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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오십. 만나이로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사십대 후반이라 우겨 봐도 씁쓸하긴 마찬가지. 쉰은 그냥 쉰인 거다. 매지근한 마흔을 지나 쉬지근한 쉰이라니. 거울 앞에 앉으면 눈에 띄는 건 주름살이요, 보이는 건 흰머리다.

 뮤지컬 <메노포즈>
뮤지컬 <메노포즈> ⓒ 김혜원


'에효~ 내가 언제 이리 늙었던고….'

어떻게든 나이를 감추어보려고 멋내기 염색에 최신 스타일 파마도 하고 인기몰이 중이라는 김연아식 스모키 메이크업까지 따라해 보았지만 김연아는커녕 지난밤 부부싸움에 눈탱이 얻어맞은 여편네 꼴이라. 황급히 지워버리고 거울 앞에 앉으니 힘없이 늘어진 나의 두 턱이 이제는 그만 세월을 받아들이라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모처럼의 공연 나들이. 그것도 뮤지컬이라는데 아무렇게나 갈 수는 없지. 김연아 스모키화장은 포기했지만 늘어진 뱃살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 10년 전 산 손바닥 만한 거들을 꺼내 입는 용기를 내본다.

허나 그것도 여의치 않다. 허벅지에 걸려 올라오지 않는 거들을 허리까지 치켜올리는 데만 30분. 나온 배를 거들 안으로 밀어넣는 데는 간신히 성공했지만 온몸은 땀에 젖고 공들인 화장마저 얼룩져 보수를 하지 않으면 외출이 불가능할 정도. 땀으로 얼룩진 화장을 고치려 화장대에 앉으니 거들이 명치를 눌러 숨조차 쉬기가 힘들어 비명이 절로 나온다.

"트앗!! 이러다 공연도 못 보고 호흡곤란으로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몰라.'

결국 거들은 벗겨졌다. 거들에서 벗어난 내 몸의 자유로움이란. 애초부터 모처럼의 문화가 나들이라고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 그냥 평소처럼 펑퍼짐한 몸을 적당히 감싸줄 신축성 200%의 고무줄 바지에 헐렁한 니트 하나면 되었을 것을.

어느덧 나이 오십, 폐경을 걱정할 때라니

현관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오다 문득 가슴이 철렁한다. 가스 불은 잠갔던가? 휴대폰은 가지고 나왔나? 지갑을 챙겼나? 티켓은? 이 죽일 놈의 건망증. 아줌마들의 외출은 단 한 번에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몇 걸음 가다 지갑이 생각나고 또 몇 걸음 가다 휴대폰이 생각나고 또 몇 걸음 가다 잠그지 않은 가스밸브가 생각나는… 늘 그런 식이다. 그 때문에 수차례 현관을 드나 든 끝에야 비로소 출발을 하게 되지만 그러면서도 늘 뭔가 한 가지씩은 꼭 두고 나오니 스스로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공연장에 도작하니 저녁 7시 30분. 8시 공연을 앞두고 조금씩 관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여성들, 특히 중년 여성의 문제를 다룬 뮤지컬이니 대부분의 관객들이 40~50대 중년 여성들이겠지 했던 나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관람을 온 중년의 부부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폐경이라는 뮤지컬인데 함께 가지 않을래?"라는 나의 요청에 "폐경? 그런 건 여자들만 보는 공연 아니야. 당신이나 다녀 와. 남자가 뻘쭘하게시리"라며 가볍게 거절해 버린 남편. 그럼 지금 아내들과 함께 공연장에 와 있는 저 남편들은 다 뭐란 말인가? 후에 남편이 그랬다.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끌려온 불쌍한 남편들이었을 뿐이라고.

갱년기 증상 우리 모두 똑같아, 자신감을 가져

 마지막 무대인사에서는 관객들을 무대로 불러내 함께 즐기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마지막 무대인사에서는 관객들을 무대로 불러내 함께 즐기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 김혜원

각설하고 공연은 유쾌했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인생의 한 주기를 한탄만하며 우울하게 보낼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면서 보내자는 것이니 동병상련하는 입장에서야 그보다 더 공감이 되고 위안이 될 수는 없었다.

'폐경'이든 '완경'이든. 다시 말해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았든, 스스로 장렬하게 완결을 지었든 솔직히 정작 폐경을 앞둔 혹은 갱년기에 들어선 여성들에게 이름 따윈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폐경이라고 해서 더 슬플 것도 없으며 완경이라 한들 나이 듦에 따라 오는 몸의 변화가 즐거울 것도 없다는 것이다.  

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툭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갱년기. 괜한 일에 눈물 바람을 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욱" 하는 성질을 부리게 되는 갱년기. 어느 날부턴가 온몸에 지방층이 쌓여 앞도 뒤도 없는 통치마에 고무줄 바지만 찾게 되는 갱년기. 목소리는 커지고 기억력은 작아지는 갱년기. 요실금 무서워 기침은커녕 함부로 소리 내어 웃지도 못하는 씁쓸한 갱년기. 기다리던 남편의 손길조차 무섭고 두려워지는 갱년기.

하지만 배우들은 갱년기도 문제없다고 노래한다.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의사의 상담과 적절한 약물치료 그리고 밝고 긍정적인 마음가짐만 있다면 두려움과 우울함 속에서 갱년기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며 "걱정할 것 없다"고 용기를 준다.

갱년기스런 행동, 당황하지 말고 준비하자

하지만 이상하다. 배꼽 잡게 웃기는 와중에도 가끔씩 찡한 눈물이 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눈물이라니. 이 무슨 갱년기스런 행동이란 말인가. 머지않은 날에 나에게도 다가올 그날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울증 치료제? 여성호르몬제? 골다공증 치료제? 아니면 건강식 섭취와 지속적인 운동?

비슷한 나이지만 나보다 먼저 갱년기를 맞은 친구가 있다. 처음 몇 달간은 스스로 갱년기증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고 그 다음 몇 달간은 아내의 갱년기를 이해 못하는 남편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똑똑한 그녀는 폐경 2년 만에 대부분의 갱년기 증상을 극복했다며 노하우를 알려준다.

"소방서에 가면 이런 말 붙어있지?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내가 그랬잖아. 사실 준비는 폐경 전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도 폐경이 온 뒤에 하려니까 2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지. 미리 미리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준비를 했더라면 2년간의 고생도 하지 않아도 될 뻔 했었어. 약도 먹고 운동도 하면서 닦고, 조이고, 기름치니까 요즘엔 폐경 전보다 부부관계도 더 좋아지고 건강도 좋아진 것 같다니까."


#메노포즈#폐경기#갱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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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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