금쯤이면 벚꽃이 만발하겠지요. 벚꽃이 필 때 운문사를 찾는다면 금단의 영역을 넘어갈 충동에 빠질 겁니다.
▲ 벚나무담장길 운문사의 제일경입니다. 지금쯤이면 벚꽃이 만발하겠지요. 벚꽃이 필 때 운문사를 찾는다면 금단의 영역을 넘어갈 충동에 빠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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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길 옆 넓은 밭에는 살이 오른 김장배추가 허리춤을 바짝 추스르고 있습니다. 김장을 기다리고 있지요. 모두 운문사 스님들의 울력에 의한 결과물입니다. 울력은 대중들이 함께 하는 노동을 말합니다. 여러 사람이 힘을 구름처럼 모은다고 하여 운력(雲力)이라고도 합니다. 운문사는 구름과 참 관련이 많지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계율이 운문사에서는 철저히 지켜지고 있습니다. 노동을 중요한 수행의 하나로 여기고 있는 게지요.

제법 살이 오른 배추는 허리띠를 매고 김장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운문사 배추밭 제법 살이 오른 배추는 허리띠를 매고 김장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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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홈페이지에서 '액자 속 풍경'을 봅니다. 고추를 수확하고, 감자를 캐고, 감을 따고, 쑥개떡을 만드는 스님들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기만 합니다. 어찌 행복하기만 하겠습니까?  파르르 깎은 머리에, 모두 한 가지 옷을 입고 행복해 하는 모습 속에 감추어진 각자의 번뇌와 쓰린 인생이 있겠지요. 불가에 귀의하면서 노동과 경학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뭍 중생에 전파하면서 각자의 번뇌의 크기와 깊이는 같아지고 세상의 번잡한 여러 가지 일들로부터 벗어나게 되겠지요.

이제 범종루 문을 들어가 봅니다. 범종루 아래층은 운문사 정문이고 2층 누각에 법고(法鼓), 범종(梵鐘), 목어(木魚), 운판(雲版)의 사물(四物)이 있습니다. 이 사물은 새벽과 저녁예불에 울립니다. 다른 절에서와 달리 범종루가 달리 보이는 것은 운문사의 조석예불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입니다. 법고는 네발 달린 짐승(축생), 운판은 허공에 날아다니는 생물(중생), 목어는 수중의 모든 생명, 대종은 지옥과 천당 등을 모두 아우르는 일체 중생들의 성불(成佛)을 바라며 울리는 것입니다.

범종루를 벗어나면 오른편으로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반깁니다. 꽃봉우리 마냥 예쁘게 생겼습니다. 여느 소나무와 달리 가지가 위로 향하지 않고 아래로 향하여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처진 소나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아래로 향하는 가지를 보며 노자의 핵심사상인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올립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의미입니다.

물은 서로 다투지 않고 묵묵히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갑니다. 이 소나무가지도 위로 가겠다고 다투지 않고 묵묵히 아래로 향해 뻗어 갑니다. 낮은 곳, 좋아하지 않는 곳을 향하여 가지를 내려 마치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있는 이 소나무가 우리에게 많은 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처진 소나무보다 아래로 향하는 소나무로 부를까 합니다.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같이 소나무가지는 위로 가겠다고 다투지 않고 아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하향(下向)소나무 처진 소나무보다 아래로 향하는 소나무로 부를까 합니다.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같이 소나무가지는 위로 가겠다고 다투지 않고 아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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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가 이렇다 할 문화재 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운문사는 하나하나 뜯어보는 멋보다는 전체적으로 보는 맛이 더 좋습니다. 한두 가지의 걸출한 걸작으로 사랑을 받는 절이라면 이 걸작을 보고 난 후 허탈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운문사는 남쪽에 운문산, 동북쪽에 호거산, 서쪽에 억산과 장군봉이 감싸 안고 있어 포근하고 아늑합니다. 운문사의 앉음새를 보고 연꽃의 화심(花心)이나 어머니의 자궁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운문사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평온해지는 것도 이 때문인가 봅니다. 본능적 반응이 아닌가 싶습니다.

운문사 법당은 모두 호거산을 등지고 있는데 법당 마당이 옹색하여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 운문사 정경 운문사 법당은 모두 호거산을 등지고 있는데 법당 마당이 옹색하여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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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는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금세 눈치챌 만큼 가람배치가 특이합니다. 우리의 농촌·산촌마을 집들은 평지보다는 산등성이에 기대어 옹기종기 붙어 있습니다. 모두 산을 등지고 서 있지요. 운문사 건물은 모두 산을 마주보고 있어 우리가 보아온 광경과 사뭇 달라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명부전, 관음전, 만세루, 작압전, 대웅보전(비로전)이 모두 멀리 호거산을 마다하고 운문산을 향하고 있습니다. 호거산이 호랑이가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운문사로 향하고 있는 형상이라 이를 마주할 때 생기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모두 무엇엔가 단단히 토라진 자태입니다.

여러 법당 중에 조그만 법당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운문사에서 가장 작은 작압전입니다. 우선 이름부터 이채롭습니다. 작지만 옴팡지게 생겼습니다. 생김새에 걸맞게 법당 안에 석조여래상과 사천왕상석주를 갖고 있어 내용도 암팡집니다.

운문사의 옛이름인 대작갑사와 인연을 간직하고 있어 크기는 작지만 내용은 암팡집니다
▲ 작압전 운문사의 옛이름인 대작갑사와 인연을 간직하고 있어 크기는 작지만 내용은 암팡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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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의 역사는 6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갑니다. 지금의 운문사 근처에는 동쪽에 가슬갑사·남쪽에 천문갑사·서쪽에 대비갑사·북쪽에 소보갑사, 중앙에 대작갑사가 있었습니다. 이 다섯 사찰을 두고 오갑사(五鴨寺)라 하였습니다. 대비갑사는 대비사로, 대작갑사는 지금의 운문사로 남아있고 나머지는 폐사했습니다.      

작갑이 작압으로 변하게 된 이유는 알길 없지만 대작갑사와의 인연을 작압전이 맺고 있어 다른 법당과는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흔히 운문사는 사력에 비해 깊이가 없다고들 합니다. 임진왜란 때 운문사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기 때문이죠. 그나마 비로전, 삼층쌍탑, 금당 앞에 있는 석등이 답사객들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 줍니다. 비로전은 지금 대웅보전 현판을 달고 있지만 비로자마불을 모시고 있고 신축한 대웅보전이 있기 때문에 옛 이름대로 비로전으로 고쳐 달면 좋겠습니다.

삼층쌍탑은 운문사의 격에는 좀 떨어지진 해도 이 쌍탑 마저 없었다면 많이 서운할 겁니다. 1년에 단 하루만 개방하여 볼 수 있는 은행나무와 같이 금당 앞 석등은 금단의 영역에 있어서 마음대로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스님들의 수행공간입니다. 발길을 돌려주세요'라는 푯말이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 약야계 극락교 '스님들의 수행공간입니다. 발길을 돌려주세요'라는 푯말이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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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서쪽 계곡, 약야계(若耶溪)까지 가 보았습니다. 고개를 넘어가면 대비사에 이르게 됩니다. '스님들의 수행공간입니다. 발길을 돌려주세요'라는 푯말이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다리 하나를 두고 수행공간과 신앙공간으로 나뉩니다. 다리를 넘어가고픈 충동이 일어납니다. 다리를 넘어가면 '충동출가'가 되나요?

마음을 녹여 주는 따뜻한 풍경입니다. 감이 다 떨어질 때까지는 운문사는 구름 대신 사람을 머물게 할 겁니다
▲ 감나무와 노승 마음을 녹여 주는 따뜻한 풍경입니다. 감이 다 떨어질 때까지는 운문사는 구름 대신 사람을 머물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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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감나무 밑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노스님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운문사 홈페이지의 '액자 속 풍경'이 오버랩 되면서 '충동출가'라는 순진한 말이 머리 속에 떠오릅니다. 어둡고 혹독한 겨울날에도 이런 생각이 날까요? 벚꽃이 만발하고 감이 붉게 익을 때는 금단의 영역이 마음 속으로 무너져 내릴 겁니다. 벚꽃이 다 지고 감이 다 떨어질 때까지는 운문사는 구름이 아닌 사람을 머물게 할 겁니다.

덧붙이는 글 | 2009년 11월 초에 다녀온 후 쓴 글입니다



태그:#운문사, #대비사, #작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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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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