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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갤러리 본관입구에 부르주아와 박미나전 포스터. 부르주아전은 신관 1층과 2층에서 열린다
국제갤러리 본관입구에 부르주아와 박미나전 포스터. 부르주아전은 신관 1층과 2층에서 열린다 ⓒ 김형순

국제갤러리(대표 이현숙)의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전, 2002년, 2005년, 2007년에 이어 이번이 4번째다. 여성이나 모성 혹은 보들레르의 '악의 미'를 상징하는 '꽃'을 주제로, 근작 드로잉 24점과 조각 3점 등을 선보인다.

잭슨 폴록보다 한살 위인 99세의 이 작가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양식이나 시대사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유럽의 68혁명이후 여성운동이 일어나고 파급되고 또한 무르익어 시대정신과 소통하면서 그의 페미니즘은 나이 70에 급부상한다.

끝없는 창작욕 "난 아직도 성장 중이야"

 '나는 아직도 성장 중이야!(I Am Still Growing!)' 종이에 에칭 수채 구아슈 연필150×99cm 2008
'나는 아직도 성장 중이야!(I Am Still Growing!)' 종이에 에칭 수채 구아슈 연필150×99cm 2008 ⓒ 김형순

세계 최고의 작가임에도 '난 아직 성장 중이야'에서 보듯 아직도 자라고 있는 꽃으로 자신의 위상을 낮춘다. 몸은 늙고 불편해도 그의 정신은 맑고 그의 예술은 아직 젊다. 아직도 뉴욕 브루클린작업실에서 조수의 도움을 받으며 하루에 2시간씩 작업한다.

생명에 대한 그의 호기심과 동경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나이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의 작품을 처음 보는 순간 작품에서 끓어오르는 원시적 힘과 거장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1989년엔 '출구 없음(No exit)'을 발표하더니 이번엔 모든 걸 용서하는 분위기다.

"꽃은 나에게 있어 보내지 못하는 편지와도 같다. 이는 아버지의 부정을 용서하고, 어머니가 날 버린 것을 용서한다. 또한 아버지를 향한 나의 적개심도 사그라지게 한다. 꽃은 나에게 있어 사과의 편지이고 부활과 보상을 말한다!" - 미술관자료 중에서

모더니즘선구자, 보들레르에게 바치는 꽃

 '보들레르에게(A Baudelaire 2)' 종이에 에칭, 잉크, 수채, 구아슈, 연필. 왼쪽 152×101cm 오른쪽 150×100cm 2009. LB 작가사인이 보인다
'보들레르에게(A Baudelaire 2)' 종이에 에칭, 잉크, 수채, 구아슈, 연필. 왼쪽 152×101cm 오른쪽 150×100cm 2009. LB 작가사인이 보인다 ⓒ 김형순

부르주아는 위 작품을 보들레르에게 바쳤다. 보들레르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연 상징파시인으로, 독일의 철학자 칸트처럼 미(美)를 선과 진을 떠난 독립적인 것으로 봤다. 다시 말해 진정한 아름다움은 진실과 도덕의 테두리를 떠나 그 자체의 자율성에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부르주아는 왜 보들레르에게 이 꽃을 헌정했을까? 과거 남성은 선이고 여성은 악인 시절이 있었지만 보들레르가 선의 미가 아니라 악의 미를 복원했기 때문인가. 이 꽃은 보들레르를 상징하는 '악의 꽃'으로 오랜 세월 악몽처럼 따라다니던 고뇌와 상처를 이겨내고 다시 피어나는 꽃을 상징하리라.

엄마의 바늘로 상처를 꿰매고 치유하기

 '꽃(Les fleurs #1)' 종이와 패널에 에칭 수채 구아슈 연필 천과 철사 153×158cm 2008
'꽃(Les fleurs #1)' 종이와 패널에 에칭 수채 구아슈 연필 천과 철사 153×158cm 2008 ⓒ 김형순

조각가이고 설치미술가인 부르주아는 바늘로 헝겊을 꿰매는 작업을 많이 했다. 바느질을 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손길처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의 메타포이다. 이건 또한 이 작가의 집안이 타피서리(프랑스전통융단짜기)사업을 했기에 익숙한 마티에르(물감, 캔버스, 필촉, 화구 따위가 만들어 내는 대상의 물질감)가 될 수도 있다.

부르주아의 작품에는 남녀성기를 합쳐놓은 것이 많은데 이것은 대립적인 것을 중첩하여 확산시키거나, 하찮게 버려진 것은 다시 쓸 만한 것으로 변형시키고 흡수하는 그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여성의 내면과 외면을 상징하는 것 같은 천조각과 꽃그림을 화면에 나란히 걸어놓아 매우 흥미롭다.

자신의 스웨터로 만든 '싸안음'의 미학

 '에코(Echo IV)' 하얗게 칠한 브론즈와 스틸 91×30×30cm 2007
'에코(Echo IV)' 하얗게 칠한 브론즈와 스틸 91×30×30cm 2007 ⓒ 김형순

'에코'는 작가가 입었던 스웨터로 만든 추상조각이다. 이게 뭘 뜻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자신의 상처를 감싸 안은 가슴 큰 여성의 모습 같기도 하고 아니면 가정에 갇혀 외롭게 사는 여성이나 마음에 상처를 받고 몸서리치는 여성을 형상화한 것 등으로 추리된다. 하지만 작가자신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르주아가 예술의 통해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 점에 대해 "고통은 내 주업이고 내 주제다. 거기에 그리움과 불안과 공포가 있다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걸 없애거나 제거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치유하고 관용하기보다는 그냥 직시하고 싶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반복되는 연작을 통해 치유와 안정을 추구하다

 '꽃(Les fleurs)' 종이에 구아슈 6세트 60×46cm 2009
'꽃(Les fleurs)' 종이에 구아슈 6세트 60×46cm 2009 ⓒ 김형순

2층에 올라가면 '붉은 꽃' 드로잉으로 꽉 차 있다. 모양은 제각각인데 모두 다섯 송이로 그려졌다. 그건 작가와 남편, 세 아들을 뜻한다. 혈관이 흐르는 것 같은 붉은 꽃에는 작가가 경험한 삶의 희로애락과 피를 나눈 가족 간의 끈끈함과 애잔함이 녹아 흐른다.

"내 작품은 상처를 정화하고 치유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작가도 말했지만 붉은 꽃을 반복해서 그린 것은 그가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깊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상처가 뭔지는 아래 '커플' 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어쨌든 이런 반복양식은 대부분 예술장르에서 치유를 상징한다.

원시적 생명력이 붉은 피처럼 흐른다

 '좋은 엄마(The good mother)' 알루미늄과 천에 인쇄된 고문서잉크염료 79×66cm 2008. '엄마와 아이(Mother and child)' 리넨에 실크스크린 194×113cm 2007
'좋은 엄마(The good mother)' 알루미늄과 천에 인쇄된 고문서잉크염료 79×66cm 2008. '엄마와 아이(Mother and child)' 리넨에 실크스크린 194×113cm 2007 ⓒ 김형순

이 작품은 원생미술(Art Brut) 풍인데 누가 봐도 주제가 모성이다. 말년을 맞은 대가의 붓질은 물 흐르듯 그렇게 거침이 없다.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잉태와 원시적 생명력이 피처럼 흐른다. 그리고 아이를 안은 엄마의 몸에는 신령한 기운과 애틋함이 넘친다.

부르주아는 99세 고령에도 페미니즘 작가답게 원초적 관능, 섹슈얼리티, 젠더 등을 주제로 삼는다. 이런 근원적 질문을 통해 삶을 차원 높게 긍정하고 이를 통해 생을 찬미한다.

도대체 성기가 뭐 길래 인생을 이렇게 좌우하나

 '커플(Couple)' 종이에 구아슈와 컬러 펜 2009. 이 작품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과 대립, 연민과 미움이 엿보인다
'커플(Couple)' 종이에 구아슈와 컬러 펜 2009. 이 작품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과 대립, 연민과 미움이 엿보인다 ⓒ 김형순

2층 작품 중 '커플'은 성기를 노출시켜 색다르다. 작가의 집안내력을 보면 이 점이 이해가 된다. 어머니는 현모양처형이었으나 아버지는 10년간 영어가정교사와 불륜을 맺었고 언니는 성이 극도로 문란했고 동생은 가학증이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성기가 뭔지를 고민하고, 역으로 이것을 예술화했다. 이 점이 바로 이 작가의 독창성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최근에 이런 걸 주제로 삼는 여성시인이 있다. 그가 바로 김민정(1973~)이다. 그의 시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젖이라는 이름의 좆'이라는 시인데, 제목부터가 파격적이고 도발적이다. 부르주아작품과 코드가 잘 맞는다.

"네게 좆이 있다면 / 내겐 젖이 있다 / 그러니 과시하지 마라 / 유치하다면 / 시작은 다 너로부터 비롯함일지니 // [...] 어쨌거나 우리 빨면 한 입이라는 공통점 / 어쨌거나 우리 썰면 한 접시라는 공통점 [...] 두 짝의 가슴 / 두 짝의 불알 // 어머 착해"

전 세계에 펴져 있는 그의 대표작 '엄마(마망)'

 '엄마(Maman)' 오타와에 있는 캐나다국립미술관 입구. 마망(maman)은 프랑스어로 '엄마'라는 뜻
'엄마(Maman)' 오타와에 있는 캐나다국립미술관 입구. 마망(maman)은 프랑스어로 '엄마'라는 뜻 ⓒ Wikipedia

이제 끝으로 그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이번 전에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아이를 안은 강한 모성을 왕거미에 빗대어 형상화한 '엄마'(마망 Maman)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 리움미술관뿐만 아니라 뉴욕, 파리, 런던, 오타와, 발비오 등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처음 볼 땐 섬뜩해도 보면 볼수록 마음이 끌린다. 정말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일전에 화가 윤석남을 만나 부르주아를 이야기하다 '엄마'를 보고 큰 감흥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새끼를 지키는 든든한 수호자로 사나워 보여도 이런 모성은 그 어느 종교보다 숭고해 보인다.

이런 대규모의 조각은 남성전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성의 힘은 이보다 더 강하다. 작은 체구로도 이런 웅대한 작품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건 역시 아름다움이고 모성임을 이 작가는 확실하게 인식시켜준다.

 2003년 작가모습
2003년 작가모습 ⓒ Nanfranco
1911년 프랑스 파리출생. 1919년 부친 타피서리(프랑스전통융단짜기)사업 시작 설치작업에서 영향 줌. 1927년 파리 페늘롱(Fénelon) 고등학교 졸업. 1928년 칸 국제고등학교 수강. 1932년 모친 사망. 1932-1935년 파리 소르본대학 대수학, 기하학, 철학 전공. 1934년 구소련방문. 1935-1936년 모친 사망 후 미술에 관심을 둠 루브르미술학교. 1936-1938년 파리국립미술학교. 1938년 페르낭 레저(Fernand Léger)에게서 사사, 레제의 입체주의가 부르주아조각에 영향 줌. 1938년 미국출신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Robert Goldwater)와 결혼, 뉴욕으로 이주. 뒤샹, 로스코, 쿠닝, 에른스트 등과 교류 1939년 첫 전시회. 1947년 나무조각작품 발표. 1951년 부친사망 미국시민권 획득. 1966년 페미니즘운동에 참가. 1967년 대리석과 브론즈조각 시작. 1973년 남편 사망. 1977년 예일대에서 명예박사학위 받음. 198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여성작가로 최초로 회고전. 1985년 프랑스에서 첫 전시회. 1992년 환경조각 발표.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대표로 참석. 1995년 파리 그래픽아트갤러리에서 회고전.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 2003년 울프(Wolf) 예술기금상 수상. 2007-2009년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 등 유럽순회 전. 2010년 99세 나이에도 하루 2시간씩 뉴욕에서 작업

덧붙이는 글 | 국제갤러리 종로구 소격동 http://www.kukje.org 02 735-8449 월요일 휴관 입장무료



#부르주아#보들레르#마망#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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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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