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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세상의 낮은 곳을 살피며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도 스스로를 '바보'라고 책망하고,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며 자신의 사랑이 모자랐음을 부끄러워했던 당신."

 

이는 장혜민이 김수환 추기경의 잠언집 <바보가 바보들에게>를 엮으면서 첫머리에 쓴 글이다. 2009년 2월 16일 선종하기까지, 그 분은 종파를 초월하여 가장 많은 사랑을 베푼 분으로 그리고 환한 웃음과 유머까지도  넘친 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엮은이 장혜민은 그 분이 남긴 잠언들을 통해 많은 이들이 위로와 용기를 얻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품는다.

 

책에도 나온 내용이지만, 김수환 추기경이 한 번은 많은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몇몇 신부들이 추기경에게 몇 개 국어를 하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그때 추기경은 두 개 언어를 가장 잘 한다고 대답했단다. 신부들은 추기경의 독일 유학을 떠올리며, 독일어를 가장 잘 할 것이라고 꼽았단다. 또 다른 신부들은 영어를 제일 잘 할 것으로 이야기했단다.

 

그러자 추기경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자아내면서 그렇게 답을 주었다고 한다. "나는 두 가지 말을 잘 하는데 그게 뭐냐면 하는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참말이야."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정말로 추기경다운 명답임을 감지했고, 그것이 주는 교훈이 얼마나 큰 울림으로 남아 있는지, 지금까지도 새긴다고 한다.

 

또 어느 수도회의 서품식이 있던 날이었다고 한다. 추기경이 갓 서품을 받은 새 신부들에게 부모님을 모시고 제대 위로 올라오라고 했단다. 그 자리는 여러 신부들의 가족을 소개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 한 신부님의 가족사항을 잘못 기재했는지, 그 소개서에는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것으로 되어 있었단다.

 

그런데 그 제대 위에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단다. 이른바 그곳에는 그 신부의 아버지가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추기경은 그 소개서를 읽어나면서, 그 아버지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제치를 발휘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서품식에 너무 기뻐서 부활하여 오셨다." 그야말로 그 자리는 웃음의 도가니가 되었다고 한다.

 

"기도를 이해하려면 기도로써 무엇을 얻어내려는 마음을 버릴 때입니다. 한 시간이고 몇 분이고, 진정 내가 나를 하느님의 뜻에, 그 손에 완전히 내맡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로써 무엇을 얻어내자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어려움 중에서도 성취한 것 같은 자만심도 없어야 합니다. 더구나 누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아주기를 바라는 생각도 없애 버려야 합니다."(191쪽)

 

가톨릭 사제가 아닌 개신교 목사로서 나도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바친다. 개척교회 목사인 나는 무언가를 달라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같은 기도를 할 때가 많다. 함께 교회를 세울 사람도, 그리고 일을 할 수 있는 재정적인 여유도 위로부터 부어 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그것이 내 안에 들어 차 있는 또 다른 욕망의 통보임을 깨달을 때가 많다. 여전히 얕은 기도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밝혀주는 진정한 기도는 그래서 내 마음에 깊은 울림과 떨림을 전해준다. 기도는 버리는 마음이요, 기도는 하나님의 손에 내 맡기는 것이요, 기도는 무언가를 얻었어도 그 만족감과 자만심을 버리는 것이요, 기도는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조차도 지우는 것이요, 그런 기도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실한 기도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미 김수환 추기경은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간 분이다. 그렇지만 그 분이 남긴 거룩한 발자취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누구보다도 해맑은 영혼을 가진 '그 분, 그 바보'가 들려주는 잔잔한 잠언들을 통해 우리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적잖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보가 바보들에게 - 우리시대의 성자 김수환 추기경, 우리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는 잠언들

알퐁소(장혜민) 옮김, 김수환 글, 산호와진주(2009)


태그:#김수환 추기경,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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