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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키워보고 싶은 꽃이 있었다. '엔젤 트럼펫'이라는 이름의 꽃으로 이름 그대로 천사의 나팔처럼 생긴 꽃인데 향기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길가다 몇 번 봤는데 정말 커다란 나팔처럼 길쭉하게 생긴 꽃이 아래를 향해 피어 있던데 촘촘히 달린 꽃송이들이 장관이 아니었다.

 탐스러운 엔젤트럼펫 꽃송이. 향기도 장난 아니란다.
 탐스러운 엔젤트럼펫 꽃송이. 향기도 장난 아니란다.
ⓒ 한국종자나눔회 늘봄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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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한국종자나눔회'라는 동호인 카페에서 세 그루를 주문했다. 그것이 어제 도착했는데 어찌나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보냈는지 보낸 분의 정성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정성을 생각해 지체 없이 꽃밭에 심었다.

미리 퇴비를 충분히 덮은 땅을 갈아엎어 구덩이를 묘목이 충분히 앉을 만큼 널찍하게 파 나름 정성을 다해 이식을 하고 혹시 목마를까봐 물도 충분히 줬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가 보니 세상에, 데친 시금치처럼 축 늘어져 돌아가시기 일보직전 아닌가.

냉해를 못 견디는 식물인지는 진작 알았지만 꽃이 만발하는 4월에 냉해를 입을 줄은 미처 몰랐다. 밤새 얼어 축 처진 묘목 세 그루를 보니 속도 상하고 꽃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해서 기운이 쑥 빠지는 기분이었다.

 밤새 얼어 축 처진 '엔젤트럼펫' 묘목 속상하고 너무 미안했다.
 밤새 얼어 축 처진 '엔젤트럼펫' 묘목 속상하고 너무 미안했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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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동태가 된 참혹한 모습의 묘목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어 바로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엔젤 트럼펫'은 추위에 너무 약해 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면 냉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지에 심으려면 4월 말이나 돼야 한다는데 무지가 사고를 부른 격이다.

꽃구경에 눈이 멀어 곁에 두고 싶은 욕심만 많았지 진정으로 그 꽃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 셈이다. 내 잘못으로 회생여부가 불투명해진 묘목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대상이 꽃이든 사람이든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산다.

'엔젤 트럼펫'의 꽃과 향이 너무 탐나 소유욕에만 눈이 멀었지 나는 그 꽃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적어도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꽃이 추위에 약한지, 물은 좋아하는지 혹은 뜨거운 햇빛 보다는 반그늘을 선호하는지 각각의 특성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꽃이 성장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든 다음에 종자를 뿌리거나 묘목을 심거나 했어야 하는데 나는 '엔젤 트럼펫'을 탐낼 줄만 알았지 그 꽃에 대한 사전 정보를 충분히 수집해 건강하고 탐스런 꽃을 피울 터전을 마련해 줄 생각을 못한 것이다.

 데친 시금치처럼 축 처진 이파리. 사랑에 무지하면 이렇게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되는데...
 데친 시금치처럼 축 처진 이파리. 사랑에 무지하면 이렇게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되는데...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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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또는 어떤 점에 행복해 하고 불행해 하는가를 알기 위한 노력은 필수 아닐까. 사랑을 느끼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해지고, 관심을 가지면 그 사람의 개성과 장점, 단점이 눈에 보일 것 같다.

가령, 그 사람이 특별히 잘 먹는 음식은 무엇이고 싫어하는 음식은 무엇이며, 무슨 색과 무슨 스타일의 옷을 선호 하는지 혹은 어떤 부분에 특히 예민해 무심하게 뱉은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지 '외유내강'형인지 '외강내유'형인지 사랑하면 그 사람의 성향과 기질을 알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보이면 나와의 차이점도 알 수 있고 서로의 차이와 상이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이 훨씬 많아 부부도 되고 친구도 되고 또 이웃도 되는 것이 아닐까.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내 맘에 쏙 드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연민 또는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묶여 불편하고 괴롭고 때로는 짜증이 나도 미움 보다는 사랑이 커 우리는 지치고 고통스러워도 상대방을 향해 양보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못 하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것만이 사랑을 지키는 유일한 길인데 우리는 대부분 이런 것에 둔감하고 때로는 알면서도 행하지 못 하는 것 같다. "너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엔 그만큼의 관심과 책임이 뒤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신은 사랑하는 방법을 아시나요?"

좋아한다고 방방 뛰면서 모셔 온 '엔젤 트럼펫' 묘목을 데친 시금치처럼 동사 직전으로 만들고 나서야 내 잘못이 무엇이었는가를 깨우치게 됐다. 육십을 바라보는 이 나이 먹도록 나는 '사랑하는 방법'과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예의' 그것에 대해 너무 게으르고 무지했었다. 반성은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는데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아직도 자신이 없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한겨레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엔젤트럼펫#사랑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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