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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를 '배신자'라 했다. 너도 그곳에서 있으면서 수십억 벌었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양심고백' 운운하느냐고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은 그를 진실을 알리는 양심고백은 완전무결한 인격을 가진 이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비리의  공범이 하는 양심고백이라는 이유로 진정성과 진실성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다"고 반박한다.

 

그렇다. 원래 불의는 너도 불의한 양심을 가졌으면서 무슨 진실을 알리느냐고 비웃는다. 그 순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진실은 영원히 묻힐 수밖에 없다. 배신자란 낙인 찍히고, 불의한 양심이라는 비웃음을 당하더라도, '죽지 않을 권력'이라는 거대한 불의를 두고 볼 수 없었다. 불의한 양심이 정의로운 양심으로 거듭난 것이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이처럼 정의로운 양심이 진실을 위해 거대한 불의를 낱낱이 파헤친 양심고백서다. 양심고백서를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반도체 기술자'보다 '비자금 기술자'가 더 대접받고, "회장님과 그룹을 보위하는 일"을 자신들 사명으로 여기는 이건희 회장의 최측근들 모습은 그 동안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끊임없이 들었던 이 말에 우리가 세뇌 당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구조다. 희생을 치르고 조직에 기여한 사람과 성과를 챙기는 사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삼성 구조본에서 일해본 사람은 그 이유를 안다. 삼성에서 가장 높은 대우를 받는 사람은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서 회사의 위상을 높인 사람이 아니다. 이건희, 이재용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비자금 기술자가 더 대접받고, 회장님을 보위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길 때 밤을 새워가면서 오늘의 삼성이 있게한 반도체 연구원들과  "컨베이어 벨트에 예속돼 두 시간에 10분씩 휴식하면서 꼼짝 없이 일하는 남녀 생산직 직원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이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 삼성의 진짜 모습이라는 양심고백서 앞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회장을 보위하고, 회장이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고 물도 마시지 않는 구조에서 이건희 전 회장은 "죽지 않을 권력"이 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삼성 안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권력을 쥔 자들, 죄를 단죄해야 할 사람들에게도 그래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김용철 변호사 양심고백을 통해 삼성비자금리 폭로되어 '조준웅 특검'까지 만들었지만 "삼성 특별변호사"라고 할 정도로 진실을 외면했다. 조준웅 특검에 대한 김용철 변호사의 평가는 냉혹했다.

 

"결국 이번 특검의 최대 성과는 이건희 일가가 훔친 돈, 즉 장물을 피해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훔친 자에게 갖도록 한 것이다. 조준웅 특검은 삼성생명 차명지분을 모두 이건희의 몫으로 인정해줬는데, 이는 이건희에게 횡재나 다름없다."

 

조준웅 특검뿐만 아니라 재판부도 마찬가지였다. 2심재판 재판부는 비리를 저지른 재벌들에게 "당신들도 처벌 받고 싶지 않으면, 평소 삼성처럼 법관들을 관리해 주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 됐다. 2심 판결을 놓고 사제단 김인국 신부가 '전 국민의 영혼을 오염시킨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고 김용철 변호사는 말했다.

 

오염된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야 할 사명은 가진 재판부가 오히려 영혼을 오염시켰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김용철은 "죽은 권력이 아니라 죽지 않을 권력도 수사하라"는 것이 김용철 호소다. 그 중심에는 바로 언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은 양심고백을 위해 김용철 변호사가 문을 두드렸을 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삼성 비리를 파헤치는 일은 '진실'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는 이들만이 제대로 감당할 수 있다. 학연, 지연 등 인맥에 얽매이지 않고, 정치적 고려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뜻이다. 여야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계는 물론 학계와 문화계 인맥까지 관리하는 삼성의 비리를 파헤칠 수 있는 이들은 그래서 많지 않다."

 

불법을 단죄할 법조계와 더 엄격한 법을 만들어야 할 정치권,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야 할 언론이 침묵하거나, 오히려 변호하는 이 어처구니 현실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김용철 변호사의 탄식을 들어보자.

 

"삼성 비자금 관리를 맡았던 한 사람에게 만약 검찰이 삼성그룹 본관을 압수수색하면 어떻게 할 것인 묻자 그는 '삼성 본관에 압수수색이 들어올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한 말은 '만약 들어오면 (칼로)찌르고 도망가죠 뭐' 말문이 막혔다."

 

법과 정의보다는 회장을 위해 충성하는 이 거짓된 모습을 보고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가. 법과 질서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시대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김용철 변호사를 향해 '배신자'라, '반기업인'이라 낙인 찍고 있다. 그러므러로 우리가 나서야 한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언론권력이 외면하지만 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삼성을 생각한다>가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예스24>와 <알라딘>은 베스트셀러 1위, 인터넷<교보문고>는 2위다. 김용철 변호사와 출판사는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책이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을. 그는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 바람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스24> 'Jeter '은 <삼성을 생각한다>는 리뷰에서 "자본주의가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라며 "우리는 후손에게 정말 부끄럽지 않은 부모 세대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면서 우리는 정말 부끄럽지 않은 부모들이 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삼성과 이 땅의 권력이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해야 한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덧붙이는 글 |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ㅣ 사회평론 펴냄 ㅣ 22,000원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사회평론(2010)


태그:#삼성, #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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