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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47) 시인이 2004년에 펴낸 첫 시집 <그릇에 대한 기억>에 이어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시와에세이)를 펴냈다.
▲ 시인 김윤환 김윤환(47) 시인이 2004년에 펴낸 첫 시집 <그릇에 대한 기억>에 이어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시와에세이)를 펴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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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도 없고 신문도 없는
까띠뿌난 마을에
손톱에 때를 묻히며 그는 서있었네

십자가도 초라한 예배당 모퉁이에
뽀얀 살의 내가 부끄러이 고개 숙이니
곱슬머리 맑은 눈의 그가
잘 왔다 인사하시네

내가 기다리던 그가
나를 기다리던 그가
온 마을을 사랑으로 불을 밝히고
함께 노래하자 하시네

함께 부르는 노래 가락
흔드는 손끝마다
환한 웃음 눈물겹네

물소 달구지를 타고
도시로 떠나는 형제를 위하여
손 흔드는 까띠뿌난의 예수

다시보자
거룩한 손 오늘도 흔드시네.-70~71쪽,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모두

이 시에서 말하는 '까띠뿌난'은 필리핀 딸락지방에 있는 까빠스 오지마을을 말한다. '까띠푸난'은 스페인이 필리핀을 지배할 때 독립운동을 한 단체 이름이기도 하다. 시인 김윤환은 아직 문명이 닿지 않는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원주민들에게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 한국 선교사를 예수라 부른다.

글쓴이가 시인 김윤환을 만난 것은 1980년대 허리춤께였다. 그는 그때 구로동에 있는 필름공장에 다니며 노동시를 쓰는 예비시인이었다. 그가 쓰는 시는 고된 노동현실에 뿌리를 내려 '노동해방'이란 여린 싹을 틔우고 있었다. 글쓴이는 그가 쓴 노동시가 너무 좋아 그때 <실천문학>에서 내고 있던 <노동문학>과 <민족문학>에 소개했다.

스물여섯, '쇠도 소화시킨다'(작가 천승세 말씀)는 새파란 나이였다. 그는 그렇게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고, 제법 오래 사귀고 있던 아리따운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는 그 뒤 을지로에 '열린문화'라는 조그만 기획사를 차린다. 그렇게 인쇄물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듯했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신학교에 들어가 싶더니 어느새 박사과정까지 밟아 목사가 되었다. 시인과 목사, 그 둘 사이에는 어떤 틈이 있을까. 사실, 우리 문단에 시인 목사는 꽤 있다. 김창규 시인이 그러하고 이적, 배명식 시인 등이 그러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진리를 찾고, 소외된 곳을 어루만지는 시인과 목사는 한 몸"이라고 말했다. 시인이자 목사인 김윤환도 그러하다.    

시인이 신이 되고, 신이 시인이 되는 시

이번 시집은 ‘사랑’이란 무기를 들고 ‘질투’와 ‘증오’가 쇠파리 떼처럼 들끓는 이 세상과 혹은 싸우기도 하고 혹은 살살 달래고 있다.
▲ 김윤환 두 번째 시집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이번 시집은 ‘사랑’이란 무기를 들고 ‘질투’와 ‘증오’가 쇠파리 떼처럼 들끓는 이 세상과 혹은 싸우기도 하고 혹은 살살 달래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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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후배에게 시를 보여주었다. 며칠 뒤 그는 형, 팔십프로 다른 것 하다가 이십프로의 열정으로 쓴 시를 팔십프로 시에 빠진 내게 왜 보여주느냐고 나의 시작태도에 대해 크게 개탄했다. 그렇다, 나는 어느 것도 온전히 100퍼센트를 살지 못했다. 부끄러움을 가르쳐준 일갈이었다. 아팠지만 그의 사랑은 나의 선잠을 확 깨게 해주었다." -'시인의 말' 몇 토막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목사이자 대학에서 문화와 종교를 강의하고 있는 김윤환(47) 시인이 2004년에 펴낸 첫 시집 <그릇에 대한 기억>에 이어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시와에세이)를 펴냈다. 이번 시집은 '사랑'이란 무기를 들고 '질투'와 '증오'가 쇠파리 떼처럼 들끓는 이 세상과 혹은 싸우기도 하고 혹은 살살 달래고 있다.

이 시집은 모두 4부에 '시인이 신이 되고, 신이 시인이 되는' 신작시 51편이 실려 있다. '발자국' '달과 그물' '목련이 피는 자리' '아버지의 이름 앞에' '금강산을 놓치다' '그에게로부터 온 편지' '제국의 깃발 아래 선 이웃이여'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사랑, 그 광합성' '너나 잘해라' 등이 그것.

김윤환 시인은 8일(목) 전화통화에서 "성서에서는 100%의 삶을 온전한 삶이라고 한다"라며 "나는 비로소 오늘 온전한 시인이 아님을 고백한다"고 속내를 까발린다. 그는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보니 발바닥의 지문보다 구두의 뒤 굽이 더 선명했다"라며 "내 발바닥의 지문을 찾기 위해서는 감싸던 또 하나의 껍질이 벗겨져야 한다. 껍질이 벗겨져 피맺힌 맨발, 그기에 지문이 있었다"고, 시인으로 부활할 것임을 넌지시 내비쳤다. 

아이쿠! 칼장수, 내 뱃살도 좀 갈아줘요

밖에서 '칼 갈아요' 외치는 소리,
참 오랜만이다
요즘 칼들 '스텐'이라
몇 달을 쓰고도 그대로인데
그래도 칼 가는 사람 있구나-19쪽, '그리운 비수' 몇 토막

이번 시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제1부와 제2부는 시인이 살아온 삶과 시인이 바라보는 이 세상 사람들이 겪는 물살 거친 세상살이를 담고 있다. 그가 형편이 그리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힘들게 자라서일까. 제1부와 제2부에 실린 시들을 읽고 있으면 가슴 저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울컥 하고 올라온다. 슬프고 아프다는 그 말이다.

위에 적은 '그리운 비수'에서 그는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듯이 보이는 칼을 가는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그에게도 '칼 갈아요' 외치는 사람처럼 "나이테만큼 / 겹겹이 두룬 고집 / 출렁이는 뱃살"이 있다. 그 고집과 출렁이는 뱃살이 마치 '고집 갈아요, 뱃살 갈아요' 하고 외치는 것만 같다. 이 시 마지막 연 '아이쿠! / 여보시오 칼장수'가 이를 말해준다.

시인은 복숭아를 먹다가 문득 어린 날을 떠올린다. "1979년 농고에 입학했을 때 교감 선생 왈 농고생은 거름냄새가 구수해야 한다며 지각할 때마다 변소에서 분뇨를 퍼다 과수원 거름마당으로 나르도록"(복숭아를 먹다가) 시킨 그 교감 선생 얼굴이 흑백필름처럼 스친다. 1년이 지난 뒤 까맣게 익은 그 분뇨를 먹고 피어난 그 예쁜 복사꽃도 떠오른다. 여름이 되자 그 복사꽃이 진 자리에 굵은 백도가 매달린다.      

시인이 만약 이 시를 여기에서 그쳤다면 이 시는 시가 아니라 짧은 에세이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윤환 시인은 어릴 때 그 추억에 지금 살아가는 자신을 빗댄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나자 "내 안에 쌓인 거름 한 줌 / 어디에 뿌릴지 몰라 / 까맣게 썩어갈 무렵 / 복숭아 한 점 베어 먹는데" 코끝이 시려왔다는 것이다. 김윤환 시가 지닌 독특한 반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노랑나비가 되었다

봉하마을 뉴스를 볼 때마다 아내와 나는 서로 눈물을 감추었다 왜곡과 배반이 참람한 시절 숨 막히는 막장 보도가 나올 때 이미 예고된 비극이었다 그래도 아, 그가 다시 살아만 온다면 깨어진 늑골, 파열된 내장, 터진 심장을 깨끗이 붙이는 신약이 있다면, 이 막장 드라마가 그냥 드라마였다면 그렇게 눈물을 훔칠 무렵 자막이 흐른다 - 52쪽, '노랑나비' 몇 토막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두고 시인 김윤환은 "막장 보도가 나올 때 이미 예고된 비극"이라고 못 박는다. 노 대통령 서거가 얼마나 가슴 아팠으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늑골과 내장, 심장이 터져 서거한 노 대통령 상처를, 신약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고 싶다고 했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시인은 '북 핵미사일 발사!'라는 뉴스를 듣는 순간, 부엉이 바위에 앉았던 노랑나비 한 마리가 눈 속으로 쑥 날아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시인은 "이제 한반도 남쪽 / 작은 집집마다 / 나비가 살게 되었다"고 쓴다. 여기서 노랑나비는 환생한 노무현 전 대통령 영혼이다. 

시인은 김대중 대통령 서거에서도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통곡하던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린다. "현해탄 납치에서 구출되어 아내를 만나 눈물짓던 그"를 기억한다. 1997년 겨울 대통령에 당선한 그가 IMF 한파에 떨고 있는 민초들을 바라보며 눈물짓던 그를 생각한다. 그 눈물로 현충원에 무궁화가 피고, "남은 이들의 가슴에는 / 눈물샘 하나씩 솟았다"고 여긴다.           

제3부에 실린 시들은 시인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와 우리 역사가 징징 울고 있다. 개발경제가 드리운 그늘을 도려낸 '신바벨탑', 이란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를 통해 종교와 정치, 사회현실을 아프게 노래하고 있는 '시린 에바디를 위한 변명', 분단이 낳은 비극을 그린 '자유로 유령'과 '금강산을 놓치다' 등이 그러하다.

예수는 똥바가지, 이 세상 똥 푸는 성자

씻어내는 일이다
잘라내는 일이다

무엇을 씻어낸다는 것은
지난 시간 게워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백지장의 넉넉함을 만드는 일이다-77쪽, '기도' 몇 토막

제4부는 목사로서 바라본 세상이다. 목사 시인 김윤환에게 있어서 기도를 하는 일은 이 세상살이를 하면서 몸과 마음 곳곳에 깊이 배어든 더러움을 씻어내는 일이다. 그 더러움을 먹고 자꾸만 웃자라고 있는 원망과 저주, 물욕 등을 잘라내는 일이다. 그에게 있어 무엇을 씻어내고 잘라낸다는 것은 버리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일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이 세상살이에서 더러움이 무엇인지 원망과 저주, 물욕 등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까닭에 그에게 있어 기도는 하나님이나 예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 세상과 삼라만상이 더불어 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간절한 기도이다. 그 기도는 곧 그가 쓰는 시이기도 하다.    

시 '성탄'을 살펴보자. 그는 '성탄'이란 시에서 예수는 똥바가지이며, 이 세상을 덮고 있는 똥을 푸는 성자라 말한다. 왜? 이 세상은 온통 사람들이 몸과 마음으로 싼 똥 덩어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인 자신은 순결하고 깨끗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도 똥 만드는 더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에게 / 냄새 난다 더럽다 손짓" 할 수 없다고 여긴다.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수없이 뿌려놓은 거짓과 상처, 끝없는 증오와 물욕을 ‘큰 사랑’으로 감싸 안아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 김윤환 시인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수없이 뿌려놓은 거짓과 상처, 끝없는 증오와 물욕을 ‘큰 사랑’으로 감싸 안아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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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두 번째 시집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수없이 뿌려놓은 거짓과 상처, 끝없는 증오와 물욕을 '큰 사랑'으로 감싸 안아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이 시집 곳곳에 나오는 깊은 슬픔과 뼈마디 쑤시는 고통, 끝없는 미움과 이어지는 증오 등도 시인이 아낌없이 주는 '큰 사랑'이 있기 때문에 아파도 아프지 않다.    

시인 이승하(중앙대 교수)는 "공교롭게도 신을 길게 발음하면 시인이 되고 시인을 짧게 발음하면 신이 된다"라며 "김윤환 시인은 목사일까 시인일까"라고 스스로 되묻는다. 그는 "신을 대신하여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그 사물에 사전적인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자가 시인"이라며 김윤환 시인이 곧 신이자 시인이라고 은근슬쩍 추켜세웠다.

시인 김윤환은 196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89년 <실천문학>과 <민족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릇에 대한 기억>이 있으며, 사화집 <창에 걸린 예수 이야기>, 평론집 <박목월 시에 나타난 모성 하나님>, <한국 현대시의 종교적 상상력 연구>를 펴냈다. 지금 협성대 교양학부 외래교수이자 기독교 감리회 목사를 맡고 있다.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김윤환 지음, 시와에세이(2010)


태그:#김윤환 시인,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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