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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태 의원 측 "표절? 편집상 실수"라고 해명하지만...

 

<오마이뉴스>가 광주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한 강운태(민주당, 광주 남구) 의원의 저서가 남의 글을 표절한 것이라고 확인 보도를 한 지 2주일이 넘어가고 있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유력 주자의 표절은 후보 검증의 첫 잣대가 도덕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중대한 사건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강 의원이 직접 나서서 정중하게 사과를 한다든가 해명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측근을 통해 "편집상의 실수였다"고 밝혔을 뿐이다. 아마도 <오마이뉴스>가 복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통으로 표절한 대목만을 사례로 들어서 강 의원 측이 '편집상 실수'라는 묘책을 생각해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하게 밝혔듯이 이 사례는 '지능적 짜깁기 의혹이 짙은 부분은 제외'한 것이다. 강 의원 측이 '편집상 실수'였다고 주장하니 '지능적 짜깁기 의혹이 짙은' 한 사례만 들어보겠다.

 

다음은 세계도시정보 사이트 유빈에 있는 내용이다.

 

 

이번엔 강 의원의 저서 <미완의 광주, 창조의 중심도시로>의 168쪽부터 169쪽 내용을 살펴보자.

 

"뉴캐슬은 잉글랜드 북동쪽의 관문인 관계로 일찍부터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많은 교역이 진행돼 왔으며 최근에는 다른 유럽국가들과도 활발한 교역이 이뤄지고 있다.

 

뉴캐슬은 현재 유럽도시를 대상으로 에너지도시 네트워크(Energy Cities Network)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유럽협회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뉴캐슬대학교를 중심으로 유럽의 여러 대학과 학문적 교류가 이뤄지고 있으며, 최근

유럽연합(EU)의 연구개발비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학술교류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유럽에 대한 정보 서비스(European Information Service)를 가장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도시 중 하나이며, 효과적인 정보 서비스 제공을 위해 대학 내 유럽문헌정보센터 시정부 차원유로인포센터(EuroInfoCenter) 설치 운영을 통해 유럽 국가들과의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한 유럽의 지역거점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유빈 인용문 중 첫 번째 밑줄 친 부분을 강 의원은 슬쩍 빼고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고 있는 '또한'이라는 단어도 뺐다. 그리고 원문의 "결성하여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를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유럽협회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문장으로 바꾸었지만 전체 문단의 흐름을 보면 유빈의 흐름과 흡사하다.

 

원문에서 "여러 대학과 학문적 교류가 있어 오던 이곳은"은 강 의원이 썼다는 책에서는 "여러 대학과 학문적 교류가 이뤄지고 있으며"로, "학술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학술교류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바뀌었다. 

 

여기서는 더 이상 강 의원 얘기를 거론하지 않겠다. <오마이뉴스>는 이미 강 의원이 명백한 표절을 했다고 보도를 했고, 강 의원이 표절한 책을 팔아 '사랑의 성금' 140만 원을 냈는데 정중한 사과와 반성이 먼저라고 후속보도까지 했기 때문이다(아래 관련기사 참고).

 

20개나 되는 지방일간지 중 강 의원 표절 보도한 매체는 한 곳도 없어

 

이번에 얘기하고 싶은 주제는 지방언론의 집단 침묵이다. 21일 현재까지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강 의원 표절사건을 보도한 매체는 단 세 곳이다. <주간 시민의소리>, <프라임경제>, <머니투데이>다. 이 중 광주지역 매체는 <주간 시민의소리> 뿐이다.

 

광주는 매체가 많기로 유명한 도시다. 인구가 약 140만 명인 도시에 지방일간지만 20개에 달하고, 인터넷매체만 4개에 이른다. 참고로 인구가 약 350만 명에 달하는 부산의 지방일간지는 <부산일보>와 <국제신문> 두 개뿐이다.

 

이 많은 광주지역 매체 중에서 신문의 역사와 성향을 불문하고 강 의원 표절사건을 보도한 매체는 앞서 언급한 <주간 시민의소리>를 제외하곤 단 한 곳도 없다. 뉴스 가치가 떨어진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유력 시장후보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낸 책의 상당 부분을 통으로 표절하고, 사진을 무단 도용했으며, 지능적으로 짜깁기를 한 것이 확인된 심각한 사건이다. 누가 먼저 보도했건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유력 주자의 도덕불감증에 대해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정도다.

 

또 표절한 책을 팔아 140만 원을 '사랑의 성금'이라고 기부하고 이를 알리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 코믹한 상황을 보며 "정중한 사과부터 먼저 하는 게 도리"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언론의 바른 역할이다.

 

그러나 광주지역 언론은 방송과 통신사, 지방일간지, 인터넷 매체를 막론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마치 강력한 주문으로 서로 최면을 걸고 약속이라도 한 듯, 강 의원의 명백한 표절에 그들은 집단적으로 침묵했다. 대체 이 집단적인 침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기자는 "현재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가장 높은 1위 후보이기 때문에 지방언론들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예비권력에 대해서 지방언론이 알아서 기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기자는 "현장을 뛰는 기자들은 그렇지 않은데 데스크와 사주들이 강 의원이 1위를 하고 있으니 눈치를 심하게 본다"고 했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데스크에 의해서 잘리고, 사주에 의해 편집될 것 같으니 못 썼다는 얘기다.

 

두 기자가 전하는 얘기는 광주지역 언론의 현재 얼굴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언론'은 사라진 광주지역 '언론회사'의 현실이다. '기자'는 없고, '아무개 신문사의 직원'만 있는 '민주성지 광주'의 모습이다.

 

유치하지만 워낙 심각하니 이렇게 되묻게 된다. 만약 강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면, 서울지역 언론들이 지지율 1위라고 해서 강 의원의 표절에 대해 집단적으로 침묵했을까? 만약 강 의원이 대전시장, 부산시장 출마를 선언했는데 그곳 지방언론들이 명백한 표절을 보수·개혁을 불문하고 집단적으로 침묵했을까?

 

피눈물로 학살자 고발하던 '광주 기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2일은 <오마이뉴스> 창간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마찬가지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 역시 <오마이뉴스>에서 소위 '언론밥을 먹으며 기자질'을 한 지 10년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로서는 매우 경사스러운 날이고, 10년차 기자에게도 매우 기쁜 날이다. 그러나 즐겁지가 않다. 말해야 할 자들의 집단적인 침묵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기자와 언론의 집단침묵이 잔혹한 '이지메'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방언론의 침묵을 통한 집단 '이지메'는 역설적으로 <오마이뉴스>의 모토인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른바 '선수'라고 불리는 직업기자들이 침묵과 외면으로 담합하는 최악의 경우에도 누군가는 기록자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가 시민기자이고, 그 매체가 바로 시민저널리즘에 기초한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현대 매체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어떤 사람인가? 사실을 기록해서 전하는 이다. 기자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물타기'나 '마사지'만은 아니다.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사실 앞에서 침묵하고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다. 말해야 할 자가 말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언론은 무엇인가?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하고 감시하는 기구다. 언론이 권력과 타협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언론은 '감시·비판·견제'라는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된다. 권력에 줄을 대고 기생해서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차라리 '언론사업'하지 말고 다른 사업을 하는 게 낫다.

 

기자와 언론의 모든 것은 기록된다. 기자들이 쓴 기사도 기록되고, 침묵과 외면도 기록된다. 그것이 기자의 숙명이고 언론의 역사다. 누군가는 그것조차 기록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그 기록을 토대로 평가할 것이다.

 

올해는 광주민중항쟁 30주년이 되는 해다. 등사판에 '광주여 십자가여'를 피눈물로 쿡쿡 눌러 쓰며 학살자를 고발하던 '광주 기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런 기자들을 "내가 시켰소"하며 학살자로부터 보호하던 '국장 선배', '신문사 사장님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진짜 '광주 기자들'과 '진짜 국장 선배들'과 금남로의 허름한 대폿집에서 진하게 막걸리잔 기울일 그날을 기다린다. 그날에야 비로소 '기자질 10년'을 자축할 수 있을 것 같다.


태그:#강운태, #광주시장, #지방일간지, #기자,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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