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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고 했지만...막상 부담스러워 모르쇠?

 

해남 북일면 신월리에 위치한 북일중앙교회를 찾아가는 길이다. 이미 땅거미 내려앉은 3월의 오후 시간, 어둠이 뒤덮기 전에 교회 위치부터 정확하게 알아놓고 근처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고 가야했다. 집에서 출발해 해남에 도착한 뒤에 미리 전화를 해 놓았고 오후에 한 번 더 확인 차 전화해서 목사님께 숙소문의를 했었다.

 

어둠이 오기 전에 교회위치부터 찾자. 북일면은 대둔산 도립공원을 나와서 중도에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 가다가 다시 오른쪽 옆길로 빠지면 언덕진 산길을 넘어 마을이 나왔다. 두륜산 두륜봉에서 내려다보이던 그 마을이었다. 마을로 접어들어 동네 아주머니한테 다시 길을 물었다. 북일초등학교 앞에서 땅끝 쪽(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버스터미널이 나오고 24시 편의점 근처에 있다고 했다.

 

일러준 길 따라 조금 더 내려오니 불을 밝힌 '24시 편의점'이 보인다. 24시 편의점 앞에서 교회십자가가 보이는지 두루 살피니 저쪽 길 건너 맞은편 동산 언덕에 교회 십자가가 보인다. 멀리 떨어져 있는 교회이지만 마치 바닷길 등대처럼 반갑다. 바로 저긴가 보다. 어느 곳에 가든지 마을마다 교회 십자가가 높이 서 있는 것을 보면 그저 반갑다.

 

여행을 하다보면 아주 작은 마을, 교회가 없을 것 같은 몇 호 되지 않는 그런 마을조차도 어김없이 교회가 있는 것을 보면 감동이 밀려오곤 한다. 어두운 바닷길을 밝혀주는 등대와 같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과 같고, 구원의 방주 같은 교회들.

 

비록 이 땅에 세워진 교회이기에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때때로 교회마다 잡음이 일기도 하고 빛 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세상에 눌리기도 하는 것을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교회는 아직까지 지상에서 등대이며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빛이며 구원의 방주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성도들의 모임이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이다.

 

길 건너 교회 가까이 가서 북일중앙교회를 확인하고 나왔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저녁을 간단하게 먹을 만한 식당을 찾다가 강진 쪽으로 가는 길로 나갔다. 얼마쯤 갔는데도 계속 인적 드문 길만 이어진다. 해남읍까지 나갈까?! 생각하고 둘러보다가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는 기사식당을 발견했다. 백반을 시켜먹고 다시 교회로 향한다. 어느새 깜깜하게 어둠이 깔렸다.

 

왔던 길을 되짚어 차를 돌려 가는 길은 한적하고 어둡다. 낯설어 조금 불안하다. 얼마쯤 차를 달리다보니 북일면 마을 불빛이 보인다. 24시 편의점이 있는 삼거리에서 맞은 편 골목으로 차를 돌려 미리 확인해 둔 교회로 향한다. 교회 쪽으로 가는 길엔 인가가 거의 없고 한적하다. 목사님한테 저녁을 먹고 가겠다고 먼저 얘기해 놨는데 언덕바지에 있는 교회는 불빛하나 없이 깜깜하다. 교회 앞에 차를 세웠다.

 

어디에도 불빛 한 점 새어나오는 곳이 없다. 오른쪽엔 교회 본당 건물이 높이 서 있고 왼쪽엔 길게 단층으로 된 복지관, 유치원건물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차 소리도 들렸을 법한데 교회주변은 조용하고 어둠만 웅크리고 있다. 낯선 지역에서 낯선 교회, 그것도 인가와 떨어져 있는 교회의 어두움.

 

오라고 하긴 했지만 막상 부담이 되어서 모르쇠 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요즘은 세상이 험해서 방문하는 나그네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선뜻 선의를 베풀 수도 없는 세상이다. 나의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지 않고 악 이용하는 이들이 많으니 마음 문을 선뜻 열수도 없는 세상이니 그럴 만도 하다.

 

특히 우리처럼 한 번도 찾아온 적도 없고 목사님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숙소에 재워달라고 전화했으니 망설여졌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국토종단 첫날, 숙소 얻느냐 못 얻느냐가 성공 결정

 

나는 남편에게 교회에서 나가서 해남읍내로 나가자고 말했다. 차라리 사람 많은 곳에 있는 찜질방이라도 가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설령 교회 문이 열려 있어서 여기서 잘 수 있다고 하더라고 인가와 뚝 떨어져 있는 낯선 교회에서 우리 두 사람만 남아 낯선 밤을 지내다는 것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적요감이 감도는 교회 마당에서 얼른 차를 돌려 교회를 벗어난다. 남편은 목사님한테 왔다가 그냥 간다고 얘기는 해야 한다며 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목사님께 전화를 하자 '오셨어요?' 한다. 교회 왔다가 그냥 간다고 말씀드렸다. 시내에 나가서 자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오신다고 해서 보일러도 틀어놓고 다 준비해 놓았다'고 하신다. 자꾸 오시란다. '깜깜한 데다 아무도 없더라'고 했더니 그쪽이 아니라 교회 옆 반대쪽에 숙소가 있다고 했다. 그런가?! 우린 다시 차를 돌렸다. 교회 앞마당에 차를 세우고 다시 가보니 우리가 묵을 숙소는 본당 건물 뒤쪽에 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교회본당건물을 지나 옆으로 돌아가니 단층으로 된 건물이 따로 있다. 교회가 언덕 위에 있으니 사택은 어두워서 잘 안보이지만 바로 언덕 아래 있는 모양이었다. 차를 세우고 조금 있으니 목사님이 랜턴을 밝히고 우리를 맞으러 나오셨다. 어둠 속에서 경계심 없이 목사님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우리를 숙소로 안내했다. 손에는 우리를 위해 준비한 해남 물고구마가 들려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목사님은 불을 밝히고 우리를 들어오라고 했다. 목사님은 격의 없이 소탈한데다가 나그네들을 편안하게 해 주는 따뜻한 카리스마를 지닌 분이다. 실내에 들어가 불을 밝힌 후 넓은 거실과 아이들 공부방으로 쓰는 왼쪽 직사각형의 넓은 방을 보여주시고 또 부엌, 화장실 등을 일러주었다.

 

"두 분이 오신다고 해서 큰 방이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사무실을 특별히 내준다."

 

거실 바로 앞 그러니까 가운데 있는 공간은 직원사무실로 쓰는 곳이었다. 두 대의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놓여있고 사무용 집기들 몇 개가 놓여 있다. 안쪽 벽면에는 이불장에 이불이 차곡차곡 개켜져 있어 가득하고 베개도 층층이 쌓아놓고 있다. 미리 방을 따뜻하게 데우시느라고 보일러를 켜고 요와 이불을 반듯하게 깔아놓은 목사님의 세심한 배려와 온정이 느껴졌다.

 

방은 아담하고 정갈하고 따뜻했다. 참 세심한 배려였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씀하시고 또 소탈하고 사람 좋은 웃음으로 연신 싱긋벙긋 웃으시며 숙소로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짧게 말씀하셨다. 북일중앙교회는 1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교회다. 이 건물은 어린이 공부방과 노인들을 위한 무료진료를 위해 일주일에 두 번 개방하고 있으며, 여행객들에게 숙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국토 순례를 하는 젊은이들과 무전 여행하는 사람들이 여기를 찾아오면서 입소문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어 자연히 도보 여행자들의 쉼터가 되었단다. 특히 오지 여행가 한비야가 국내로 들어와서 국토 순례를 하고 쓴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에 소개하면서 더 유명세를 타게 되어 국토종단, 무전여행, 일반 여행자들도 즐겨 찾는 나그네들의 쉼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한비야의 책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를 읽은 적이 있지만 나는 그 대목을 보지 못했으니 제대로 읽지 못했나보다. 낯선 땅, 낯선 곳에 와서 마땅히 잘 곳도 없는데 그래서 걱정인데 무료로 잠잘 곳을 얻는다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겠냐고 말씀하셨다. 주로 국토 순례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일반 여행객들에게도 알려져서 한 가문의 사람들이 왕창 와서 머물다 가기도 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연세가 70세가 넘으신 어르신이 국토순례를 오셨더란다. 밤이 늦도록 목사님과 말씀을 나누셨고 지금도 종단하면서 어디쯤 왔다고 간간이 전화를 해 오신다고 했다. 국토순례를 시작한 사람들이 땅 끝에서 걸어오면 첫 날 이곳에 도착하는데 맨 처음 도착한 이 마을에서 잠 잘 곳을 얻느냐 못 얻느냐가 바로 국토순례를 성공하느냐 못하느냐가 좌우된다고 한다.

 

마을 주변에서 묵을 만한 숙소를 물어보면 이 교회로 가라고 일러준단다. 따뜻한 미소와 연신 소탈한 어투로 목사님은 얘기하시고 또 물어볼 게 있냐고 되물었다. 마지막으로 이곳 숙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한 가지 꼭 해야 할 의무사항이 있는데 방명록에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기재하고 소감을 꼭 남기는 일이란다. 문득, 나도 국토종단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 한번도 국토종단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국토종단은 '땅 끝' 마을에서 시작해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622km의 거리를 도보로 종단하는 여행이다. 차를 타고 스쳐지나가면서는 도무지 다 알 수도 없고 느낄 수 없는 운치와 상세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아~ 국토종단 하고 싶어라.

 

사랑의 빚을 지다...받은 사랑 흘려보내자

 

목사님이 사택으로 가시고 난 뒤, 우린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따뜻한 방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서 성경 말씀을 읽고 그날의 일기를 쓰다가 잠이 들었다. 우리 집처럼 편안하고 따뜻하게 쉴 수 있어 흐뭇했다. 새벽 4시, 교회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가 땅그랑~땅그랑~ 한참을 울려 퍼져 나갔다. 새벽을 깨우는 종소리, 아 이 종소리...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종소리인가. 까마득한 옛날 그 옛날의 종소리...마치 태고적 이야기처럼 까마득한데 여기서 잊었던 교회 종소리를 듣다니...새벽 종소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인근 마을에도 멀리멀리 퍼져 나갈 것처럼 울림이 깊고 컸다. 저 멀리 우뚝 솟아있는 대륜산 봉우리들을 넘고 넘어 보이지 않는 마을에도 닿을 듯한 종소리다.

 

새벽을 깨우는 교회종소리를 듣고서 일어나 교회로 향했다. 새벽예배는 4시 30분에 시작했다. 할머니 몇몇 분과 남자 분 몇 분이 앉아 있었다. 우린 그 뒤에 앉았다. 북일중앙교회의 새벽종소리에 새벽을 깨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기도로 여는 하루, 흐뭇한 새벽이다.

 

국토의 최남단에서 35km 거리에 위치해 있는 북일중앙교회는 국토종단 순례 철이 되면 해남 송지면 땅 끝 선착장에서부터 바닷길을 따라 하루를 꼬박 걸어온 국토종단 도보여행자들이 밀려와 더 바빠질 것이다. 그들은 또 하룻밤을 안락한 잠자리와 쉼터에서 다시 힘을 얻어 긴 여정에 오를 것이다. 나그네를 섬기기를 주님 섬기듯 하는 교회, 배우식 목사님의 섬김과 세심한 배려로 교회에 마련된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교회와 숙소들...특별히 이 곳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참, 많은 분들한테 많은 사랑의 빚을 진 것 같다. 우리가 받은 사랑이 참 많다. 나그네를 대접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사랑의 섬김을 본받아 우리도 그 받은 사랑을 또 다른 이들에게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하겠다.


#해남#북일중앙교회#배우식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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