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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바람이 분다. 그것도 속살을 파고드는 바람이다. 햇살은 따뜻해서 사람들의 옷이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 때문에 환절기 감기로 고생들이다. 목감기와 코감기로 고생을 하고 나니 입맛도 떨어지고 세상에 나만 동떨어져 있는 듯 창으로 드는 햇볕도 생뚱맞게 느껴진다.

 

며칠 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해 논 '한살림생협'의 돌나물이 배달되었다. 주문할 때는 향긋한 물김치가 생각나서 클릭을 해버렸는데 막상 배달을 받고 보니 괜한 꾀가 난다. 감기 후유증이다.


파릇하면서도 야들야들 어린아이 피부처럼 연한 돌나물을 그대로 냉장고 야채박스에 넣는 것에 일말 찔리는 마음이 들어 귀찮음을 털고 일단 물에 씻었다. 보통 돌나물은 초장에 무치거나 찍어 먹는다. 간편한 음식으로 즉석에서 무쳐먹어도 별미이기는 하나 내 입맛에는 물김치를 담가 먹을 때 가장 마음에 찬다. 돌나물 물김치는 이른 봄에 담가먹는 물김치 중에는 단연 으뜸에 드는 향을 낸다.

 

 

돌나물 같은 야생풀을 일부러 밭을 내서 재배해 먹는다고는 언감생심 생각조차도 못하던 시절, 잠시 부모님과 떨어져 강원도 퇴곡의 외가댁에 살던 때가 있었다. 그때 소금강 줄기 어느 쯤에 살고 계시던 아재 집에 놀러갔었다. 외갓집이 있던 곳에서는 오촌을 넘는 친척의 어른에게는 '아재'라는 호칭을 붙여 불렀다. 아주머니를 지칭하는 강원도 방언이기도 하다. 촌수를 알고 불렀다기보다는 외갓집 사촌들이나 어른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해서 입에 붙은 거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었지만, 지금도 아재라는 감칠맛 나는 호칭이 좋았던 기억은 잊지 않고 남아 있다.


늦봄 햇볕이 내려 쏘이는 밭두렁 길과 산길을 걸어서 그 어른 댁에 도착한 시간이 점심 무렵쯤이었다. 어린 나이에 제법 걸은 길이라 헥헥 대는 내게 아재는 점심상을 차려주셨다. 목마른 참에 상에 올라온 물김치를 떠 넣었는데, 그 향이 참으로 독특하고 입안에 감돌아 연신 퍼 먹었다. "아가(애가) 잘먹네" 하시면서 부엌에서 조그만 항아리를 통째로 들고 오셔서 내 옆에 놓고 다시 그릇에 퍼 담아 주셨던 그 음식이 돌나물로 담근 것이라고 했다.

 

 

학교를 들어가려고 서울로 올라와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친정엄마는 한 번도 돌나물로 물김치를 담가주지 않으셨다. 어른들 말씀으로 '봄이면 들판에 지천으로 나와 밟히는 풀'을 돈 주고 사먹던 시절이 아니었는데도 밥상에는 돌나물 반찬은 없었다.

 

아마도 지금은 돌나물이 별미음식에 속할 수도 있지만, 고기가 귀하던 시절, "우리가 토끼도 아닌데 밥상에 맨 풀"이라고 까탈을 잡으시던 친정아버지의 입맛 때문에 돌나물이 우리 밥상에 오르지 못하게 된 이유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어린 날 먹었던 돌나물 물김치는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잊었다.


결혼 하고 둘째가 아직 등에 업혀있었던 시절에, 서울에서 그린벨트 지역으로 되어 있던 동네에 잠시 산 적이 있었다. 공기도 좋았고, 봄이면 자연 그대로의 나물들이 땅 속에서 삐죽이 솟아 올라치면 이웃집 또래의 아줌마들은 놀이 삼아 아이를 걸리고 업고 해서는 집 주변의 들로 나갔다.

 

주로 쑥을 많이 캤다. 쑥을 캐는 중에 낯이 익은 나물이 보인다. 돌나물이었다. 그리고는 입 안에 느낌으로 감도는 향은 어린 날에 먹었던 물김치 맛이었다. 살살 뜯어 와서 물김치를 담아 보았다. 사실 어떻게 담그는지는 몰랐다. 다만 평소 봄김치로 담아먹던 방법으로 해 보았는데, 그 맛이 그대로 살아났다. 식구들도 잘 먹었다. 그 뒤로 이사를 했고, 이제는 시장에서 사다가 해마다 봄이면 꼭 한 번씩은 물김치를 담는다. 


돌나물을 살살 씻어 조리에 받쳐서 물기를 빼놓고, 그 사이에 찹쌀(밀가루도 된다) 풀을 뭉근하게 쑤어서 식혔다. 마늘과 생강은 채를 쳤다. 오이도 손가락 길이 정도로 등분해 썰어 준비했다. 대파도 약간 넣었다. 붉은 고추, 파란 고추를 넣으면 좋지만 집에 있는 것이 마른 고추뿐이라 그것만으로 했다. 고춧가루와 소금, 생수면 재료 끝이다. 고춧가루는 넣지 않아도 되지만 아이들이 넣는 것을 좋아한다. 굳이 구색을 모두 갖출 필요도 없다. 평소 집에 있는 양념재료를 쓰면 된다.


돌나물에 준비된 양념을 모두 넣고 갓 태어난 아기 다루듯 살살 버무린 다음에(절대 막 버무리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생수를 잘박하게(돌나물은 금방 숨이 죽는다. 따라서 물을 많이 잡으면 맛이 덜하고, 나중에는 물만 남는다)넣어 돌나물 향과 양념 맛이 어울려 지도록 한나절 실온에 놔두었다가 냉장고에 넣는다.

 

 

아직 덜 익었을 때는 돌나물을 씹으면 약간 쌉쌀한 맛을 내지만 오이까지 노랗게 익은 시간이 되면 제대로 된 맛을 즐길 수 있다. 어떻게 이런 독특하면서도 순하고 깨끗한 향을 낼까 싶게 입맛이 돋아진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언제나 돌나물 물김치 향속에는, 어린 날의 소금강 줄기 어름에 있던 초가집, 밥상을 받아먹었던 마루, 봄 햇볕바라기로 방마다 열어둔 창호지 문과 그 문들을 넘나들이 하던 바람이 함께 들어있다.


태그:#돌나물, #돌나물 물김치, #시골, #외갓집,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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