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은사스님이 다비되고 있는 연화대를 지켜보고 있는 법정스님의 제자 스님들
 은사스님이 다비되고 있는 연화대를 지켜보고 있는 법정스님의 제자 스님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아쉽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서운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는 분이 가시는 마지막 길을 영결식조차 없이 보낸다는 걸 서운해 하고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여느 성직자들께서 돌아가셨을 때처럼 처처에 빈소가 마련되고, 추모의 물결이 출렁이는 풍경이라도 봤으면 이토록 서운하거나 아쉽지는 않을 텐데 흘러가는 물처럼,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냥 보내드리고 있다는 게 사뭇 아쉽다고 하였습니다.

'옥' -  더 대단한 제자 스님들

아쉽다거나 서운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고 숭고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글로만 보았던 '청출어람'을 목견하고 있는 기분이라고 하였습니다.

동토의 땅에서 파랗게 돋아오르는 새싹들
 동토의 땅에서 파랗게 돋아오르는 새싹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생전에 법정스님께서 '수의를 입히지 말라', '관도 쓰지 말라', '어떤 행사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지라도 제자들이 따르지 않으면 영가의 몸이 된 법정스님의 유지는 말짱 도루묵이 되었을 겁니다.

그래도 어떻게 영결식도 치르지 않고 그냥 모실 수 있느냐며, 제자 된 도리를 다 한다는 명분이나 핑계로 이렇게 저렇게 영결식이라도 치렀다면 겉으로 드러나거나 뉴스화면에 비추는 장면은 그럴싸하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법정스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무소유'에는 오점이 되거나 똥물을 튀기는 부끄러운 일이 되었을 겁니다.

먼저 가신 큰스님들 중에서 '다비할 돈이 있으면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라'고 말씀하신 분도 있고, '사리 장사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무분별한 의식이나 혹세를 경계하셨지만 도리를 다 한다는 산자들의 어긋난 행동으로 묵살되거나 왜곡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은사 스님의 유지를 잘 받드는 제자 스님들이 더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은사 스님의 유지를 잘 받드는 제자 스님들이 더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불타오르고 있는 연화대를 지켜보고 있는 추모객들
 불타오르고 있는 연화대를 지켜보고 있는 추모객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가신 스님도 대단하지만 가신 스님이 남기신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들며 실천하고 있는 제자 스님들이 더 대단하다."

불타는 연화대를 보며 추모객들이 남긴 말입니다. "주로 나쁜 상황에서 쓰이는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표현을 모처럼만에 좋은 곳에 쓸 수 있다"며 "그 스승에 그 제자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른 것처럼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을 현실에서 보고 있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날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던 제자 스님들이 그 올곧은 판단력과 의지를 잃지 않고 더욱 단단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모범적인 본보기가 되길 갈망해 봅니다. 

'티' - 뒤바뀐 운구행렬 순서

검박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운구행렬, 펄럭이는 만장도 보이지 않고, 관도 상여도 쓰지 않아 가사자락으로 여민 법구만을 모시고 가고 있지만 운구행렬에도 순서는 있을 겁니다.

법정스님의 운구행렬에서 법구에 앞장서 있는 교계의 어른 스님들
 법정스님의 운구행렬에서 법구에 앞장서 있는 교계의 어른 스님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그동안 보아왔던 열일곱 큰스님들의 운구행렬과는 다른 순서(?)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에서 앞뒤가 조금 바뀌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치러졌던 큰스님들의 운구행렬에서는 인로왕번, 명정, 삼신번, 오방번, 불교기, 무상계, 법성계, 열반계, 만장, 향로, 영정, 위패, 독경단 등이 앞서고, 법구를 모신 상여가 따르고 상여 뒤로 상주스님들이 서고 그 뒤로 스님들을 위시한 추모객들이 뒤따랐는데 법정스님의 운구행렬에서는 법구에 앞서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 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상여조차 쓰지 않으니 운구행렬조차 소유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종단 최고의 실권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이 법구에 앞장서서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왠지 어색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습니다.

교계의 어른스님들이 원하거나 고집해서 그 자리에 서셨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동안에 봐왔던 또 하나의 질서, 스님들의 운구행렬에서조차 소위 출세나 권력 앞에서 뒤죽박죽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이번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송광사에서 주관했다고 합니다. 왜 법구 앞에 사람이 있었는지 궁금했던 필자는 송광사 종무소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자리에 없어 통화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행사를 집례하는 분들이 별다른 생각 없이 교계의 어른들을 예우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안내하였을 수도 있지만 '예'와 '의식'이 가치를 갖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흔들리지 말아야 할 절차와 지키고 간직하여야 할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은사스님인 법정스님보다 더 대단하다고 칭송한 제자 스님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은사스님인 법정스님보다 더 대단하다고 칭송한 제자 스님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은사스님의 유지를 올곧게 받들고 있는 제자스님들을 칭찬하던 많은 사람들의 이구동성이 다비식장에서 주울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옥'이었다면 순서가 뒤바뀐 운구행렬은 '티'가 아니었나 모르겠습니다.


태그:#법정스님, #다비식, #연화대, #운구행렬, #만장, #법정스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