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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아빠의 좋은 소식

 우리 동네 착한 쌍둥이아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우리 동네 착한 쌍둥이아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 전갑남
동네 뒷산을 옅은 안개가 감싸고 있다. 고샅길엔 사람 얼굴 하나 보이지 않는다. 날은 풀렸지만 본격적인 농사철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적막하다. 전봇대에서 작은 새들이 재잘댄다. 사람 사는 동네에 새떼가 주인행사를 한다. 시끄럽기는 해도 듣기는 좋다.

마당 잔디밭에서 몸을 풀어본다. 찌뿌듯한 목덜미가 한결 시원하다.

호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린다. 누굴까? 한 집 건너 사는 쌍둥이아빠다.

"형님, 저 취직했수다."
"그래? 무슨 일하는데?"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손자장집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그럼, 자기 전공 찾은 거나 마찬가지네!"
"그런 셈이네요. 오늘 산에 못 가게 되어 전화 드렸어요!"
"산이 문제야! 아무튼 기뻐할 일이네."
"어르신들이랑 잘 다녀오시구요. 쉴 때 저도 따라갈게요."

겨우내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다가 새봄과 함께 일을 하게 되어 얼마나 기쁠까? 휴대폰을 타고 들리는 쌍둥이아빠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 얼굴가득 웃음이 넘쳐나는 듯싶다.

쌍둥이아빠가 일자리를 구했다는 반가운 소식에 적막하기만 한 마을에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산행을 함께 하기로 한 어르신들께도 알려야겠다.

새집할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오늘 산행은 쌍둥이아빠는 빼고 가야겠어요."
"집에 차도 있고 그러던데 무슨 일 있대?"
"취직해서 일 나간대요."
"취직을 했어! 그거 참 잘됐네! 그럼, 우리끼리 뒷산이나 타자구!"

옆집아저씨는 등산복 차림에 우리집을 향해 걸어온다. 나를 보자 말을 걸어온다.

"쌍둥이아빠는 며칠 옴짝달싹하지 않네! 무슨 일 있나?"
"쌍둥이아빠 일 나가요."
"아직 날도 덜 풀렸는데, 어디로 일을 나가지?"
"자장면집에 취직을 했다고 연락 왔어요."

아저씨도 자기 일처럼 좋아라하신다. 기뻐하는 표정에서 이웃사촌의 끈끈한 정이 느껴진다.

산행에서도 쌍둥이아빠 취직 소식이 화제

새집할아버지, 옆집아저씨, 쌍둥이아빠, 그리고 나는 휴일이면 늘 산에 오른다. 우리가 사는 강화도 산을 찾아 산행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운동 삼아 산길을 걷고 산 정상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모든 걸 풀어낸다.

해동한 산길이 부드럽다. 산의 색깔도 며칠 전보다 조금 달라 보인다. 나뭇가지 눈이 한결 부풀어졌다. 봄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음을 느낀다.

쌍둥이아빠가 빠져서 그런가? 산행이 좀 허전하다. 배낭을 짊어지고 씩씩하게 앞장서서 산행을 이끈 쌍둥이아빠 빈자리가 커 보인다.

산을 오르며 내내 쌍둥이아빠 이야기이다.

"젊은 친구 겨울나기가 답답했을 텐데 참 잘되었어."
"쌍둥이아빠 중국집을 해봐서 일도 잘하고, 맛난 솜씨로 손님을 많이 불러들일 걸!"
"부지런하고 붙임성이 있어 주인장한테도 신임을 받을 거예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어느새 정상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볕 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 차갑지 않은 바람이 볼을 스친다. 기분이 상쾌하다.

새집할아버지께서 여느 때와 달리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다. 싸들고 온 간식거리를 제쳐두고 하산을 하잔다.

 쌍둥이아빠의 일터, 손짜장집. 마니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쌍둥이아빠의 일터, 손짜장집. 마니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 전갑남

"우리 쌍둥이아빠 취직했다는 식당이나 가보세. 손자장도 한 그릇씩 사먹고 말이야. 주인장한테 잘 봐달라는 부탁도 할 겸."

따끈한 자장면이 벌써 눈에 그려진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셈이네!"

지천명을 넘긴 쌍둥이아빠는 그간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었다. 경기불황에다 운이 따라주지 않아 실패를 거듭했다.

특히, 배달 일부터 익히고 중국요리를 섭렵해 중화요리집을 차려 장사를 했는데,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사업을 접고서는 세상을 많이 원망했다고 한다.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열과 성을 다해 사업을 했지만 돈 벌리는 일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많은 돈을 털어먹고 남은 것은 자기를 믿고 위지하는 사랑하는 가족뿐이었다. 가족을 생각하면 훌훌 털고 새롭게 일을 시작해야했다. 일거리를 찾아 닥치는 대로 했다. 힘든 막노동에 공공근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틈이 나면 고물을 주워 팔기도 하면서 몸을 사리지 않았다. 또 다른 성장을 위해 담금질을 준비하듯 무슨 일이든 열심히 했다.

이런 쌍둥이아빠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칭찬이 자자했다.

"요즘 젊은 사람치고 참 부지런해!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고. 쌍둥이네 어려움은 오래가지 않을 거야!"

초등학생인 쌍둥이도 건강하게 자라고, 든든한 지원군인 쌍둥이엄마도 직장을 얻어 안정을 되찾아갔다.

하지만 쌍둥이아빠도 기나긴 겨울을 나기는 난감하였다. 추운 겨울에는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이 흔치 않았다. 농한기인 농촌마을에서 마땅히 일거리가 없었다.

그런 쌍둥이 아빠가 직장을 찾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어 더욱 그런 것 같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경우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이제 막일을 전전하지 않고 비교적 안정된 일을 하게 된 것도 즐거움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다보면...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쌍둥이아빠 얼굴에 반가움이 묻어있다. 빨간 모자와 흰 가운을 입고 전문 요리사다운 모양새를 갖췄다. 저녁 시간이 좀 이른지라 손님이 많지 않았다.

"벌써 산에 다녀오셨어요?"
"쌍둥이아빠 없으니까 재미가 하나도 없더라!"
"그랬어요! 대신 제가 손자장을 최고로 맛나게 해드리죠!"
"어디 실력이나 한번 보자구!"

 쌍둥이아빠는 현란한 솜씨로 수타면을 뽑았다.
쌍둥이아빠는 현란한 솜씨로 수타면을 뽑았다. ⓒ 전갑남

 수타면을 뽑는 일은 기술도 필요하지만 체력도 필요해 보였다.
수타면을 뽑는 일은 기술도 필요하지만 체력도 필요해 보였다. ⓒ 전갑남

우린 쌍둥이아빠의 손자장 뽑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밀가루 반죽을 쳐대며 길게 국수 가락을 뽑아내는 현란한 춤을 펼쳐 보인다. 반죽을 힘껏 내리치고, 엿가락처럼 길게 뽑고, 다시 또르르 꼬아 가닥수를 늘리는 솜씨에 우리는 혀를 내둘렸다. 수타면을 뽑는 데는 기술만 필요한 게 아니고 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할 듯싶다. 저런 능숙한 솜씨를 썩히고 그간 막일을 전전하다니!

뽑아진 면발이 금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자장면으로 변신한다. 쌍둥이아빠가 직접 발휘한 솜씨라서 그런지 맛이 그만이다.

우리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쌍둥이아빠가 솜씨를 발휘한 손짜장. 쫄깃한 맛이 그만이었다.
쌍둥이아빠가 솜씨를 발휘한 손짜장. 쫄깃한 맛이 그만이었다. ⓒ 전갑남

"야! 맛이 쫄깃쫄깃하고 감칠맛이 나는데! 옛날 자장면 맛 그대로네. 요리는 손맛이 들어가야 하는가봐!"

맛나게 음식을 먹는 우리를 보고 쌍둥이아빠가 흐뭇해한다. 정갈하고 맛에서도 으뜸이 가는 요리를 만드는데 자기 기술을 맘껏 펼쳐 보이겠다는 생각이 기특하다. 자신이 충실하게 일을 하면 주인의 사업도 잘될 거 아니냐고 한다.

그리고 소망 하나를 펼쳐 보인다.

"형님, 저도요 목 좋은 곳에 작은 가게 하나 차려 내 장사를 해보고 싶어요. 우선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할 겁니다. 요리도 연구하고 사장님한테 장사수완도 배워야할 거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쌍둥이아빠의 다부진 꿈이 꼭 이뤄지기를 빌어본다.


#취업#손짜장#옛날 짜장면#수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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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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