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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동행...

 
처음부터 실타래 풀리듯 술술 잘 읽혀지는 책이 있다. 읽으면서 바로 내 안에 녹아들어 함께 공감하고 웃고 울고 손뼉치고 끄덕이며 책 속에 빨려 드는 책 말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내게서 튕겨져 나가는 책이 있다. 익숙한 책읽기가 아닌 경우가 그 중 하나다. 불편한 동행이다. 거기다가 <공격적 책읽기>에 소개된 책은 대부분 읽지 않은 책이라는 점이 더 불편하게 했다. 저자의 말대로 책을 비평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해야 올바른 비평을 가할 수 있다.

 

선 이해 없이 다음 이해도 도출이 어렵다. 이래저래 동행이 불편하다. 하지만 살면서 어디 행복한 동행만 있던가. 때로는 마음 불편한 사람과 억지로라도 오리든 십리든 함께 길 가야할 때도 있는 법이다. 동행이 불편하다 해서 전부가 불편한 것도 손해 보는 것만도 아니다. 불편한 동행에서 또 다른 배움이 있고 유익도 있는 법. 며칠을 끙끙 낑낑 씨름하듯 동행했다.

 

공격적 책읽기?

 

저자가 말하는 공격적 책읽기란 찬반을 분명히 하는 읽기요 쓰기이다. 해서 적극적인 읽기와 쓰기를 요구한다. 소설가 조정래는 '책 한 권을 읽는데 이틀 걸렸으면 이틀을, 사흘 걸렸으면 사흘을 생각하는 일에 바치라'고 했고, 애들러는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완료된다'고 했다. 저자가 소개한 책들은 반대를 위한 적극성과 '공격성'이 두드러진다. 또한 철학을 전공한 만큼 논리전개가 활발하고 전환이 빠르며 속도감 있고 설득력 있는 결론을 도출해 낸다.

 

저자는 모티머 애들러의 '독서법'에 토대를 두고 서평하고 있다. 애들러의 '독서법'에서 '공격적 책읽기'는 분석 독서에 해당된다. 책에서 먼저 발견되는 것은 1장-12장까지 '돈, 기도, 문화, 평화, 타종교, 이성, 고통, 국가, 정치, 무신론, 과학, 전쟁' 등 다양한 주제로 접근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많은 책들을 한데 엮어 그 책에 대한 논평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1장 '김동호의 <깨끗한 부자를 읽고>에서 성경적 근거로 '깨끗한 부자'를 비평하고 기독교인의 재물관을 고민케 한다. 2장은 윌킨스의 <야베스의 기도>와 전병욱의 <히스기야의 기도>를 놓고 '더 잘못된 기도'와 덜 잘못된 기도'라고 평가하고 기도의 진정성을 추적한다. 평가기준은 리처드 포스터의 <기도>에 둔다. 3장, 이상훈의 <문화로 엿보는 그리스도, 예수로 바라보는 문화>에서는 신학과 철학, 역사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유기체적 지식인의 풍모를 느끼게 한다고 칭찬하나, 문화를 정식으로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될 것이라는 점과 세상 것이 아닌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꼬집는다.

 

4장, 김두식의 <누가 칼을 쳐서 보습을>은 '참 평화주의'가 무엇인지 책을 빌려서 고민하고 논증하는 글이다. 5장, 존 힉의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는 다신론을 섬기는 현대사회에서 기독교인은 누구이며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며, 6장 쉐퍼의 <이성에서의 도피>에서는 쉐퍼의 견해를 뒤엎고 오늘 우리의 문제는 이성과 기독교의 분리가 아니라 양자의 밀착에서 오는 것이라 지적한다.

 

해롤드 쿠쉬너의 <왜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에서는 유대교 랍비인 쿠쉬너의 개인적 체험을 통해 '고통'과 '기도'에 대한 성경적 통찰을 담고 있으며, 8장, 문부식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을 통해 우리 안의 파시즘과 함께 우리 안의 세상, 즉 교회 안의 세상과 싸워야'함을 역설한다. 9장, 이상원 편저의 <한국교회와 정치윤리>에서는 교회의 정치참여, 과연 옳은 일인가를 논한다.

 

10장, <지성인을 위한 무신론>에서는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고 있는 이들에게 경계로 삼을 내용이다. 11장, 윌리엄 뎀스키의 <지적 설계>는 '나쁜 신학'과 '좋은 신학'은 무엇인가? 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12장, 로이드 존스의 <하나님은 왜 전쟁을 허용하실까?>는 전쟁에 대한 신앙적, 성경적 올바른 관점을 고민케 한다.

 

김동호의 <깨끗한 부자를 읽고>라든지 윌킨스의 <야베스의 기도>와 전병욱의 <히스기야의 기도>등은 꼭 다루어야 할 부분을 잘 다룬 것 같아 속이 시원할 정도다. 윌킨스의 <야베스의 기도>와 같은 경우는 한 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비평의 여과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였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자칭 쉐퍼의 아들이었다고 하는 저자가 쉐퍼를 떠나 쉐퍼의 견해를 뒤엎지만, 나는 쉐퍼의 많은 책들 속에서 공감하는 것이 많기에 저자의 견해를 무조건 수긍하기는 힘들다. <이성에서의 도피>는 읽지 않아서 일단 비평은 보류해야 할 듯 하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문학이나 예술 등 다양한 책 소개와 비평이 아쉽다는 점이다. 해서 부드러운(?)정서적 교감이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쉐퍼가 말한 분수령의 문제다. 쉐퍼가 살고 있던 스위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높이 불쑥 솟은 바위가 있는데 그 양쪽에는 계곡이 있다한다. "눈은 분수령을 따라 겉보기에 하나가 된 듯한 모습으로 연이어져 있지만, 눈이 녹아서 흘러내리면 그 물의 종착지들은 문자 그대로 수천 마일이나 서로 떨어져 있다. 이것이 분수령이다."

 

바위 모서리의 한쪽에서 눈이 녹아 흘러나온 물은 조그만 강이 되고 나중에는 라인강을 이루고 라인 강은 독일을 통과해 북해의 차가운 물과 합류하는 것으로 끝이 나고, 바위 모서리의 다른 한쪽에서 녹아 흘러나온 물은 론 계곡으로 떨어져서 레망 호수(영어권에서는 제네바호수라고)로 흐른 다음 아래로 내려가 론 강을 이루고 론 강은 프랑스를 통과하여 지중해의 따뜻한 물로 합류한다고 한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고 전혀 다른 길로 간다는 것이다. 올바른 관점을 견지하기 위해선 얼마나 노력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한다.

 

행복한 동행으로...

 

저자의 말에 의하면 그의 서평은 '본 받지 말아야 할' 책들에 대한 서평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올바른 관점을 이끌어내기 위한 나쁘지 않으나 좋지는 않은 책 서평을 통한 일깨움이랄까.  부록처럼 딸려있는 '함께 읽을 책'은 반대로 '본 받을 만한 책들이다. 한 장 한 장 서평을 읽다보면 저자가 얼마나 한 개의 서평에 시간과 공을 들이고 파고들어 고민하며 쓴 것인지 치열함이 보인다. 이 책은 저자가 말하는 좋은 서평의 요구(정보와 통찰)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읽고 사색하고 음미하는 여과 과정을 통과한다. 빻은 곡식을 채에 내려 걸러내듯, 사색의 여과과정을 통해 고운 가루로 오롯이 빠져나온 엑기스만 내 속에서 녹여서 마음을 비롯해 정신과 영혼에 보이지 않는 자양분이 되어 새로운 창조성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편향된 나의 독서성향과 그동안 써온 서평들이 올인 해서 깊이 읽고 썼는지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깊이 읽고 끈질기게 추적해서 가장 좋은 글을 쓰기보다는 한껏 밀어붙이다가 힘이 빠져 대충 쓰고만 그런 서평은 없었는지 생각했다. 이제 공격적 책읽기도 불편한 동행이 아니라 행복한 동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책: <공격적 책읽기>
저자:김기현
출판:SFC
2004년 6월 5일 출판/가격: 8,000원


공격적 책읽기

김기현 지음,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2004)


태그:#김기현, #공격적책읽기, #S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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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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