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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꽃, 애기나리, 말발도리, 노루귀, 너도바람꽃, 며느리밥풀꽃, 족도리풀, 노랑제비꽃을 비롯한 여러 종의 제비꽃들. 삿갓나물, 투구꽃, 누리장나무꽃, 짚신나물, 물봉선, 쓴풀, 팥배나무꽃, 노린재나무꽃….

지난해 처음 만났던 꽃들이다. 외에도 다 기억해내지 못할 만큼 정말 많은 꽃들을 만났다. 산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야생화와의 만남도 그 중 하나다. 봄기운을 느끼면서 마음이 이들을 만났던 산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분홍노루귀의 다양한 꽃모양새
 분홍노루귀의 다양한 꽃모양새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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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즈음 어느 날은 오직 노루귀와 변산바람꽃을 만나고자 대중교통으로 2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산에 가기도 했다. 산속에서 한나절 내내 이들을 만나는 동안 내가 사는 곳 가까이 두고 봤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일었다.

야생화를 집에서 기른다는 것은 언감생심, 하지만 동네 뒷산에 씨앗을 뿌려본다면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에서 자라는 것들을 함부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 산림절도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나비와 벌이 거의 없는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바람꽃과 노루귀 등은 어떻게 번식을 할까? 바람이 씨앗을 날려줄까? 족도리풀은 꽃을 왜 땅에 바짝 두고 피우는 걸까?'

신기하고 예뻐서 가까이 두고 싶다는 단순한 욕심이 아니었다. 사실 이처럼 꽃샘추위 속 언 땅을 뚫고 꽃대를 밀어 올려 여린 꽃을 피우는 이들의 생태가 무엇보다 궁금했다. 또한 일정한 곳에만 자라는 것보다 좀 더 많은 곳에 자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꽃을 알게 된다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이런지라 꽃을 보고 온 후 한동안 그 꽃을 만났던 산으로 마음이 쉴 새 없이 달려가곤 했다.

그러나 마음뿐, 아무 때나 쉽게 나서기에는 너무 먼 거리라 그날 이후 한 번도 다시 가보지 못했다. 막상 시간을 내어 간다고 해도 이미 지고 만 꽃의 포기를 만날 수 있을지, 씨앗을 얻을 수 있을지 잘 알지 못하는지라 또한 쉽게 나서지 못했다.

'노루귀' '족도리풀' '애기나리'... 집에서 길러 볼까요?

식물원에서 또는 식물도감을 보다가 마음에 쏙 드는 야생화를 보는 경우가 있다. 산에 가서 몰래 캐올까? …. 그러나 이는 산림절도죄에 해당하는 일로 두고두고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고, 자칫하면 귀한 생명 하나를 죽이는 일이 된다. 마음에 드는 식물이 그 지역의 독특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고 있는 희귀식물이라면 더 큰 일이다. 산에서 내려와 살아가야 할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덥석 가져온 희귀식물이 죽어 버린다면? 가져온 사람은 지구상에 어렵게 살아남아 있는 식물종 하나를 멸종시키는데 일조한 것이 된다. 너무 심각한가? 그렇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굳이 내 곁에 둘 수 없는 희귀식물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한 식물들을 골라보자. 늘 보던 식물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면 이곳저곳에 숨겨진 매력이 아주 많은 법이다.-<집에서 기르는 야생화>중에서

<집에서 기르는 야생화>(현암사 펴냄)는 산과 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우리 야생화 100종을 선별, 집에서 쉽게 기를 수 있도록 설명한 책이다.

<집에서 기르는 야생화>겉그림
 <집에서 기르는 야생화>겉그림
ⓒ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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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 애기나리, 족도리풀, 매발톱, 할미꽃, 이질풀, 돌단풍, 물레나물, 타래난초, 용담, 앵초, 제비동자꽃, 왜솜다리, 초롱꽃, 새우난초, 갯장구채, 천남성….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늘푸른잎, 이렇게 5장으로 구분하여 소개하고 있는 100종의 야생화 목록을 보다가 반가운 마음에 먼저 찾아 읽은 것은 노루귀와 족도리풀, 그리고 애기나리이다.

지난해,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만나던 이들과의 만남이 워낙 가슴 설렜거니와 이들을 내가 사는 동네의 산에서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었기 때문이다.

애기나리는 꽃을 피운 봄부터 까만 열매를 볼 수 있는 가을까지 북한산과 도봉산 여러 구간에서 워낙 자주 만났기 때문에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랄 수 있을 것 같아 지난해 가을 씨앗 몇 개를 채집해 야생의 상태처럼 동네 뒷산에 뿌려뒀다. 4월이나 5월에 꽃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와 함께.

하지만 올봄 동네 뒷산에서 애기나리를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접어야겠다. 모든 열매에 씨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열매에만 씨가 들어 있으며, 씨앗을 감싸고 있는 열매의 검은 껍질을 벗겨낸 후 씨를 발라 뿌려야 하며, 싹이 튼 후 2년차에나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껍질을 벗겨낸 후 씨를 발라 심었을 텐데 그냥 뿌리고 말았다. 때문에 애기나리에게 미안해진다. 그래도 '혹 볼 수 있지 않을까'의 기대를 해봐야겠다. 운이 좋게 비바람에 껍질이 벗겨져 싹을 틔울지 모르니 말이다.

애기나리는 밖에서 기르는 방법만 소개하고 있지만, 노루귀와 족도리풀은 꽃밭과 베란다에서 기르는 방법을 각각 설명한다. 다른 야생화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처럼 그 야생화의 특징에 맞춰 기르기 좋은 조건에 맞게 씨뿌리기, 포기나누기 등을 조근 조근 설명한다.

족도리풀이 꽃을 피웠다-2009.4.18.북한산
 족도리풀이 꽃을 피웠다-2009.4.18.북한산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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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 늘리기-씨뿌리기 : ①꽃이 지고 8주 정도 지나면 씨가 익는다. 개미가 씨를 물고 사라지기전에 받아야 하므로 씨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곧 줄기째 잘라 그늘에 둔다. ②5월 중순경 모아 둔 씨를 흩어지게 뿌린다. ③10월 하순경이면 흙 속에서 씨껍질이 벗겨지고 뿌리를 내린다. ④밖에서 겨울을 난 씨는 4월 중순 경에 새싹이 트고, 서리가 내리지 않는 실내로 들여온 씨는 3월 초순경에 싹이 튼다. 본 잎은 대개 1장만 나온다. ⑤장마 전에 내년에 싹을 틔울 눈이 생겨난다. ⑥잘 자란 포기는 2년차에 꽃이 핀다.-책속에서

노루귀는 아시아에서만 주로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 여러해살이풀로 꽃도 앙증스럽고 예쁘기 때문에 키워볼 만 할 것 같다. 봄에 꽃을 피운 후 뿌리를 캐내어 포기나누기를 해주는 방법으로 한번 씨를 뿌려 여러 해 꽃을 볼 수 있단다. 화분에 심어 밝은 그늘 아래 두면 봄부터 가을까지 잎이 지지 않으며, 가을이면 잎이 자줏빛으로 물이 들어 아름답단다.


족도리풀 : 꽃가루받이가 된 꽃은 피었을 때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씨방만 둥글게 커지면서 땅바닥으로 고개를 숙인다. 5월 중순~6월 초순에 열매살이 팥소처럼 부스러지면서 씨가 쏟아져 나온다. 씨가 나오기 전에 개미들이 먼저 열매 밑을 분주히 돌아다니므로 참고한다. -책속에서


자줏빛주머니에 작은 보석 몇 개를 넣어둔 듯 피우는 족도리풀도 꼭 길러보고 싶다. 꽃대를 어떻게 밀어 올리며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 등과 같은 생태적 특성이 썩 궁금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한산에서 이 꽃을 만난 것은 4월 중순, 씨를 찾아 5월 중순쯤 가봐야겠다.

종자도 자원인 시대, 야생화도 훌륭한 자원

애기나리는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 까만 열매를 1~2개씩 맺는다.
 애기나리는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 까만 열매를 1~2개씩 맺는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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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스무 해 넘게 야생화들을 기르며 이들 식물들을 살피는 일을 하고 있다. 저자는 소개하고 있는 100종의 야생화 기르기 설명에 앞서 흙이나 도구, 씨뿌리기와 포기나누기 등 식물 혹은 야생화를 제대로 기르려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것들부터 50여 페이지에 걸쳐 설명한다. 야생화는 물론 식물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많을 것 같다.

꽃집의 수많은 종류의 외국산 원예종들 틈에서 개량품종한 우리의 야생화를 만나면 반가워 한번 길러보고 싶어지지만, 막상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외국산 원예품종들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종류도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이런 아쉬움을 채워 주며 선택을 돕고 있다.

꽃집에서 만나는 외국산 원예품종들에는 외국 종자 값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종자값, 즉 로열티를 외국에 지불하고 구입하는 식물 중에는 순수한 외국산도 있지만, 우리 고유의 식물이 외국으로 건너가 그들에 의해 개량되다보니 도리어 돈을 주고 사는 것들도 있다. 종자도 자원인 시대다. 이 책은 소중한 자원인 우리 식물을 다시 보게 한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야생화를 쉽게 기를 수 있게 의도된 책이지만, 나아가 원예업자들이 우리 꽃을 자원화 하는데 적극적인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또한 서양 원예품종 일색인 우리의 베란다와 아파트, 공원, 가로변 공원에서 우리 야생화가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면서 읽었다.

<쉽게 찾는 우리 꽃>, <우리 꽃 답사기>, <한국의 야생화> 등의 저서들로 유명한 한국야생화연구소 김태정 소장의 사진들과 저자의 세밀화으로 야생화의 기본적인 생태 특성까지 자세하게 정리했기 때문에 식물도감으로 활용해도 좋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집에서 기르는 야생화|강은희 (지은이) |김태정 (사진) |현암사 2010-02-25)|16,500원



집에서 기르는 야생화 - 내 집 베란다와 정원에 야생화가 핀다

강은희 지음, 김태정 사진, 현암사(2010)


태그:#야생화, #노루귀, #애기나리, #족도리풀, #종자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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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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