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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씨가 병역거부 소견을 발표하고 있다
▲ 김영배 김영배씨가 병역거부 소견을 발표하고 있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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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일은 김영배(27)씨의 입영일이었다. 그러나 김영배씨는 현역병 입영 통지서에 나와 있는 경기도 306 보충대로 가는 대신, 병무청에 전화를 걸었다.

"총을 드는 것이 저의 양심에 반하는 행위라, 입영을 하는 대신 병역거부를 하려고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긴장되었지만, 명료하게 들렸다. 병무청의 여자 상담원은 곧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돌렸고,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일단 병무청에서 고발을 하면, 경찰 조사가 진행된다. 경찰에서는 조서를 검찰에 넘기고, 검찰은 구속 여부를 판단한다. 예전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 대부분이 구속되었지만, 한국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논의가 진전되면서 최근에는 대부분 불구속으로 수사가 진행된다. 검찰은 수사가 끝나면 기소를 하고, 재판이 진행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통상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고, 구치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재판을 해보았자 어차피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데, 구속이든, 불구속이든 상관이 있겠느냐."

김영배씨는 이미 감옥행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27살 청년은 군대 대신 감옥을 선택하게 됐을까?

그는 이에 대한 답을 4일 오전 홍대 앞 까페 샤(sha)에서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전쟁으로 부모와 자식을 잃은 사람들, 신체의 일부를 잃거나 그 누구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 병역거부 소견서 '양심을 택하겠습니다' 중

그는 전쟁에 반대했고,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며 괴로워했다. 지난 2003년에는 '은국'씨가 이라크에 파병을 한 한국의 군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김영배씨 역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봤고 침략전쟁의 군인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군사훈련과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군대의 일원이 되는 것, 그리고 내 양심과 신념을 벗어난 행동을 명령받고 행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내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한 인간으로서 병역을 거부합니다."

최근 한국의 국회는 또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냈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길준 의병은 김영배씨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완전히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됐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을 한 김영배씨가 담담하게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을 한 김영배씨가 담담하게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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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을 외치는 시위대를 전·의경들이 물대포와 곤봉, 무섭게 내리찍는 방패로 진압을 하는 것을 보고, 그 속에 있으면서, 군대라는 조직의 폭력성에 다시 한 번 병역거부의 마음을 다잡고 있던 제 눈에 한 청년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 병역거부 소견서 '양심을 택하겠습니다' 

이날 엄마 임상희씨와 기자회견에 참석한 동욱(4살) 어린이는 동요를 부르며 평화를 노래해, 기자회견장소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임상희씨는 "아들이 총과 칼놀이를 하는 걸 보면 걱정이 된다. 아들이 커서 영배씨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면 엄마로서 좋은 충고와 조언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배씨는 무조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총을 드는 것 대신 사회복무를 통해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겠다는 것. 그는 2007년 장애아동 주말학교 '어깨동무' 대표로 활동한 바 있다. 총을 든 군인이 아니라 장애아동과 노인 등의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것.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금민 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한국의 헌법에는 '국방의 의무'를 두고 있다. 그러나 국방의 의무에는 병역의 의무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현행 한국사회에서는 남성이 총을 드는 행위, 즉 남성의 병역의 의무만을 국방의 의무로 본다. 이런 한국사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정당하다. 더불어 대체복무 도입이라는 말도 문제가 있다. 무엇을 대체하는가? 병역의 의무를 대체한다. 우리는 이제 '사회복무'제도를 도입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정권 하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국방부는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체복무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인 2008년 7월 국방부는 돌연 대체복무 도입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충분한 여론수렴이 필요하다는 것.

김영배씨가 2007년 1기 대표로 활동했던 대학생사람연대와 현재 활동 중인 사회당에서는 이러한 국방부의 발표에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이날 참가한 두 단체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인정과 사회복무 도입을 강하게 요구했다. 중국과 긴장관계를 맺고 있는 대만과 역시 팔레스타인과 군사적 충돌을 빚고 있는 이스라엘도 대체복무를 도입하고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감옥이 아닌 사회복무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도록 한 것이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80여 개의 나라 중 40여 개의 나라가 대체복무를 도입하고 있다.

사회당은 김치수씨, 안홍렬씨가 2008년에 병역거부를 선언하여 수감됐다가 최근 출소하는 등 상당수의 젊은 당원들이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하고 있다. 2009년 11월 현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수감자는 총 696명이다. 국군창설 이래 1만 명의 사람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수감됐다.

이날 김영배씨는 기자회견 전 부모님과 통화를 했던 내용을 밝혔다. 며칠을 눈물로 지새우며 반대를 하던 어머니는 "기자회견 때 말조심 해라"고 했단다. 한국에서 군대 문제는 민감하니깐 조심해라고 당부한 것이다.

아버지는 3시간 동안 병역거부를 하지 말고 군대를 가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아들이 그 뜻을 굽히지 않자, 아버지가 마지막 말을 하고 통화를 끊었다고 한다.

"아들이 뜻을 세웠으니,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블로그 blog.naver.com/peoplefor에도 게재하였습니다.



태그:#김영배, #양심에따른병역거부, #사회당, #대학생사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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