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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저녁은 조개가 들어간 미역국에 간단히 반찬 몇 가지를 꺼내 엄마, 아빠, 저 이렇게 셋이 먹었습니다. 밥을 먹다가 아빠가 '언니는 저녁 먹으러 안 온대?'라고 묻습니다. '오늘은 특식이 없잖아요.' 라고 제가 대답합니다.

어제 저녁은 오리 불고기였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언니와 24개월 된 조카가 와 있었습니다. 곧 엄마는 아빠가 사다놓으신 오리고기가 부엌에 있으니 구어먹자고 합니다. 언니가 프라이팬을 꺼내 오리고기를 굽습니다. 빨갛게 양념된 오리고기가 잘 익어갑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육식에 조금 망설이기도 했지만 엄마, 언니, 조카와 둘러앉아 오리고기를 먹습니다. 쫄깃쫄깃한 게 맛있습니다. 고기를 먹고 난 양념에는 밥을 비벼 먹습니다. 시원하게 동치미도 곁들입니다.

어느날 저녁으로 먹은 회
 어느날 저녁으로 먹은 회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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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저녁에 회를 먹었습니다. 일하고 집에 가니, 스티로폼 박스에 회가 한 가득입니다. 엄마는 상추를 씻고, 양념을 만들고 계셨지요. 아마, 그 전날도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언니는 저녁 먹으러 안 온대?". 결국 그 다음날 아빠는 회를 한 박스 사 오셨습니다. 그러고는 언니에게 전화를 합니다. "회 사왔으니 장서방이랑 와서 먹고 가라."  언니는 형부와 와서 회를 먹습니다. 물론 에스키모인 옷을 입은 귀여운 조카도 함께 오지요. 조카는 회 값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즐거움을 할아버지에게 주고 한참을 있다 돌아갑니다.

또 얼마 전에는 아빠가 엄마한테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직접 김밥 재료를 사올 테니, 집에서 김밥을 말아서 먹자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진짜로 김밥 재료를 사오셨습니다. 그 주 토요일 언니는 집으로 와서 어묵을 볶고, 달걀을 굽고, 시금치를 무쳤습니다. 그리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김밥을 먹었습니다. 그 사이 조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어지르고 책을 보기도 하고, 엄마 화장품을 만지고, 안 되는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안 되는 손짓으로 율동을 합니다.

어느날 저녁으로 먹은 김밥
 어느날 저녁으로 먹은 김밥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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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반 일정으로 잡힌 일 때문에 진주 부모님 댁에 와 있은 지 한 달이 되어갑니다. 그 동안, 언니네 식구와 참 자주 저녁을 먹었습니다. 어떤 날은 아빠가 돼지고기를 사오셨고, 어떤 날은 닭 튀김을 주문했고, 그리고 언니네 식구를 불렀습니다. 어떤 날은 다 같이 장어구이를 먹으러 갔고, 어떤 날은 또 뭘 먹었던가요.

어쩌면 아빠는 특식을 사면서 신이 나시는지도 모릅니다. 귀여운 손녀딸을 볼 수 있으니까요. 한 달 전 집에 내려왔을 때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이어지는 육식에, 저녁이 부담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저녁이 할아버지의 손녀 사랑 때문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아빠는 첫 손녀딸이 정말 좋은가 봅니다. 조카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니까요. 그 무뚝뚝한 아빠가 환한 웃음을 짓고, 두꺼운 옷으로 꽁꽁 싸서 업어주고, 그리고 압권은 아빠가 조카와 함께 앉아 '뽀로로'를 본다는 사실입니다.

손녀를 바라보는 아빠의 미소
 손녀를 바라보는 아빠의 미소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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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다들 어려워하는 아빠에게 손녀가 아니면 누가 장난감 청진기를 배에 가져다 대고, 조막막한 손으로 안마를 해주고, 옆에 기대앉아서 장난을 치고,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배꼽인사를 할까요. 아빠에게는 조카의 모든 것이 어쩌면 새로운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세상일 테지요. 뭘 해도 예쁘고, 울면 안쓰럽고, 이것저것 사다주고 싶고, 하루라도 안 보면 그 다음날 꼭 봐야하고…….

오늘 저녁, 아빠는 언니가 저녁을 먹으러 안 오는지 물었고, 저는 오늘은 특식이 없잖아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 내일 아빠는 또 다른 특식을 준비할지 모릅니다. 조카가 먹을 우유와 과자도 당연히 준비하고요. 손녀딸을 사랑하는 할아버지, 즉 우리 아빠 때문에, 정작 아빠의 둘째 딸은 이 겨울 살이 찌고, 아빠의 큰딸은 일주일에 서너 번 조카를 데리고 친정에 왔다 갔다 하느라 살이 찔 겨를이 없습니다.


태그:#조카,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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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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