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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젠지에서 느끼는 일본의 가을

 

 

고속도로를 나와 구마모토 시내로 들어서니 차가 조금은 밀리기 시작한다. 구와미츠바시 사거리를 지날 즈음부터 차가 더 많아진다. 잠시 후 차는 구마모토 현청 옆을 지나간다. 11월이 되었지만 가을 단풍이 이제 시작이다. 현청 앞의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역시 우리보다 가을이 늦게 옴을 알 수 있다.

  

1시40분경 차는 수이젠지 주차장에 도착한다. 우리가 구경할 곳은 수이젠지 죠쥬엔(成趣園)이다. 수이젠지는 한자로 수전사(水前寺)이다. 물 앞에 지은 절이라는 뜻이다. 죠쥬엔 가는 길에 보니 수이젠지는 탑재와 주춧돌 등 일부 흔적만이 남아있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놓고 죠쥬엔으로 들어간다.

 

 

죠쥬엔이란 이름은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 왔다. 동산을 거닐며 취미생활을 즐기는 곳이란 뜻의 이 정원은 구마모토의 번주였던 호소카와 타다도시(細川忠利: 1585-1641)와 그 후손들에 의해 1636년부터 약 8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귀거래사'에 보면, 도연명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작은 집을 짓고 안빈낙도의 삶을 살아간다.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취미생활을 하니        日涉以成趣

문은 있지만 드나들지 않아 항상 닫혀 있다.  門雖設而常關 

지팡이에 의지해 걷다가 되는대로 쉬면서     策扶老以流憩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時矯首而遐觀

 

비와코(琵琶湖)와 후지야마(富士山)가 어떻게 여기에

 

 

수이젠지 죠쥬엔은 정문에서 비와코를 왼쪽으로 돌아 한 바퀴 돌도록 되어 있다.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카쿠라덴(神樂殿)이 있고 그 옆에 죠쥬엔의 중심건물인 이즈미(出水) 신사가 있다. 카쿠라덴은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음악과 춤 그리고 노래를 하던 일종의 극장이다. 이즈미 신사는 1878년에 창건되었으며, 이후 물을 보내준 신에게 감사하는 제를 올리고 있다.

 

비와호 동쪽에는 후지산이 있고 타다도시의 동상이 있다. 후지산은 정원에 흙을 쌓아 만든 인공 산으로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산 주변 정원과 호수에는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죠쥬엔의 멋을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 정리되고 전지가 되어서인지 오히려 자연스런 맛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역시 일본의 대표적인 모모야마 양식 정원답다.

 

 

 

후지산 남쪽 비와호 변에는 노가쿠덴(能樂殿)이 있다. 노가쿠는 일본의 대표적인 가면극이다. 이곳 무대에서는 봄가을 2번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1878년 이즈미 신사와 함께 건립되었다. 이곳을 지나 다시 호수의 서쪽으로 가면 고킨덴쥬노마(古今傳授間)가 있다. 말 그대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와카(和歌)를 가르치는 곳이다. 와카는 일본 고유 형식의 시 또는 노래를 말한다.

 

호소카와 가의 초대 번주였던 후지다카(藤考)는 와카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토모히토(智人) 친왕에게 와카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때 가르쳤던 책이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이다. 고칸와카슈는 만요슈(萬葉集)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시가집이다. 905년 천황의 명으로 편찬되었으며 모두 1100수의 노래를 담고 있다. 7ㆍ5조의 서정시로 내용은 지적이며 기교는 다양하다.

 

 

이들을 보고 나오다 보니 재미있는 간판이 하나 눈에 띈다. 다섯 가지 주제가 설명되어 있다. 그 중 둘은 수이젠지의 유래와 맑은 물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다른 둘은 먹거리인 조선엿과 연근에 대한 설명이다. 나머지 하나가 이곳 지방 즉 히고주(肥後州)의 상감 기법에 대한 설명이다. 무엇보다도 조선엿에 관심이 간다.

 

그 내용을 읽어보니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전투식량으로 엿을 만들어가 큰 효과를 보았다는 것이다. 전후 이를 기념하여 이 엿의 이름을 조선엿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엿에는 독특하면서도 고유한 풍미가 있고, 장기 보존이 가능해서 유명하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귀국하면서 이 엿을 아소 구마모토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하기도 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는 한ㆍ일교류의 주역들

 

 

수이젠지를 보고 나서 우리는 공항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공항까지는 30-40분이면 충분하다. 또 시 외곽으로 빠지는 만큼 크게 밀릴 이유도 없다. 동쪽 아소 방향으로 잘 닦여진 길을 따라 가니 아소 구마모토 공항이 나온다. 우리는 국제선 탑승장으로 가 먼저 수속을 마친다. 그리고는 기념품을 사기 위해 국내선 탑승장에 있는 기념품점으로 간다.

 

간단하게 말고기(馬刺)를 사고 조선엿을 사고, 다른 사람들이 물건 사는 것을 도와준다. 우리는 쇼핑을 끝내고 모두 모여 간단하게 차를 한 잔 마신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일본 측에서 그동안 베풀어진 후의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일본 측도 역시 우리가 심포지엄에 참석해 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한다. 내가 생각해도 이번 심포지엄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번 학술 심포지엄의 주역은 뭐니 뭐니 해도 한국 측의 장준식 교수와 일본 측의 시마즈 선생이다. 장준식 교수는 불교 미술이 전공이고, 시마즈 선생은 고고학이 전공이다. 이들 두 사람이 주제 선정에서부터 행사의 진행까지 전반적으로 관여를 했기 때문에 심포지엄이 잘 이루어질 수 있었다.

 

물론 발표를 맡아 준 일본측 오쿠라 회장, 다카기, 니시다 선생, 한국측 어경선 회장, 김현길, 길경택 선생의 공도 크다. 그리고 행사를 위해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고 잡다한 사무를 담당한 일본측 도리츠 선생과 한국측 이상기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심포지엄을 위해 몇 달 전부터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조금 시간이 남아 보게 된 비행기 그림들

 

 

모든 일을 다 정리했는데도 시간이 조금 남는다. 그런데 마침 공항 로비에서 비행기를 주제로 한 그림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구마모토 공항에서 후원해 개최한 미술대회 입상작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날의 주제는 '날개짓해서 넓은 하늘로'이다. 그런데 이들 작품의 발상이 정말 참신하고 재미있다. 정말 요즘 애들의 발상과 표현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비행기를 고래에 비유하기도 하고 공룡에 비유하기도 하고 고양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고래에 비유한 그림을 보니 고래 비행기가 물을 내뿜고 있고, 옆면에 창이 표현되어 있다. 그 창에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고양이에 비유한 그림의 제목은 '고양이 버스 비행기'이다. 가운데 고양이는 분명히 보이는데 버스와 비행기는 찾기 어렵다. 공룡비행기는 그림이 가장 단순하다. 전체적으로 비행기라기보다는 공룡이다. 공룡의 다리가 그려져 있고, 이빨을 드러내고 포효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꿈을 싣고 날개짓하다'라는 작품과 '그림이 가득한 무지개'가 있다. 이 두 작품은 위의 작품들보다는 좀 더 생각이 깊은 편이다. '꿈을 싣고 날개짓하다'는 비행기를 잠자리에 비유했다. 검은 눈동자와 날개의 연두색이 아주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 잠자리비행기는 꽃 장식을 하고 있다. 꽃 중에는 큰 해바라기도 보인다.

 

 '그림이 가득한 무지개'에서는 무지개 뜬 하늘을 비행기가 날고 있다. 그런데 이 비행기에 그려진 그림들이 재미있다. 애들은 역시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비행기의 본체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많은 대상들이 그려져 있다. 새, 물고기, 토끼, 꽃, 나비, 달팽이, 벌레, 풀 등이 그것이다. 그림에서 나는 어린 아이들의 순수성과 상상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들 그림 감상은 일본여행에서 얻게 된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2010년에 개최할 학술대회 주제에 대한 논의

 

 

비행기가 떠날 시간이 되어 우리는 다시 국제선 대합실로 갔다. 그랬더니 구마모토현 국제교류과 해외담당 참사인 아와야 미나코(粟谷 美奈子)씨가 기다리고 있다. 장준식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번 만났고 지금까지 교류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와야 선생은 충남 공주시에 교환공무원으로 근무한 적도 있어 우리말을 아주 잘 한다.

 

이번에 구마모토 학술대회에 직접 참석하지 못해 공항에서라도 만나야 할 것 같아 왔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성의다. 그게 바로 일본 사람들이 외국인을 대하는 기법이다. 한 번 인연을 더 큰 발전의 계기로 삼는 것 말이다. 사소한 것으로 상대를 감동시키는 능력이 있는 게 바로 일본 사람들이다. 덕분에 나도 아와야씨를 알게 되었다.

 

비행기는 5시 35분에 출발한다. 그러므로 5시에는 탑승장에 도착해야 한다. 시간 여유가 있어 우리는 2010년 가을에 개최할 국제학술대회의 주제에 대해 논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몇 가지 주제가 언급되었다. 양국의 철과 철기에 대한 연구를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또 불교미술을 전공하는 사람이 많으니, 불교미술의 현황과 교류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자는 안도 나왔다.

 

 

또 최근 조선통신사 얘기가 많이 나오고, 충주가 조선통신 행로와 관련 중요한 지역이니, 통신사 문제를 주제로 올리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다들 가치 있는 주제들이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있으니 여유를 가지고 논의해 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학술대회는 주제선정도 중요하지만 발표 논문의 구체성이나 연계성도 중요하기 때문에 오랜 숙고와 토론을 통해 최상의 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니 일본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심포지엄 시간 전에 둘러본 사적은 학술대회와 직접 관련이 있었고, 심포지엄 후에 둘러본 박물관과 공원도 일본의 문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심포지엄은 관광이 주가 되는 여늬 학술대회와는 다른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술교류였다. 지방의 문화단체끼리 이루어낸 교류로서는 정말 수준이 높았다고 자평하고 싶다. 학술대회는 공부하는 모임이지 결코 노는 모임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2009년 10월31일부터 11월2일까지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개최된 심포지엄 참관기이다. 이번이 아홉 번째로 마지막 기사다. 첫 기사는 2009년 11월5일 나갔고, 여덟 번째 기사는 지난 1월18일에 나갔다. 이번 심포지엄은 한일 민간단체 교류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겠다.


#한일 학술교류#수이젠지#성취원#비와호와 후지산#조선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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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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