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친정어머니와 눈 오는 겨울밤 색색의 헝겊조각으로 만들었던 '골무', 시집 올 때 친정어머니가 챙겨준 '헝겊 보따리', 큰 딸 리라(45)가 아이 때 신었던 '버선', 큰 딸이 어릴 때 혼수용으로 장인에게 부탁해 미리 장만해 뒀다가 시집보낼 때 준 '놋요강', 둘째를 밴 후 타지로 간 남편(1967년 추석 무렵)이 보내온 '편지'….
어느 것 하나 손때 묻지 않은 것이 없고, 정이 가지 않는 물건이 없다. 하나하나가 모두 속속히 추억이 담겨 있는 물건들이다.
셋째 며느리 안소민씨에 의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시어머니 박춘옥(75)씨의 보따리가 진안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대표 김지연)에서 전시된다.
"시어머님은 참 부자예요. 칠십 평생의 시간과 추억을 잘 보여주는 사진과 편지, 소소한 물건들이 어머님 추억의 잔고를 넉넉하게 해주고 있으니까요. 여기에 '칠십년'이라는 이자까지 붙어 그 추억은 어머님 뿐 아니라 아들 딸, 손자들까지 나눠주고도 남을 정도가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님 한 개인의 역사지만 좀 더 확대해보면 그것은 한 시대의 문화와 삶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고집으로 인해 '우리에게도 저런 삶과 저런 시대가 있었구나' 하고 돌이켜볼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시를 기획한 계남정미소 김지연 대표는 말한다.
"근현대를 사는 우리 어머니들의 삶의 역사가 이 보따리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한사코 볼 것 없다고 다시 묶으려는 어머니의 보따리를 나는 자꾸 잡아당겼죠. 우리 한 번 펼쳐봅시다. 아주 자질구레해서 남 앞에 내놓기 남세스러운 이야기가 별 조각처럼 추억의 은하수를 만든다고 어머니를 부추겼습니다. 보따리 속의 이야기는 이 땅 모든 어머니들의 사연이 담긴 씨줄 날줄이 교차한 세월로 짜인 직물이니까요."
전시는 계남정미소에서 4월10일부터 5월30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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