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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 살고 있는 친구를 찾았다. 그동안 서로 바빠서 얼굴을 보지 못하였었다. 자동차로 달리면 1시간 정도의 거리임에도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서로 하는 일이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로 이해는 하고 있으나 보고 싶은 마음은 한 구석에 상존해 있다. 혼자 있으면 얼굴이 그려지는 것이 우정이다. 보고 돌아서도 또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우정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군산에 왔으니, 좋은 곳에 안내해봐라."

"그래? 향교에 가볼까?"

 

녀석은 옛것을 많이 좋아하고 누리면서 산다. 뿌리 없는 생명이 없다고 말하는 녀석이다. 오늘의 뿌리는 어제이고 내일의 뿌리는 오늘이라고 강조하는 녀석이다. 녀석의 이런 생각이 내 마음을 잡아버린 지 오래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머슴아 같고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아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누에고치에서 실이 풀려나오는 것처럼 끝이 없다. 특히 옛것에 대해서는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전주에서 출발할 때부터 구름이 무겁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결국은 찌푸린 얼굴을 터뜨리고 만다. 쏟아지는 빗방울이 반갑지 않다. 하늘이 고뿔을 먹었는지 도대체 진정을 하지 못한다. 바람이 불거나 아니면 눈이 내렸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3주 동안 내내 해님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 내려앉아 있다. 그런데 또 비를 뿌렸다.

 

옥구 향교. 가는 길목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그런데 3년 전에 폐교가 되었다고 한다. 농촌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농촌 학교가 사라진다는 것은 농촌이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학교는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다. 그런데 폐교가 된다는 것은 미래를 열어갈 어린이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농촌이 사라진다는 말과 같다.

 

 

농촌 학교에 1학년 신입생을 받지 못한 학교가 예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폐교된 학교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답답해진다. 학교가 사라지는 사회에서 내일을 찾아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학교는 사회 체제를 유지시키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농촌 학교 문제는 시급하다.

 

향교는 조선시대를 유지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향교에서 교육받은 선비들이 나라를 경영하고 나라를 유지 발전시켰다. 조선 500년의 역사는 선비들의 역사라고 하여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향교는 선비의 얼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향교가 운영이 잘 되고 있는 고장은 발전하는 고장이었다.

 

 

옥구 향교는 역사도 아주 오래되었고 규모도 예상한 것보다 컸다.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여느 향교와 마찬가지로 공자님을 모신 대성전을 비롯하여 단군성전과 문창서원 그리고 자천재까지 다양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 116 호로 지정된 자천재는 올곧은 선비정신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고 있었다.

 

향교에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최치원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최치원은 신라 사람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곳 옥구향교는 신라시대까지 그 연원이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이곳은 배움의 열기가 뜨겁고 원대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넘치는 한 그 것은 꼭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선비 정신

 

  매일 매일 교육 비리

  몽롱하다 답답하다.

 

  나라 구한 선비정신

  어디에서 찾아보나

 

  올곧은 선생님 표상

  나라 구할 이정표<春城>

 

향교에서 선비정신을 가슴에 새겨본다. 연일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는 교육 비리를 보면서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할 때다. 교육계는 우리 사회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세상이 모두 다 썩어도 교육계 특히 선생님만은 맑고 향기로워야 한다. 그래야 옹달샘이 되어 세상을 모두 다 맑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편작에 대한 일화가 생각난다. 위나라 왕 문후가 편작에게 물었다. 삼형제 중 의술이 제일 좋은 사람이 누구냐고? 편작은 자신이 가장 낮다고 답한다. 큰 형은 병이 나기 전에 고치고 둘째 형은 초기에 고친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의 중요성을 알지 못해, 형들의 이름이 나지 못하였고, 중병을 고치는 자신이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대답한 것이다.

 

선비들이 그랬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나서지 않았다. 오직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였고 바른 삶을 추구하였다. 명예나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이런 선비들의 바른 삶이 있었기에 조선은 500년을 지탱할 수 있었다. 교육비리가 연일 터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선비들의 올곧은 정신이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옥구 향교에서 선비 정신을 그리워하였다. 오늘을 맑고 향기롭게 해줄 수 있는 참 선생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다. 제자를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보람을 찾고 있는 선생님들이 필요하다. 음지에서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명예와는 상관없이 열심히 교단에서 어린이 사랑을 실천하는 선생님께 경의를 표한다.<春城>

덧붙이는 글 | 데일리언


태그:#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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