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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벅찬 감동을 선사하지만, 그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는 순간 나 자신은 지극히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한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거대한 산, 시간의 옷을 입은 산들을 마주할 때면 나는 그 계곡을 지나치는 바람보다도 더 하찮게 지나치는 한 무엇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웅장한 하늘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도 위대한 자연은 인간이 어떻든 간에 자신의 갈 길을 가는데 우리는 너무도 헛된 문제들로 괴로워한다. 거리를 두고 물러나 인간의 삶을 바라보면 우리는 참 많은 것들 때문에 스스로 불행과 슬픔을 자초하는 듯하다. 우리가 중요하다, 소중하다 여기는 그 모든 것들이 자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위대한 자연 앞에 내비쳐지는 미천한 인간의 삶의 의미

 

마레 드 데우 드 라 페르투사(Mare de Deu de la Pertusa)를 지은 수도자 역시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으며 자신을 한없이 낮춘 자일 것이다. 산 계곡을 따라 깊은 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그 한 봉우리 위에 위태롭게 지어놓은 에르미타.

 

신이 세상을 지었다면, 그렇다면 신이야말로 우주에 존재하는 유일한 창조자, 예술가이다. 우리는 신이 만들어놓은 자연이라는 예술을 카피하는 아마추어들에 불과할 뿐이다. 자신의 미천함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 그 수도자는 대신 무엇을 얻었을까? 어떤 깨달음으로 인해 그 혹독한 삶과 외로움을 즐거움으로 만끽하며 지낼 수 있었을까? 나는 점점 알 수 없었다.

 

그 수도자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언젠가 지구는 소멸할 것이고 인류도 소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을 남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업적을 행하는 일, 전쟁하는 일, 서로 헐뜯는 모든 인간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지구라는 같은 배를 탄 여행동지들에 불과할 뿐인 것을….

 

나는 왜 살아가는가? 나는 이 글을 왜 쓰고 있는 것이며 왜 여행을 하며 왜 고민을 하는가? 갑자기 모든 것들이 부질없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소멸하는데 의미를 가진들 무슨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인가?

 

사진사 세바스티안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는 걸까

 

세바스티안은 에르미타 옆 작은 벼랑에 앉아 새로운 구름과 하늘의 빛을 기다리고 있었다. 따스한 태양이 구름에 가려지자 금세 초봄의 한기가 몸속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잔잔했지만 날카로움을 가진 바람이 계곡 위에 불고 있었다.

 

사진사 세바스티안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는 것일 것일까. 문득 너무도 자연스럽던 우리의 여행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는 4장의 카세트에 든 여덟 장의 사진을 핀홀카메라 안에 담은 후 사다리와 대형 삼발이를 접었다. 올라가는 길만큼이나 에르미타 산에서 내려오는 일도 고역이었다.

 

우리는 에르미타를 두르고 있는 계곡을 따라 산책을 떠나기로 했다. 유럽 전역에는 GR이라는, 빨간색과 흰색 페인트로 바위나 나무 위에 칠해진 막대기 모양의 이정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표시만 잘 따라가면 유럽 전역의 자연을 산책할 수 있다. 이곳에도 GR 표시가 5미터와 10미터에 하나씩 그려져 있었다.

 

구부러진 강 길을 따라 산의 지형을 따라 걷자니 눈앞에 새록새록 풍경이 돋아났다. 그들은 너무도 아름답고 웅장한 산들이었다. 마치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거대한 짐승들을 바라보는 느낌. 산의 높이와 길이 휘어질 때마다 나무와 풀들의 모습, 흙의 색도 바뀌었다.

 

이렇게도 많은 것이 존재하는 이 지구와 자연, 그 속에서 우리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순간을 누리고 자신의 시간에 기쁨을 더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가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찾는 일, 아름다운 것을 보고자 하는 마음과 비록 누추하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어쩌면 우리 삶의 참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거대한 산을 마주하며 벅찬 가슴을 느끼는 일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지은경 기자는 지난 2000~2005년 프랑스 파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최근 경상남도 외도 전시 기획을 마치고 유럽을 여행 중입니다. 현재 스페인에 머물고 있으며, 미술, 건축, 여행 등 유럽 문화와 관련된 기사를 쓸 계획입니다. 

사진작가 세바스티안 슈티제가 핀홀 카메라로 찍은 에르미타(ermita) 등 다양한 사진을 만나보시려면 세바스티안의 홈페이지(www.sebastianschutyser.com)를 찾아와 보시기 바랍니다. 


태그:#에르미타 익스프레스, #에르미타, #마레 드 데우 드 라 페르투사, #세바스티안,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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