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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음악 팬들이라면 알겠지만,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이진원'이라는 뮤지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예전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접한 그의 참신한 노래들을 필자는 아직 잊지 못한다. 그의 음악은 매우 독특했기 때문이다. 달빛요정의 음악에는 솔직함을 뛰어넘는 비참한 자기고백이 깊게 배어 있었다.

 

 2009년 GMF 공연에서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2009년 GMF 공연에서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달빛요정

 

이 앨범은 데뷔하자마자 라디오 프로그램인 <고스트스테이션>에서 5주 연속 인디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도 팬들에게 불후의 명곡으로 꼽히는 '절룩거리네'와 '스끼다시 내 인생'으로 대표되는 그의 1집 <인필드 플라이>는 이렇게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이름조차 신기하고 생소했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골방과 지하실에 처박혀 만들어낸 이 가내수공업 음반을 통해 '거물' 인디가수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그 후의 행보는 대중들의 기대감에 비해 속도가 더뎠다. 1집의 성공 이후, 약간 상업적인 콘셉트가 가미된 <소포모어 징크스> 앨범을 발표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밍밍했다. 정규 3집 <굿바이 알루미늄>에서는 1집의 콘셉트로 되돌아왔지만 1집 이상의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골방에 갇혀있는 모양새였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3.5집 [전투형 달빛요정: Prototype A]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새 EP [전투형 달빛요정: Prototype A]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새 EP [전투형 달빛요정: Prototype A] ⓒ 달빛요정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줄곧 지켜오던 '어느 골방의 솔직한 아저씨' 콘셉트가 지겨웠던 팬이라면 이번 앨범에 주목해볼 만하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지난 1월 발매된 3.5집 <전투형 달빛요정: Prototype A>에서 그동안 주로 다뤘던 자기연민과 비하의 영역을 넘어 세상을 향한 조금 더 적극적인 반격을 시도한다.

 

두 번째 트랙인 '입금하라'에는 이 음반 제목에 언급된 '전투'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결국엔 나도 똑같다. 정의가 있네, 없네 잘난 척 하고 있지만 1억만 주면 닥칠 것이다'라고 일갈하는 '입금하라'의 가사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즐겨 쓰던 자기비하의 정서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그 정서는 그 뿐만이 아니라 현재 한국의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부정한 방법으로 많은 돈을 거머쥔 자본가들을 욕하면서도 그 자본가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토익스피킹 시험을 접수하는 20대의 모습은 가사처럼 이율배반적이다.

세 번째 트랙인 '나는 개'는 앞 곡인 '입금하라'와 연결된다. 이 트랙에서 달빛요정은 '왜 날 빨갱이로 만들어 왜 날 혁명가로 만들어 네가 아니어도 나는 개, 왜 날 광장으로 내몰아 왜 널 상대하게 만들어'라고 강력하게 외친다. 그리고 이러한 은유적인 가사는 그간 달빛요정이 들려줬던 스스로 침전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 혹은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누군가를 비판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 음반의 제목이 왜 '전투형 달빛요정'인지 여기서부터 확실해진다.

 

네 번째 트랙이자 이 음반에 실린 네 곡의 신곡중 마지막 곡인 '피가 모자라' 역시 앞 트랙과 이어진다. '친구들이 걱정하네 그러다 잡혀간다고 무서운 세상이라고 몸조심해야 한다고'하는 가사에서 엿보이는 현실 인식은, 앞선 곡들의 연장선 위에 있다. 여기서도 달빛요정은 부끄러운 자기고백을 숨기지 않는다. '모자라 피가 모자라 하지만 그 피가 내 것은 아니길 난 비겁해 너와 똑같아 숨어서 이렇게 노래만 부르네'라는 가사는 꺼내 보이기 싫었던 우리의 '불편한' 진심이다. 바뀌길 바라지만 나서지 못한다. 누군가 희생되어 바뀌길 바라지만, 그게 나이기는 원치 않는다.

 

하지만 곡 말미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난 비겁했어 어제까진 하지만 이젠 하지만 이젠 물러서지 않겠어 물러서지 않겠어 두 번 다시는 두 번 다시는'이라며 전의를 불태운다. 골방에 갇혀 있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시선은 이미 골방 바깥을 향하고 있다. 그의 팬들이 이번 앨범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 그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코 '루저'가 아니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코 '루저'가 아니다. ⓒ 달빛요정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타자 요기 베라(Yogi Berra)는 "모든 것은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다짐은 비록 지금은 열세지만 결국에는 역전승으로 끝나는 즐거운 야구 경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필자는 소망한다. '전투형'으로 골방에서 뛰쳐나온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바라던 꿈을 이루기를. 그때는 그와 그의 팬 모두가 이 음반 첫 번째 트랙에 있는 '축배'를 모두 함께 부를 것이다. 세상 그 누구보다 맑고 밝은 웃음을 띠면서 말이다.


#음반의재발견#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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