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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착저레착 제주마을다니기
저는 제주에 삽니다. 제주의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길을 무작정 걷기보다는, 제주마을을 테마로 걷는건 어떨까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마을을 다니면서 사람도 만나고 문화와 전통, 역사를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레착저레착'은 여기저기 다닌다는 말입니다.

제주는 지금 때 아닌, 아니 한 발 늦은, 마을살리기 붐(!)이 일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불기 시작했는지 그 바람이 무섭다. 녹색체험마을이니 전통테마마을이니…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는 벽화가 그려지거나 특산품 판매전시장이 들어선다.

이거 이거, 의도는 참 좋다. 삭막한 도시의 얼굴을 바꾸자는 것, 마을의 특색을 담자는 것! 너무, 기특할 따름이다. "그런데 지금 말한 그 사업이 건축공사는 아니겠지~~"

벽화 좀 그려놓고 특산물판매장 지어 놓는 게 마을을 어디까지 살릴 수 있겠는가? 부자마을이 되면 마을이 살아나는 것일까?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마을프로젝트가 진행된 서귀포시 월평마을에 찾아가봤다. 그 현장 속으로 고고! 오랜만에 얼굴을 들이민 '패랭이'와 환경운동연합의 얼굴 큰 김 모 팀장과 함께했다.

월평마을 들머리 송이슈퍼안에 올레꾼들이
▲ 서귀포월평마을 송이슈퍼 월평마을 들머리 송이슈퍼안에 올레꾼들이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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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월평마을 들머리. 우리의 시선을 빨아들인 곳은 다름 아닌, 빙고!! 동네 구멍가게였다. 구멍가게 앞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쉬었다 가라고 가림막에 의자까지 쉬었다 가라고 꼬시고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꼭 들어가서 사고 싶어진다. '바람직한' 상술일지 모른다. 이미 송이슈퍼(광고 아님) 안에는 배낭과 등산복으로 상징화된 올레꾼들이 지도를 펼쳐보고 있었다. 주인은 올레꾼들에게 월평을 소개하는 일등 공신인 동시에 관광도우미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송이슈퍼앞 - 특색있는 쉼터
▲ 서귀포월평마을 송이슈퍼 송이슈퍼앞 - 특색있는 쉼터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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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슈퍼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흔한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하나 보이지 않는 '전원일기형' 마을인데다 교통편이 불편한 마을이라는 점이다.

제주를 한바퀴 돌 수 있는 일주도로는 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1km 정도 떨어진 하원으로 통과해버린다. 마을 홈페이지에는, 1967년부터 오지선(奧地線) 버스라고 하여 1시간에 1대씩 중문과 서귀포를 연결하는 버스가 월평으로도 다니기 시작했으며, 1981년에 서귀포가 시로 승격하면서 시내버스가 비로소 다니기 시작했고, 현재도 대부분의 시내버스와 직행버스는 중문과 서귀포사이를 일주도로로 통과, 하원에서 월평, 강정, 법환을 거치는 노선은 시내버스 3개 노선과 40분 간격으로 다니는 좌석버스 1개 노선에 불과하다… 고 자세한 설명이 적혀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바깥출입을 위해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걸을 땐 차도, 오토바이도 보지 못했다. 

정류장에서 머뭇머뭇 거리던 '패랭이'. 도저히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모양인지 아이스크림도 아닌, 음료수도 아닌 사과를 하나 집어 들고 그걸 먹으면서 걷자고 했다. 백설공주처럼 되지 않을까 한번쯤 의심해 본 사람들은 안다. 함부로 사과를 먹었다간, 목에 걸려 소화불량에 걸릴 수 있다는 걸. 그래도 뭐, 백마 탄 왕자가 어딘가에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사과를 먹었다. 독특한 마을걷기다.

월평마을 지도
▲ 서귀포월평지도 월평마을 지도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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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마을은 지역의 역사, 사회적 현상과 문제에 대해 지역주민들이 문화예술창작 활동의 주체가 되어 지역의 변화를 유도하고자한 2009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시범사업인 '월평, 예술로 물들다'의 사업이 진행된 마을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업의 하나로 제작된 마을 지도, 아니 마음의 지도를 들고 있었다. 우리는 현상금이라도 붙은 양 마을사람들의 얼굴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정말, 사진 속 주민을 만난 것이다. 오 마이 갓!!

'월평, 예술로 물들다'사업에 참여한 어린이를 찍고있어요
▲ 서귀포월평 '월평, 예술로 물들다'사업에 참여한 어린이를 찍고있어요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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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슈퍼에서 작은 골목골목을 지나, 마을회관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해질 무렵까지 놀고 있는 장면을 포착했다. 잘 걸렸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못한다. 우리는 '마음의 지도'를 아이들에게 들이밀면서, 공격적으로 물었다.

너희들 이거 알아? 우리는 초롱초롱하진 않았지만 순진한 얼굴로 모른다고 대답할 줄 알았다. 네. 여기서 사진 찍었어요. 낯선 사람들을 무심한 듯 경계하면서 대답했다. 여기 너희들 사진도 있어? 네. 그러더니 두 아이가 손가락으로 제 얼굴을 짚어준다. 뒤에 있는 조숙한 아이들, 그러니까 우릴 무슨 굴러들어온 돌처럼 보던 아이들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부끄럽다는 거였다.

'마음의 지도'에 참여한 000어린이!!!
▲ 서귀포월평 '마음의 지도'에 참여한 000어린이!!!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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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셜록 홈즈마냥, 사진과 얼굴을 대조해가며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당신은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FBI 요원처럼 물었다.

"당신은 바로 이곳에서 구슬치기를 했고,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갔군요. 이 곳이 바로 동네아이들이 매번 만나는 비밀의 장소였군요!! 대단해요, 우릴 속일 생각은 하지 말아요. 우리에겐 마음의 지도가 있으니까!!"

우리는 으레 마을만들기 사업이 그렇듯, 생색내기용일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에서 강한 연대감을 느꼈다. 벽화로 마을 경관을 아름답게 하거나 건물을 지어서 특산물을 판매하려고 한 게 아니라 마을안의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마을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담아낸 이들은 문화도시공동체 '쿠키'와 '바쁜벌 공작소'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개인의 영역을 넘어 창작과 소통을 실험하는 문화장착 모임인데, 지난 2003년부터 장소에 담긴 기억을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는 마음의 지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갇혀 있었던 '예술'의 문을 열어놓고, 사람과 지역과 소통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월평마을 주민들에게 가장 소중한 장소를 그려달라고 했고, 그 곳에 담긴 이야기가 담긴 지도를 만들어 추억의 장소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그 지도를 전해준 것이다. 그러니 연고가 없는 외지인들도 송이슈퍼 앞 주차장이 옛 공터였다는 추억이 전해지는 것이다. 아이들의 추억도 고스란히.

'월평, 예술로물들다'사업 일환으로 진행된 '마음의 지도'
▲ 서귀포월평 '월평, 예술로물들다'사업 일환으로 진행된 '마음의 지도'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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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뭔가 다른 방식으로 마을살리기가 진행된 프로젝트에 감동하며 계속 걸었다. 하지만 보완해야 할 부분도 우리는 놓치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연속성이다. 지원을 받고 진행된 사업이기 때문에 재원이 충분하지 못한 것도 그들에겐 절실할 것이다. 오히려 행정 지원을 덜 받고, 좀더 예술적이고 자유롭게 진행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월평마을은 서귀포시 강정동 서쪽 해안 일대에 형성돼있는 마을이다. (오창명 교수의 책에 의하면) '잔골'이라는 지역에 있는 '유첨장'이라는 사람이 일찍부터 살았던 전설이 전해지고, 200여 년 전에 고부 이씨가 들어와 설촌, 이후 김씨, 고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커졌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마을 곳곳에서 탐라 전기의 적갈색 항아리형 토기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1500년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민간에서 '돌벵듸·돌벵디'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한자 표기 월평(月坪)은 한자 차용표기라고 할 수 있다. 마을의 형세가 돌月과 같은 평대를 이룬다는 데서 '돌벵듸·돌벵디'라 하고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월평이라고 전해진다.

월평마을에는 먹구슬나무가 많다
▲ 서귀포월평 월평마을에는 먹구슬나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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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마을 사람들은 비슷한 취미가 있는지, 집집마다 제법 큰 멀구슬나무(먹구슬낭)를 키우고 있었다. 월평에서 계모임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모다정 있었다. 지나가는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께 물으니 그늘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볕을 막기 위해서 잎이 풍성한 나무를 키웠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월평은 그늘이 필요할 만큼 따뜻한 곳이다. 중문과 서귀포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바람이 적고 온난해 바나나, 파인애플, 화훼와 같은 비닐하우스 농업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월평동은 마을 형성 이후 상당 기간 동안 독립된 마을로 인정되지 못하고 도순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월평동이 오늘날과 같은 마을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은 4·3항쟁 이후이다.

월평마을은 4·3항쟁으로 인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그것은 마을 사람들이 성을 쌓아 산사람들로부터 침입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때 축성되었던 성은 마을을 돌아가며 원형으로 축성되었고 성의 출입구는 아웨낭목과 잔골가는 길목, 그리고 동카름 부근에 있었다. 성을 쌓은 뒤부터 초소막에서는 매일밤 당번을 섰는데 성담은 대부분 훼손되어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동네 아이들이 계속 쫓아왔어요~
▲ 서귀포월평 동네 아이들이 계속 쫓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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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에서 만난 아이들이 우리 뒤를 졸졸 쫓아왔다. 240세대 657명(2008년2.29)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인데다 초등학교도 없는 월평. 이 마을 아이들은 하원초등학교에 다닌다. 스쿨버스가 3대나 다닌다고, 아이들이 자랑한다.

아이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녔다. 우리가 멀구슬나무 앞에서 쉬면 따라 멈추고, 우리가 걸으면 아이들이 슬슬 움직였다. 우리가 아이들 얼굴을 사진에 담으면, 덩달아 핸드폰을 꺼내 우리를 찍었다. 우리 나쁜 사람들 아니라고, 우리 개그맨 아니라고 달래도 집에 가지 않았다. 우리가 마을을 빠져나간 다음날 우리얼굴이 마을회관 벽보에 붙을지도!!

'월평, 예술로물들다' 일환으로 진행된 '마음의지도'
▲ 서귀포월평 '월평, 예술로물들다' 일환으로 진행된 '마음의지도'
ⓒ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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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낭보가 들렸다. 문화도시공동체 쿠키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교육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하고 국무총리복권위원회, 한국예술문화위원회에서 후원한 2009년도 제주 서귀포 월평마을에서 진행했던 '월평, 예술로 물들다' 공공미술프로젝트의 평가에서 2010년 2차년도 연속지원 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마침 2010년 연속사업 선정은 예술활동의 연속성을 가지게 되어 공공미술프로젝트의 가장 큰 약점인 일회성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은, 한번 더 사진을 찍으며 웃을 수 있게 됐다.


태그:#서귀포월평, #마을살리기, #공공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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