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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현(56)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입을 열었다. 2006~2008년 사이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낸 그는 2년 정도 경남 거창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달 보름 전 창원에 머물면서 다시 정치 현장에 뛰어 들었다.

 

그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분당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로 있었다. 그는 분당 이후 자숙하는 의미에서 시골에서 지내 오면서, 언론과 접촉도 꺼려왔다. 최근 민주노동당은 창당 10주년을 맞았는데, 그는 창당의 과정도 지켜보았고 분당의 아픔도 겪었다.

 

 

문성현 전 대표는 지난 5일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분당 과정에 겪었던 여러 상황들을 털어놓았다.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의 등에서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이 깊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종북주의'보다 '패권주의' 때문에 분당된 것이라 분석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는 창원을 비롯한 지역의 노동현장을 훑고 있다. 노동 현장을 돌며 그는 분당으로 인해 "현장정치 활동을 못 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조합도 갈라졌다"며 "복수노조 시대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가장 우려된다, 분당은 두 정당의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분리"라고 지적했다.

 

문성현 전 대표는 "이제는 서로 다르더라도 같이 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모두 공멸할 것"이라며 "생각이 다르더라도 한 조직 안에 있어야 하고, 조직이 나누어져 있더라도 같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당이 서로 다르더라도 같이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것이 진보진영 정당과 노동조합 모두한테 주어진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진보개혁진영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모여야 한다"면서 "모인다면 '서민복지를 위한 연정'이 필요하다.  진보개혁진영이 서민복지를 위해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상대를 나온 문 전 대표는 1980년대부터 노동운동을 해왔다.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의장(1993)을 비롯해,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1999)을 거쳤다.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위원장(2004)을 지낸 그는 2006년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다.

 

국가보안법과 노동쟁의법 위반 등으로 다섯 차례 구속․투옥된 그는 현재 민주노동당 지도위원으로 있다. 다음은 문성현 전 대표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벌써 10년이 됐구나, 아직 10년 밖에 안 됐구나"

 

- 민주노동당이 창당 10년이 되었는데 어떤 생각이 드는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겠다. '벌써 10년이 됐구나'와 '아직 10년 밖에 안됐구나'다. 1987년 '민주화 대투쟁'이 있었고, '민중당'과 '국민승리21'이 만들어지면서 진보정치 실험이 있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졌는데, 계기가 된 것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였다. 정당 결성을 결정했던 대의원대회 현장과 민주노동당 창당대회 현장에도 있었다. 창당 때는 솔직히 4년 뒤, 그러니까 2004년 총선 때 10석을 할 것이라고 생각 못했다. 2008년 분당과 그 해 총선에서 5석으로 떨어졌다. 진보정당을 만든 게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아서 '벌써'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아직'이란 의미는 아직도 정치실험이라는 요소가 있다는 차원이다. 처음 만들 때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목적이 하나였다. 민주노총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해 '비판적 지지'냐 '독자적 지지냐'에 대해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아직도 실험 중이다. 다시 한번 잘 살펴보고 점검해서 정비를 해야 한다."

 

- 진보정당 10년의 성과를 꼽는다면?

"처음에는 정당이기에 진보정당의 독자적 집권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처음에는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한국노총의 지지도 받고 여러 조건이 주어진다면 독자적인 집권이 어렵지 않고,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갈 것이라 봤다. 그런데 한국노총은 녹색사회당을 만들기도 했고 이후에는 한나라당과 연대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노총은 민주노동당과 함께 할 수 없는 사태가 되었다. 집권은 끊임없는 목표지만, 애초 목표했던 것에 비하면 어려워졌다. 당분간은 집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른 정치세력과 '연정'을 모색하는, 새로운 상황이 됐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보내면서, 현재의 냉정한 좌표는 집권 가능성은 잠시 접어두고 연정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 그런 입장은 당에서 정리된 것인지?

"그런 건 아니다. 당에서는 여전히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집권은 유효하다고 보는 분들이 있다. 당에서 본격적으로 토론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2010년 지방선거를 치르고 나서 당이 약진하면 연정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그런 기조가 2012년 대선까지 이어지는 정치적 흐름이 될 것이라 본다."

 

"당권파와 비당권파 갈등 ... 패권주의에 빠져"

 

- 당 대표로 있을 때 진보신당과 분당됐다. 그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시골에서 지낸 것으로 안다. 그래서 분당과정에 대해 입장을 밝힐 기회가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전 당에서는 두 흐름이 있었다. 언론 등에서는 무슨 '연합'이 있다거나 하면서, '자주파'니 '평등파'니 하면서 나누기도 하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 그런 두 흐름이 있었지만, 이전에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권영길 전 대표 때나 김혜경 전 대표 때만 해도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김혜경 전 대표 때만해도 사무총장을 김창현씨가 맡으면서 분리하기도 했으니까. 제가 대표가 된 뒤부터 나누어졌던 것 같다. 당시 대표 자리를 놓고 조승수 의원 지지와 저 지지 그룹으로 명확하게 나뉘었다. '자주파' '평등파'라는 분류보다는 '당권파' '비당권파'로 분류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당 대표가 된 뒤 2006년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바람에 당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당무를 보는데, 최고위원회의에서 사사건건 부딪쳤다."

 

-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다는 것인지?

"최고위원이 12명이었다. 권영길 의원과 천영세 전 의원까지 당권파로 본다면, 3명은 비당권파로 볼 수 있었다. 당시 북한 핵실험이 터졌다. 당 강령은 '반핵'인데, 비당권파는 강령을 중심으로 '북핵실험'을 강력하게 규탄하는 성명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반면 당권파는 북이 미국의 정치경제적 공세 위협으로부터 자위권 발동 차원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주장이었다. 서로 격론을 벌였다. 합의가 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전국 시․도당 위원장까지 모여 확대간부 회의를 했고, 거기서 '강력한 유감 표명'이라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타협안을 중앙위원회의에 올렸는데, 당권파 측에서 '강력한 유감 표명은 안 된다'는 수정안을 냈고, 비당권파는 '강력한 규탄'이라는 수정안을 또 냈다. 최고위원회의에서 어렵게 봉합해 놓았는데 중앙위원회의에 가서 다시 터진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며, 정치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의원대회에 가면 또 불거질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당권파 측에서 좀 더 정치적 아량을 보였어야 했다는 생각을 한다. 중앙위 회의에서 당권파가 수정안을 안 냈으면 그냥 넘어 갔을지 모른다."

 

- 또 어떤 일이 있었나?

"2006년 10월 당시 당 사무부총장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터졌다. 구속되고 나서 임금이 지급됐는데, 비당권파 쪽에서 문제 삼고 나섰다. 당시 사무부총장은 정무직인데, 정무가 끝났으니 임금 지급도 중지해야 하고 지급한 임금도 몰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당권파는 사건이 조작되고 탄압이며, 동지가 탄압으로 구속되었으면 가족의 생계비는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기본적으로 정무직이지만 사퇴한 날로부터 임금 지급은 적절하지 않고 이미 지급한 임금을 몰수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절충안을 냈다. 대신 가족 생계 대책은 별도 방안으로 하자고 했다. 그런데 절충이 되지 않았다.

 

진보연대 가입 여부도 논란이었다. 이전에 경남도당 위원장을 하면서 진보연대 같은 대중조직과 함께하는 투쟁체제가 필요하다고 봤다. 당이 결합할 수 있는 큰 조직으로 진보연대를 봤다.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쉽게 동의하리라 봤는데, 역시 회의를 해보니 나뉘었다. 그래서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종북주의는 아니었다"

 

- 당권파-비당권파 갈등을 봉합할 수는 없었는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다 2007년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당 지지율이 떨어졌다. 2008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순번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가 하나의 관심거리였다. 1번은 장애인 여성, 2번은 비정규직으로 하자고 했다. 중앙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나와 식당에 갔는데, 비당권파의 중앙위원이 역정을 내더라. '다해 먹어라'고 했다. 그래서 당 대표를 하면서 한 쪽으로 치우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다. 비당권파 측에서는 1번도 당권파, 2번도 당권파, 3번도, 4번도 당권파로 가고, 당권파가 독식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더라. 당시 당 지지율로 볼 때 2004년 총선처럼 2008년 총선 때도 비례대표 8명이 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비당권파 입장에서는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중앙위원은 '오늘부터 민주노동당은 굿바이'라고 하더라. 그런 것을 보면서 같이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거기다가 2007년 대선 참패를 했다."

 

- '종북주의'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은데.

"비당권파에서 '종북주의'라고 비판했는데, 실제 그 말은 맞지 않다. 당 대표를 했지만 '종북'은 아니다. 당 사무부총장 사건이나 북핵실험은 서로 견해 차이다. 당시 당 안에서 '패권'을  제기했으면 당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나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종북'을 들고 나오니까 안 된 것이다. 당권파 입장에서는 소수를 고려한 운영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다수라고 해서 모든 것을 손들어 결정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민주적 패권'이지 민주주의는 아니다. 비당권파 입장에서는 서운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대선 참패에 대한 평가나 책임도 없이 바로 '종북주의'로 몰고 간 것이다."

 

- 당 대표 끝나고 정치 일선에서 떠나 시골에 가서 지낸 것으로 아는데.

"당 대표를 끝나고 나니, 2008년 총선인데 출마할 지역도 없었다. '창원갑'에 출마할 수도 있었지만 돈도 없었고,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당에 대한, 대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깨끗하게 자숙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정치는 나한테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 자신이 권영길 의원이나, 진보신당에 가 있는 노회찬 대표나 심상정 전 의원 같이 정치적으로 집요하지도, 적극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을 했다. 노동운동 현장에서 싸우고 징역 갔다 오는 게 '문성현답다'는 생각도 들더라. 대학 강의를 부탁할 이유도 없고, 노동운동을 했는데 그렇다고 기업 자문을 할 수도 없었다.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게 농촌에 가서 농사지으며 노후 준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분당으로 현장정치 활동 못 할 정도"

 

- 분당한 지 2년 정도 됐는데, 진보정당이 나뉘어져 있으니 어떤가?

"시골에서 2년 정도 지내다가 창원에 온 지 한 달 반 정도 지났다. 현장을 많이 다니고 있는데, '현장 정치'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전에는 당 대표로서 집회에 가면 노동조합이면 축사하는데 동의를 했다. 그런데 분당이 된 뒤부터 자유롭지 않다. 민주노동당 당원이 많거나 우호적인 조합원들이 있어도 그렇다. 그것은 분당이 원인이다. 현장정치 활동을 못할 정도다."

 

- 민주노총에서 통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분당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된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합당하라고 하는데 쉽지는 않다. 당만 나누어진 게 아니라 노동조합 내부도 갈라져 있다. 위원장 선거 할 때마다 정파로 나뉘어져 경쟁한다. 두 당과 동시에 민주노총 내부와 구조적으로 결합된 문제다. 복수노조 시대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가장 우려된다. 분당은 두 정당의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분리인 것이다. 민주적 통합을 해나가야 한다. '자주'와 '평등'의 기본 가치는 서로 배제된 것이 아니라 충분이 같이 해야 한다. 계급운동이나 통일운동이나 생각의 차이이며, 그 생각은 차이를 극복할 수 있고, 같이 못할 이유가 아닌 것이다."

 

- 진보진영 통합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제는 서로 다르더라도 같이 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모두 공멸할 것이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한 조직 안에 있어야 하고, 조직이 나누어져 있더라도 같이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당이 서로 다르더라도 같이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것이 진보진영 정당과 노동조합 모두한테 주어진 과제다. 분당된 상황에서, 서로 나뉘어져 있다 보면, 노동자들이 기본이 되는, 의미있는 정치 활동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무슨 일이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첫 번째가 노동현장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같이하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

 

- 분당된 상황에서 노동조합도 선거운동하기 갑갑할 텐데?

"같은 선거구에 진보진영 후보가 모두 출마했을 경우 노동조합에서는 선거운동 하기가 정말 난감할 것이다. 한 선거구에 후보가 많더라도 정당이 하나면 당 안에서 정리가 된다. 정당이 다르기에 조정이 불가능하다. 지금 노동현장에서는 하나로 해서 나오라는 요구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100%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능한 선거구부터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 정당은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대중들이 두 정당 모두한테 희망을 거두게 될 것이다. 전망이 없다고 할 것이다. 울산이든 창원이든 거제든, 아니면 서울의 어느 지역이든 후보 단일화를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은?

"이번 지방선거 전에 당대당 통합은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면 후보 연대만큼은 적극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함께 하지 않으면 당선 자체를 보장받을 수 없다. 선거는 당선이 목표다. 지방의원은 두 당에서 당선자가 나올지 모르지만, 단체장은 근본적으로 어디든 어려운데, 둘로 나누어지면 더 어렵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한나라당 이길 수 없다"

 

- 창원마산진해 통합시가 추진되어 이번 지방선거를 치른다고 보는지?

"주민투표 없이 지방의회 찬성의견만으로 행정구역 통합을 하고 있는데, 아직 국회에서 관련 법률이 처리되지 않았다.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주민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행정구역 통합은 반대한다는 게 당론인 것으로 안다.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적으로 처리될 것으로 본다. 지역사회는 통합에 대비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통합시의 체제나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대안을 놓고 논쟁이 치열할 것이라 본다."

 

- 지금 진보개혁진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연합 내지 선거연대, 후보단일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성사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는지?

"지방정부의 한나라당 독점 권력을 바꾸어야 한다. 서울에서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이 시민사회진영과 논의를 하고 있다. 중앙은 그렇게 하더라도 각 지역마다 저마다 처한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논의를 하고 있다. 모든 진보개혁진영의 후보를 하나로 묶는 모습으로 가야 한다. 최소한 단체장 선거는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선거비용도 건지기 어려운 상황이 될이지 모른다. 모인다면 '서민복지를 위한 연정'이다. 진보개혁진영이 하나로 합쳐야 하고, 서민복지를 위해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문성현 전 대표#민주노동당#진보정당 통합#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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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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