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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학교 수업 중일 텐데 무슨 일일까?'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빠, 콧물이 나오고 감기인가 봐요."

"병원 가야겠네? 조퇴해."

 

"흐흐흑~. 근데 오늘 시험이 있어 안 돼요."

"끝나고 조퇴해."

 

딸을 만나 뒤늦게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6학년이면 홀로서기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병원에 함께 다녔는데 이제부턴 혼자 다니도록 해야 할 것 같았지요.

 

"너 혼자 병원 갈 수 있지? 혼자 걸어서 갔다 와."

 

그랬더니, 혼자 가더군요. 그랬던 딸이 어제 저녁 뒤통수를 칠 줄이야~.

 

딸의 일기, "얘 혼자네. 곧 부모님이 오시겠지?"

 

"엄마~, 엄마. 제가 아팠던 날 쓴 일기 읽어 줄 테니 한 번 들어봐요."

 

신나게 읽더군요. 듣고 있자니 기가 막혀서…. 다음은 딸이 쓴 그날의 일기입니다. 어떻게 아빠를 비방(?)했는지, 그 실상을 원본으로 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3/9(화) 날씨 : 조금 비 옴. 제목 : 나 홀로 병원에

 

진단평가 + 코감기가 겹쳐 힘든 날이었다. 시험은 봐야 되지, 콧물은 나오지, 약도 먹었는데 낫지를 않지. 정말… 힘들었다. 결국 시험 끝나자마자 바로 조퇴를 했는데 아빠가 같이 병원 가기로 해 놓고는 이 추운 날! 아픈 애한테 '혼자 병원을 갔다 오라'며 '돈을 건네주는 그런 아빠가 어디 있나….'했더니 그게 울 아빠였다.

 

아빠 성화에 얼떨결에 병원 행을 떠난 나는 걷고, 도 걷고, 걸어서 결국 병원에 갔다. 회 타운 앞 '○○○ 소아과'에 간호사 언니는 '얘 혼자네. 곧 부모님이 오시겠지?'라는 생각을 하였을 거다.

 

그러나 부모님은커녕 친구도 없었던 마당에…. 진찰을 받고 약을 받고(바리바리) 집으로 걷고, 또 걸어 집에 도착하여 잤다. 6학년 때 혼자 병원 갔다 온 애는 우리나라에서 나 밖에 없을 거다.(그리고 우리 아빠 같은 아빠도 말이다.)

 

 

그래서 자녀와의 소통이 중요하나 봅니다!

 

딸의 일기장 속에서, 마음속에서, 전 이렇게 비정한 아빠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내요? 당연 한 마디 했죠.

 

"당신, 아픈 딸 좀 데려가지 그랬어요!"

 

이럴 수가…. 아이들 병원은 제 담당이라 그동안 함께 다녔는데 이제 어느 정도 컸으니 혼자 다녀도 되지 않겠어요? 냉정한 아빠의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 했습니다.

 

"딸, 아빠가 언제 병원에 같이 간다고 했어? 아빠는 그런 말 한적 없다."

"안 했어요? 제가 몸이 안 좋아 잘못 들었나 봐요."

 

"딸, 그렇게 서운했어?"

"예. 많이 서운했어요."

 

왜 병원에 함께 가지 않았는지를 차분히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씩 웃더군요. 그게 당시 자기 기분이었다나. 그래서 자녀와의 소통이 중요한가 봅니다.

 

아무튼 감기 든 딸 덕분에 아들과 저까지 감기로 고생 중이랍니다. 꽃샘추위가 사람 여럿 잡는군요. 몸 관리 잘하시길.

덧붙이는 글 | 다음과 SBS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일기, #딸,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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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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