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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운동회 풍경입니다.
 첫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운동회 풍경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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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엔 1학년 담임을, 2009년엔 2학년 담임을 맡았다. 학기말에 아이들과 3학년 올라갈 준비를 하다 보니 1학년에서 데리고 온 아이는 4명밖에 안 되는데도 마치 2학년 전체를 내가 3학년으로 올려보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학생수가 200명이 넘어 아이들 얼굴을 다 아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엄마로서의 경험과 겹치기 때문인 것 같다. 첫 아이도 2008년에 인근 학교에 입학을 했다.

아이와 같은 학년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새로운 경험이다. 먼저, 1학년을 보자. 교사로서 학급 아이들 지도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1학년 담임을 두 번째 하는 것이라 아이들 대강의 특성은 알고 있었지만 결혼 전에 이론으로 이해하고 본 모습과 아이를 낳고 본 1학년은 느낌이 달랐다. 집에서 날마다 아이를 보기 때문에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 낯설지 않은 것이다. 천방지축 아이들과 지내는 게 너무 힘들다 생각하는 것도 집에 와 아이 하는 걸 보면 이해가 된다.

"그래, 저게 딱 1학년 아이 수준인데 내가 너무 크게 기대하는 거 아냐? 저런 애들이 30명 넘게 있으니 당연한 거지."

1학년은 발달단계상 아직 자기와 세상을 분리하지 못하는 시기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본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친구와 다툼이 생기면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 객관적 상황이 어떤가는 (아직) 모르고 자신이 겪은 것, 자신이가 억울한 것만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결코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편 아이도 마찬가지다. 이럴 땐 두 아이 이야기 중에서 차이 나는 것을 확인하고, 주변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 상황을 퍼즐처럼 맞춰가야 한다. 그러다보면 아이들은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기 고집이 세거나 아직 (생각이) 어려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끝까지 인정하지 못한다. 이럴 땐 억지로 납득시키려고 하기보다 사실 확인에 그치고 집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해시키는 식으로 해결하였다. 2001년에 과천에서 새내기 학부모 연수를 하면서 가장 강조한 부분이다.

실제로 우리 아이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 "누가 때렸다, 집에 오는데 누가 괴롭혔다. 돈을 가져오라고 했다"하는데 항상 "나는 안그랬는데"로 시작한다. 이야기만 들으면 자기는 무조건 피해자이고 다른 아이들만 나쁜 상황이다. 아이 할머니나 아빠는 아이 이야기만 듣고 흥분을 할 때도 있어 절대 상대방 아이 직접 찾아가지 말고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먼저 하는 게 좋겠다면서 진정을 시키곤 했다.

학습면에서는 아이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학습 진도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아이가 집에 와서 질문하는 걸 보면 우리 반 아이들이 어디에서 막히는 부분이 있는지 예상이 되고, 그러면 학교에 가서 그걸 보충하거나 심화시킬 활동을 배치하였다.

아이가 끝말잇기나 "가"로 시작하는 말놀이 등을 재미있어 하다가 속담이나 수수께끼로 관심이 이동하는 과정, 무심코 쓰던 말들에 낱말 하나하나 신경써서 재배치하고 낱말의 속뜻까지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간 책에서나 보던 "말을 부리기 시작한다"는 표현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관찰하고 집에서 하는 각종 활동은 학부모편지에도 좋은 소재로 활용되었다.

우리 아이의 수준은 어떨까? 입학시킬 때는 거의 부진아 수준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전혀 시키지 않았고 국가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병설유치원에 보냈다. 아이들이 발달단계별로 발달시킬 과제가 있고, 너무 일찍 글을 읽고 쓰게 하여 상상력 발달을 저해할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혼자 TV를 보면서 한글 읽는 법을 배우고 자기 이름만 쓰는 채로 학교에 입학했다.

10여년 초등교육과정을 연구하면서 생각한 것도 있었다. 8살 정도면 한글교육을 받을 적기이고, 교과부가 현재 1학년 국어가 한글을 안 배운 아이도 충분히 학습할 수 있다는 전제로 만들었다고 하기에 실제로 그럴 수 있으리라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주변에서 보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는 분들이 꽤 많았다.

그럼 결론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하다가 1학기 말쯤 가니 어느 정도 적응을 하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다. 주변 사람들은 아이를 실험한다며 질책하기도 했다. 1학년 과정의 수준이 너무 높아 한글을 모르고 와서는 절대 따라가기 힘들고, 선행학습을 시켜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모임의 한 선생님이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안 시켜 아이가 적응을 하지 못한다고 걱정하는 것을 본 터였다.

아이는 입학식 다음날부터 알림장을 4, 5번까지 채워왔는데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글씨쓰기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으니 그려왔다고 보는 게 맞다. 집에서 어떻게 쓰는지 보니 받침부터 거꾸로 그려갔다. 부랴부랴 글씨 쓰는 필순을 가르치고 천천히 써오라고 하였다.

교육과정상 아직 <우리들은 1학년>을 할 때이고 한글쓰기가 시작되지 않을 때인데 알림장을 빽빽하게 채워오는 게 못마땅하기도 했다. 우리 학교는 4월 정도까지 알림장을 담임이 인쇄해서 알림장에 붙이는 방식이라 비교도 되었다. 그런데 어쩌랴? 학교가 다르고 학급 상황이 다르고 담임 선생님의 방식도 잘 모르는 상황에.

2월에 가방을 사주자 신이 나서 메고 돌아다니고 서울 이모네 갈 때도 메고 가 학교 간다고 자랑하던 아이가 급기야 2주 만에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였다. 4월에는 받아쓰기를 하는데 20-30점부터 시작했다. 결국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도 아이가 많이 힘들어한다고 하셨다. 학급 상황을 보니 우리 아이처럼 한글을 안 배워온 아이가 딱 3명이라 앞쪽에 앉혀 특별히 지도하시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교사가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너무 잘한다고 하였다. 선생님에게 부탁드린 것은 자리를 앞에 앉히는 것은 괜찮은데 남기는 것은 아이가 너무 싫어하니 집에서 할 과제를 주는 식으로 해달라고 하였다.

그러다 5월말쯤 가니 아이 글씨가 제대로 틀이 잡히고 받아쓰기도 어느 정도 해나갔다. 1학년이 끝날 때에는 큰 무리없이 학교생활을 끝마쳤다. 집에서는 처음에만 한글 필순 정도 가르쳤으니 아이의 실력은 대부분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지도한 결과이다. 다행히 아이가 잘 따라갔으니 한숨이 놓이고, 담임 선생님의 지도로 아이가 충분히 1학년 공부를 끝마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이 시간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때로 아이에게 너무 미안할 때가 많았고 담임선생님에게도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학기말에 고맙다는 편지와 우리 반 학급 문집을 선물하는 것으로 인사를 했다.

우리 반을 보면 대부분 선행학습을 해와서 아이들 실력이 좋은 편이고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아이들이 4-5명 수준이었다. 일부러 가르치지 않은 부모님도 계시고, 아이가 조금 늦은 경우도 있었다. 최대한 아이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하지만 이 아이들도 우리 아이와 같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우리 반은 월요일 아침 주말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한 줄로 쓰는 것부터 국어 수업을 시작해 1년간 꾸준히 이런 방식을 이용했다. 국어 교과서는 단계가 갑자기 뛰어버리고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나와 이런 방식을 병행해야 했다. 학기말에 보니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아이들이 교사말을 더 잘 이해해 가르친 보람이 들었다. 아이에 따라 다른 아이들과 거의 똑같은 수준으로 발달하기도 하고 계속 뒤처지는 등 차이가 났다.

지나고 보니 1학년 교육과정은 국어 실력이 거의 반이고 나머지는 신체활동과 조작능력이 기본이다. 발육이 늦거나 감각이 덜 발달한 아이들은 간단한 자르기나 접기도 힘들어 하고 학습 능력도 조금 뒤떨어졌다. 가정에서 충분한 말하기 경험이나 생활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이 한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쓰는 어휘도 부족하며, 다른 교과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 다른 교과에 나오는 낱말이나 문장도 국어 수업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이해시켜야 했다.

엄마와 교사로 비교해보면 어떨까? 1학년 교사는 2번째 하는 것인데도 많이 힘들었다. 출근할 때 생각했던 것이 교실에 들어온 순간 아이들 모습을 보면 전혀 다른 식으로 시작이 된다. 우아하게 이야기를 하려해도 4-5명 계속 같은 이야기 물어보면 목소리가 커질 때가 많다. 1학년 아이들에게 전체에게 이야기하는 건 한 사람도 안듣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한 명 한 명 이름 불러가며 이야기해줘야 자기에게 이야기하는 게 되는 셈이다. 쉬는 시간도 따로 없어 끝나갈 때는 병이 날 지경이 되어 1학년을 또 하겠다는 선생님에게 대단하다고 했다. 연임을 할까 말까도 한참을 고민했다.

1학년 엄마로 생활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아이가 1학년을 마치는데 내가 더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입학하기 전부터 아이가 잘 적응할까 걱정이 되고, 처음에 한글을 몰라 힘들었던 것 외에도 즐거운 생활이 하나도 즐겁지 않다던 아이. 학생 수가 많아 운동장 차지가 어려운 상황도 아이에게 내내 미안했다. 받아쓰기 점수 중요하지 않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시험에 부담 갖고 점수에 연연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였다. 2000년부터 초등 1학년 너무 어려우니 고쳐달라고 초등교육과정 연구하고 싸운 것도 내 아이 학교 생활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고, 작년에 바뀐 2007개정교육과정은 더 어려워졌다는 소식에 화도 났다. 때론 교사로서 너무나 문제가 있다고 보는 내용을 아이가 절절매면서 공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못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에 비해 2학년은 훨씬 수월하다. 아이들이 학교 적응이 어느 정도 되었고 친구 관계나 학습 면에서 1학년 때보다는 쉬운 느낌이다. 2000년에 6차에서 7차로 바뀌었을 때는 2학년 내용도 너무 어려워지고 6차 1학년말에 배운 수학 내용이 7차에서는 2학기초로 당겨지는 등 학습 결손이 심해서 아이들과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다. 이번 2007개정교육과정도 아이들에게 어렵다는 학년 선생님들의 말씀이 있었지만, 6차에서 7차로 변할 때보다는  결손폭이 훨씬 적어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고 국어는 반복되는 내용이 많았다. 즐거운 생활에서 아이들 수준에 하기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단원도 있었지만,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2000년에는 정말 우리 반 아이들이 한 명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었다.

아이들 발달단계를 꾸준히 고민해온 터라 2학년 아이들의 특성을 더 자세히 보려고 하였지만 관찰만으로는 많은 걸 알기가 어려웠다. 집에 와서는 아이가 하는 공부 내용은 거의 보지 않고 구구단 외는 것이나 3학년에서 내려온 분수를 제대로 이해했나 보는 정도였다.

이제 2학년도 끝났다. 3학년 책을 본 아이가 너무 어려워서 3학년 가기 싫다고 하는 걸 보니 벌써부터 조금 걱정이 된다. 학급 아이들에게는 3학년 교과나 전담 선생님이 들어온다는 이야기 등을 하면서 안심을 시켰는데 정작 아이에게는 그런 말을 할 시간도 없다. 영어 책을 보니 선행학습 안한 상태에서 앞으로 어떤 상황을 겪을지,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지는 않을지 여러 생각이 든다. 한글 선행학습을 걱정하던 때와 달리 불안감이 훨씬 크다. 교육계에 있는 사람도 이러니 일반 학부모들은 더 걱정이 될 것이다.

하늘은 왜 하늘이라 부르고 나무는 원래 나무라고 불렀느냐 등 이런 질문이 부쩍 늘어난 걸 보니 3학년 시기에 세상과 자아가 분리되기 시작하고 철학적 사고가 시작된다는 것이 맞는가보다 혼자 분석해본다. 이제 학년이 달라졌지만, 집과 학교에서 아이들의 1, 2학년 생활을 동시에 본 것이 엄마나 교사로서 좋은 경험이었다. 아이에게도 심리적으로는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위안을 해본다.

연구자로서는 아직 뚜렷한 결론을 내기 어렵다. 2년간 경험한 것을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하지는 못했다. 그간 우리 나라 교육과정이 너무 어렵고 특히 7차교육과정에서 1, 2학년 교육과정이 3, 4학년 수준으로 높아졌다는 것을 여러 자리에서 이야기하였다. 한글을 모르고 학교에 들어와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맞는가 의문도 있었다.

우리 아이나 학급 아이들을 보면 아이의 기본 능력과 교사의 노력 속에서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라는 느낌도 있다. 선행학습은 하지 않았지만 토대가 되는 학습 활동은 음으로 양으로 해왔고, 학교와 집에서 동시에 노력한 것도 있을 것이다. 특히 한글 교육은 다른 나라처럼 공교육 초기인 1학년 때 체계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므로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하지만, 입학 초기에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너무 크고, 아이에 따라 이런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진아가 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현재 1, 2학년 교육과정 교육과정을 보면 성취수준이 너무 높고, 특히 1학년 국어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에서 선행학습을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어보면 절대 하지 말라고, 학교에서 다 해결할 수 있으니 유치원 교육에만 충실하라는 말을 선뜻 하기가 어렵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에서는 3학년 교육과정 변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태그:#초등1학년, #선행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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