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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조합설립을 추진하면서 조합원의 이름과 도장만 찍힌 동의서를 받은 뒤 사후에 필요한 내용을 기재하는 이른바 '백지 동의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6구역 주택재개발정비조합설립 추진위원회는 지난 2006년 12월 해운대구청에 조합설립인가신청을 냈고, 구청은 이듬해 1월 조합원수 328명 중 조합설립동의가 필요한 숫자인 80%를 갓 넘긴 동의자수 267명(동의율 81.4%)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해 주택재개발정비조합 설립을 인가했다.

그런데 이후 감정평가액과 시공업체 선정 과정 등에서 상당한 추가 비용문제가 발생하자 조합원들 간의 분쟁이 벌어졌다.

결국 당초 조합설립에 동의했던 조합원 80명이 조합설립 서면동의서에 도장을 찍어 줄 당시 '필요적 기재사항'이 누락된 이른바 '백지 동의서'였다며 조합설립인가처분의 무효를 확인하는 소송을 내며 법정분쟁으로 번졌다.

구 도시정비법 및 시행령은 조합설립인가를 위해서는 토지 등 소유자의 5분의 4 이상이 서면동의서에 의한 동의를 할 것을 요건으로 하면서 서면동의서에는 ▲ 건설되는 건축물의 설계의 개요 ▲ 건축물의 철거 및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개략적인 금액 ▲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 ▲ 사업완료 후의 소유권의 귀속에 관한 사항 ▲ 조합정관을 기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조합설립 추진위원회가 조합원들로부터 위와 같은 '필요적 기재사항'이 누락된 서면동의서를 받아 구청에 제출했는데, 서류에 하자가 있는 경우 보완을 명하거나 인가신청을 반려했어야 함에도 해운대구청은 그대로 인가신청을 허가한 것. 

조합설립 때 서면동의서를 받는 이유는 개별적으로 동의과정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경비를 절약하고, 특히 당사자들의 동의 여부를 명시적으로 확인해 향후 개발과정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 그동안 이 같이 '필요적 기재사항'이 빠진 서면동의서 즉 '백지 동의서'를 받아오던 관행이 이번에 제동이 걸린 것. 소송의 승패에 따라 조합은 처음부터 다시 설립 절차를 밟아야 하고, 시공사 역시 투자비용 등에 큰 타격을 입는 사건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과는 '백지 동의서'로 위임받아 조합을 설립한 조합 측의 완패.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패소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유사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1심부터 대법원까지 조합측 모두 완패

1심인 부산지법 제1행정부(재판장 황진효 부장판사)는 2008년 7월 이OO(73,여)씨 등 조합원 80명이 부산 우동 6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낸 재개발정비사업조합설립인가처분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재건축결의요건을 주택재개발사업에 도입하게 된 것은 조합원들로 하여금 주택재개발사업의 기본적인 내용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사업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동의서에는 기본적인 사항이 모두 기재돼야 하고, 그 흠결이나 누락이 있는 동의서는 하자 있는 동의서로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 사건 조합설립동의서는 모두 건축물의 설계개요, 건축물의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 등에 관한 사항이 누락된 상태에서 제출된 것이므로, 위와 같은 사항의 누락으로 인해 조합설립동의서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결과적으로 조합설립에 관한 동의자는 0명이고 동의율은 0%가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조합측이 항소했으나, 부산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박흥대 부장판사)는 지난해 1월 기각하고, 1심과 같이 조합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는 이 사건 인가처분 이전에 '필요적 기재사항'이 누락된 동의서에 대한 보완을 명하고 보완되지 않을 경우 조합설립인가신청을 반려했어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인가처분을 했으므로 하자가 있고, 이런 하자는 도시정비법 관련 규정에 정면으로 위반돼 인가처분은 무효"라고 판시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재개발조합설립이 무효라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재개발조합설립인가신청을 받은 행정청은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서에 구 도시정비법 시행령이 정하는 법정사항이 모두 포함돼 있는지, 동의서의 진정성에 관해서는 인영과 인감증명서의 인영이 동일한 것인지를 심사해야 하고, 그 어느 기준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는 동의서는 무효로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피고의 처분에는 재개발조합설립인가의 요건인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 내용에 관한 심사기준을 위반해 효력이 없는 동의를 유효한 것으로 처리한 위법이 있고,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결론을 내린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백지 동의서#재개발조합#서면동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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