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7일째. 생환을 기다리는 실종자의 가족들은 애가 타고, 기상악화로 구조작업에 나서지 못하는 구조대원들은 발을 구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침몰 원인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초기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군 당국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은 일치한다. 그러나 일각에선 군에 대한 비판이 구조대원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27일 오전 7시경 장아무개(60)씨는 백령도 남단에 위치한 용트림바위에 올랐다. 멀리 바다 위에 떠 있는 짙은 회색 물체가 눈에 띄었다. 전날(26일) 오후 백령도 서남단 해역에서 폭발과 함께 두 동강 나 침몰했던 해군 초계함 천안함의 함수(앞부분) 일부가 수면 위로 잠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오전 10시경 다시 바위에 올라가 보니, 선체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공기가 남아있던 선체가 조류에 떠밀려 약 4마일 가량을 흘러왔다가 결국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것이다.

 

 

조금 일찍 어민에 협조 요청했더라면...

 

사고해역에 투입된 해군 해난구조대는 하루가 지난 뒤인 28일 오후 7시57분경 바다 속에 가라앉은 함수를 찾아냈다. 천안함이 최초 침몰한 시간은 26일 오후 11시 20분(군 당국 발표). 해군이 다시 함수를 찾아내는 데는 무려 45시간이 걸린 셈이다.  

 

31일 만난 장씨는 지난 27일 용트림바위에 올랐을 때를 회상하며 못내 아쉬워했다. 특히 침몰 엿새째가 됐지만 악천후로 인해 실종자 수색·구조 작업이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조금만 더 일찍 선체를 찾아냈더라면 더 성과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다.

 

"이곳은 해경 통제가 아니라, 군부대에서 통제한다. 만약 (선체가 다시 떠올랐을 때) 군부대에서 우리 주민들에게 협조 요청을 해왔다면 우리도 배가 있고 잠수부도 있으니까, 나가서 (선체에) 로프라도 걸어놨을 텐데…. 그러면 나중에 선체를 찾는 데 더 쉬웠을 것 아닌가."

 

장씨는 "당시 군 부대에서 출항을 통제하고 있어서 어민들은 함부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선체가 보였을 때 (군부대에서) 먼저 같이 나가자고 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게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실종자들을 구조한다고 하지만,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사리와 강한 바람 때문에 우리 어민들도 함부로 바다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해군 욕하면, 바닷속 들어가는 구조대원 심정 어떻겠나"

 

그러나 당시 더 시급한 문제는 실종자 대부분이 탑승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천안함 함미(뒷부분)를 찾는 것이었다.

 

장세광(35·옹진군 백령면 장촌리35)씨가 백령도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 6여단 사령부로부터 천안함 수색활동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은 28일 오전 7시경이었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최치호(63) 어촌계장도 같은 요청을 받았다. 이미 인근 포구에 있던 어선 1척이 침몰 지역에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장씨는 오후 1시 30분쯤 6t짜리 고기잡이배 해덕호를 타고 백령도 서남단 연화리 앞바다로 나갔다. 천안함 최초 폭발지점에서 40~50m 떨어진 곳이었다. 해군은 해군고속정(참수리정) 1척과 어선 1척을 1개조로 구성, 천안함이 침몰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수색지역을 분담해 좌표로 알려줬다. 장씨는 359호 참수리정과 짝을 이뤘고, 최씨가 탄 연성호와 약 1.5km의 거리를 유지한 채 어군탐지기로 수색작업을 시작했다.

 

3시간여가 지난 뒤, 장씨 선박의 어군탐지기에 이상한 물체가 포착됐다. 수심 42m 정도 지점이었다. 순간 천안함의 선체라고 판단한 장씨는 곧바로 함께 수색하던 참수리정에 통보했다. 해군은 오후 10시경 장씨로부터 전달받은 좌표로 기뢰제거함인 옹진함을 보냈고, 음파탐지기를 동원해 천안함 함미로 추정되는 물체를 최종 확인했다.

 

천안함 함미를 찾아낸 장씨의 배는 17년 된 어선이었고, 4년 전에 구입한 어군탐지기는 250만 원짜리였다. 어군탐지기는 배 밑바닥에서 45도 각도로 쏜 초음파가 물체에 부딪친 뒤 되돌아오는 정보를 수집해 물고기 떼나 암초를 탐색하는 장비다.

 

어선이 어군탐지기로 함미를 먼저 찾은 후 해군에 알려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장씨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해군에 대해선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비난이 쏟아졌다.

 

언론은 "어민이 함미 발견…군은 뭐하나?"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평소 '첨단 해군'이라고 큰 소리 치더니, 한낱 낡은 어선보다 못한 것 아니냐는 식이다. 한 누리꾼은 "앞으로 우리의 국방은 어민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힐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31일 장촌포구에서 만난 장세광씨는 이런 여론에 대해 정색을 하며 항변했다. "수색작업 나가서 군인들은 못 찾고 어민이 찾았다고 하는데, 절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장씨는 인터뷰 요청조차 냉정하게 거절했다. 지난 3일간 있었던 언론의 보도 행태에 극도의 불신감이 생긴 것이다.

 

"어민이 찾은 게 아니고, 해군과 함께 찾은 것"

 

장씨는 "해군하고 우리 어민하고 같이 (함미를) 찾던 중이었고, 우연치 않게 나한테 찍힌 것"이라며 "해군으로부터 어느 지역을 수색할지 정보를 받아, 협조를 한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해군보다 앞서서 함미를 찾은 게 아니라, 해군과 함께 찾았다"는 것이다.

 

 

해병대 출신인 장씨는 지난 1998년부터 백령도에서 까나리 어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백령도에서는 장씨뿐만 아니라 모든 주민들이 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특수 관계에 있다. "(평소 군과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는 백령도 주민으로서) 사고가 터진 후 군에서 협조 요청이 왔기 때문에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장씨의 말대로 이번 함미 수색 작업은 민·군 간 협력의 성공사례로 볼 수 있다.

 

"해군, 욕하지 마라. 해군을 자꾸 욕할 게 아니라 해군한테 힘을 줘야 맞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자꾸 해군을 흔들어대면 바닷물에 들어가는 구조대원들의 심정이 어떻겠나. 자기 목숨 걸고 (구조작업을) 하는 사람들한테 만날 제대로 못한다고만 하고…. 그럼, 자기들이 들어가서 하든가…. 남들은 목숨을 걸고. 30일에도 (구조대원) 한 명이 죽지 않았나."

 

그는 "실종자 가족들이 그렇게 원망하는 것은 이해를 한다"면서 "하지만 언론에서 그러면 되나, 자신의 동생이 해군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기사를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씨는 기자를 향해 한참 동안 울분을 쏟아낸 뒤, 포구 한쪽에 펼쳐져 있는 노란색 까나리 그물을 향해 돌아섰다.


태그:#초계함 침몰, #천안함, #백령도, #장세광, #어군탐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