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승적부에서 내 이름을 스스로 지워버리겠다."

 

21일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에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한 명진 스님의 말이다. 전제 조건은 "만약 자신이 한 말이 근거 없는 이야기로 밝혀진다면"이다. 열아홉에 출가해 40년을 수도자로 살아온 명진 스님은 스스로 밝혔듯이 종교인으로서 모든 것을 걸고 외압설을 폭로한 셈이다.

 

지난 2006년 봉은사 주지로 취임한 명진 스님은 봉은사의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경내를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등 사찰 개혁을 착실하게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봉은사의 일요법회 참석자는 150명 수준에서 1000여 명 선으로 늘었고, 시주금도 연 80억 원에서 125억 원으로 늘어났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상임집행위원장과 본부장을 맡고 있는 명진 스님은 현실 참여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작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1000일 기도를 중단하고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8월 30일에는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해 유가족들에게 신도들이 모금한 1억 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명진 스님의 행보가 집권여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외압설의 근원이 된 셈이다.

 

명진 스님의 주장하는 외압설의 실체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작년 11월 13일 오전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과 안상수 원내대표, 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이 만났다는 것. 이 자리에서 안 원내대표가 자승 스님에게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 부자 절의 주지를 그냥 놔두어서 되겠느냐?'는 발언을 했고, 모임에 배석했던 김영국 조계종 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이 자신을 찾아와 이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작년 11월 30일 명진 스님이 자승 총무원장,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총무원장에게 '총무원장이 되시니 청와대로부터 자신에 대한 압박이 들어오지 않는지'라고 물었을 때 '좌파 주지가 돈 많은 절에 앉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즉 명진 스님은 이 자리에서 김영국 위원으로부터 미리 전해 들었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명진 스님의 발언 직후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황당한 일"이라며 자신은 "봉은사 주지 스님이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조계종 총무원 측도 '봉은사 직영화' 배경에 외압은 없으며, 직영은 서울 지역 포교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22일 조계종 총무원 원담 스님은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문제는 조계종단 내부의 법적 근거와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며 "명진 스님의 주장은 검토하거나 대응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작년 11월 30일 명진 스님, 자승 총무원장과 함께 식사를 했던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도 "지난해 11월 셋이서 식사를 했지만 이런 얘기가 나오기 전이라 이번 건과는 무관하다. 다만 안상수 대표가 총무원장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건 최근 불교계에 나도는 얘기로 나도 들어 알고 있다"고 밝혔다. 진실 여부를 가릴 한 당사자 측이 명진 스님의 주장을 부정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명진 스님은 안 원내대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2일 오전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명진 스님은 "안상수 원내대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제가 (과천에 있는) 연주대 선원장으로 있을 때 안상수 원내대표와는 초파일마다 식사를 같이해서 잘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또 명진 스님은 "(안 원내대표가) 저와 잘 아는 사이면서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은 기억력이 나쁘거나, 제가 현 권력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하는데 비판을 모른다고 하면 머리가 나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도 작년 11월 명진 스님에게서 동일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증언하고 나섰다. 22일 오전 이 교수는 평화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국민소송단을 구성할 때 명진 스님을 두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당시 "스님이 '안상수 원내대표가 어느 자리에서 강남 한복판에 있는 봉은사 주지가 좌파를 하고 있다고 자신을 비난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며 '굉장히 기막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또 "명진 스님은 그런 말에 대해서 '안상수 대표는 병역도 안 한 사람이고 나는 맹호부대원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는데 도무지 누가 더 좌파냐'고 말했다"며 "스님하고 우리는 그런 말을 나누면서 가볍게 웃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이렇게 심각한 진실게임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발언은 명진 스님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외압설 사실로 밝혀질 경우 지방선거에서 여당 상당한 타격 입을 듯 

 

하지만 외압설의 당사자 안상수 원내대표는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작년 11월 13일 식사자리에는) 총무원장과, 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과 나 이렇게 셋만 있었다. 자료만 받고 식사를 했는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황당하다"고 해명했다.

 

안 대표가 실제로 문제의 발언을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식사자리에 배석해서 안 원내대표의 말을 듣고 명진 스님에게 전달했다고 알려진 김영국씨의 증언이 결정적이다.

 

김씨는 22일 <불교포커스>와 한 통화에서 "명진스님의 이야기는 100% 사실"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명진스님의 발언을 놓고 "봉은사 주지스님이 누군지도 모른다. 사실무근이다"라고 부인한 데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총무원과 안상수 대표는 부인하지 말고 사실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고 <불교포커스>는 전했다.

 

외압설의 실체를 밝히는 것과 함께 불교계가 이번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부 또한 관심 사다. 이미 불교단체에서는 '정치권 외압설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어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을 긴장시키고 있다. 외압설이 진실로 드러난다면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종교 갈등'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정부와 불교계의 관계는 여러 차례 경색국면을 맞았다. 그 근저에는 종교 편향이란 오해를 부를 만한 정부의 여러 조치와 공직자들의 언행이 있었다. 작년에 자승 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국정원 관계자가 조계종 총무원에 전화를 걸어와 조계사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 시민단체의 행사를 무산시켰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명진 스님은 자신이 자승 총무원장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면서, "(총무원장이) 직영 사찰 의결 전날 저를 불러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참회한다'며 고개를 숙였다"며 "자승 총무원장이 '말 못할 사정'이란 정치권의 외압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21일 법회가 끝난 후 기자가 만난 봉은사 신도들은 대부분 '명진 스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는 태도를 보였다. 김아무개(62‧송파구 잠실동)씨는 "정부가 불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태도가 이번 일을 계기로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어떻게 공당의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종교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느냐"고 분개했다.

 

이서영(여·47·분당구 정자동)씨도 "차마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명진 스님이 거짓으로 말씀하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외압설이 진실로 드러난다면 안상수 원내대표는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봉은사, #명진 스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