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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철도노동조합 소속으로 지난해까지 무궁화호 기관사였던 김영훈 위원장은 이제 민주노총을 운전해야 한다. 올해는 공무원노조·전교조 수사, 노조법 개정투쟁 등 장애물이 산재해 있고 올 6월 지방선거까지 겹쳐 갈 길은 멀다. 이미 민주노총은 '위기'라는 진단도, '혁신'이라는 구호도 지겨울 정도로 몇 년째 침체되고 있다.

 

당선 다음날인 29일 오후 2시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기자들을 만난 김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수장으로 제가 준비됐는지 무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이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선거에서 맞섰던 허영구 후보에 비해 '온건파'로 알려진 김 위원장의 첫 숙제는 노조법 문제. 지난해 민주노총은 4월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김 위원장은 "그 난리통에도 못했는데 봄이 온다고 되겠냐, 80만 조합원이 다 하는 파업은 솔직히 거짓말이다"라고 회의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뻥파업'을 하지 말고 조직 역량대로 싸우자는 것이다.

 

지방선거와 관련, 반MB전선을 주장해온 김 위원장은 "민주당이나 보수정당에 (유리하게) 가지 못하도록 하는 게 민주노총의 역할"이라면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있지만 계급적 입장을 가지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냐"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렇게 지향하지만 80만 조합원이 다 민노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위기 극복 방안으로는 "연중 캠페인으로 국민들이 공감할 사회공공성 의제를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무총국이 좀 더 도전적이었으면 좋겠다, 대중적인 감이 부족하다"면서 조직 혁신을 강조했다. 칙칙하고 재미없는 민주노총이 풍부한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김영훈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과 한 인터뷰 일문일답 요약.

 

"뻥파업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싸우자"

 

- 선거기간 동안 통합지도부 논란이 있었다.

"(통합 후보를 내려는) 산별연맹의 노력은 유의미했고, 저도 초기에는 동의했다. 그런데 결론이 이상하게 났다. 불출마 선언을 뒤집고 앞으로 MB정권 3년을 어떻게 보낼 수 있나. '추한(추미애 환노위원장과 한나라당) 야합'을 비판할 수 없다. 임성규 전 위원장은 대의원대회에서 불출마 선언을 했고 언론에서도 이 같은 뜻을 2~3차례 밝혔다. 무슨 명분으로 뒤집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를 지지하지 않는 동지들의 마음을 읽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하겠다. 구체적 방법은 인선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겠다. 통합적 지도력은 두 가지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낮은 단위와 일상에서 소통해야 한다. 트위터나 블로그를 함으로써 (조합원들과) 통합하겠다. 또 하나 정파들에 호소해야 한다. 패거리적 악기능을 없애야 한다."

 

- 직접 트위터를 하고 있나.

"트위터는 안 하고 블로그를 한다.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데, 선거기간 동안 글을 올리는 게 힘들었다. 지역유세 끝나고 (손으로 술잔을 들이키는 시늉을 하며) 이거를 하니까 새벽에 일기를 썼다. 트위터는 아직 생각 못했다."

 

-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로 당장 노조법 대응이 시급하다.

"법에 있는 '건전한 노사관계'가 뭐냐. 그렇게 모호한 문구를 본 적이 없다. 근본적으로 명분이 없다. 그나마 (노사관계의) 혼란을 조정할 룰이라면 이해하는데…. 결국 다시 논의하고 개정해야 한다. 노개투(1996~19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에 버금가게 투쟁할 것이다.

 

근심위(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 참여할 거냐는 질문이 나오는데 지엽적인 문제다. 근심위가 대단히 근심스럽긴 한데, 교섭은 우리가 준비됐을 때 들어가는 것이다. 교섭 결렬을 상정하고 투쟁력을 배치해놓아야 한다. 기웃기웃 사진 찍으러 가진 않겠다."

 

- 4월 총파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지난해 그 난리통에도 파업 못했는데 봄이 온다고 되겠나. 칙칙한 생각이다. 4월 총파업은 솔직히 거짓말이다. 개념을 명확히 하자. 80만 조합원이 다 하는 총파업이 아니라 총력투쟁을 한다는 의미로 저는 이해하고 있다. 뻥파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해야 한다. 금속노조·철도노조처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총파업을 하고, 안 되면 집회만 하거나 돈이라도 내면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행주대첩 때 돌 나르는 사람도 있고 밥 짓는 사람도 있었다."

 

- 경찰 수사로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쪽 상황이 심각하다. 민주노총의 역할이 뭔가.

"정부의 탄압이 이성을 잃었다. 공무원노조·전교조·철도노조가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아까 정부 쪽에서 전화가 왔는데, 나보고 '대화를 중시하는 위원장님' 그러더라. 상황이 이런데 누굴 만나서 대화를 하냐. 총연맹이 책임지고 싸우겠다."

 

"서울시 공기업 노조들이 한나라당 심판해야 한다"

 

- 지방선거에서 '반MB전선'을 주장하는데, 이게 조합원들에게 실익이 될까.

"의석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보진영이 단결하니까 승리한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핵심이다. 도시철도노조에서 서울시장 선거에 개입하자는 여론이 높고, 공공부문에서 오세훈 시장의 재선을 바라는 노동자는 없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 노조들이 한목소리를 내서 공공성을 파괴하는 한나라당을 심판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이 크다.

 

(반MB전선이) 민주당이나 보수정당으로 가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게 못하도록 하는 게 민주노총의 역할이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있지만 계급적 입장을 가지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나. 원칙 없는 야합을 막을 수 없다."

 

-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노총을 '합리적 조정자'로 보긴 어렵지 않냐.

"그 방침은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이다. 그러나 80만 조합원이 다 민노당을 지지하나. 그건 우리가 지향하는 것일 뿐이다. 진보신당이나 국민참여당이 '너희는 민노당 편이라서 얘기 못한다'고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민노당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

 

- 민주노총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 생각인가.

"땅에 떨어진 권위를 되살리고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의 계급성을 확인해야 한다.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노동법이 악법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때문에 노동운동이 다 죽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노조에 전임자가 있나. 다 자기 돈 내고 한다. 80만 조합원을 뺀 미조직 노동자가 천지에 깔렸다. 이런데 총파업을 하면, (미조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이 우리 이익을 대변한다'고 하겠나.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싸울 것인가. 그런 의제를 선점하지 못했다. '민주노총' 하면 뭐가 떠오를까. 연중 캠페인으로 국민들이 공감할 사회공공성 의제를 던져야 한다. 많이 고민하고 있다. 정신 차리고 국민들과 같이 싸우겠다."

 

- 사무총국 혁신을 강조했고 '천하의 인재를 모시겠다'고도 했다.

"간부 혁신, 사무총국 혁신을 미룰 수 없다. (집행부) 인선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통합적 지도력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투표 이틀 전에 사이버토론을 했다. 그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활동가들의) 대중적인 감이 부족하다. 또 사무총국이 좀 더 도전적이었으면 좋겠다. 일부는 '활동가가 아니라 직장인 같아서 걱정'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직장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나. 어영부영하면 잘린다.

 

지위에 걸맞은 역할이 필요하다. 선배님들에게는 넓은 고민의 장을 열어드리고 싶다. 세상도 보고 머리도 식히고. 풍부한 상상력을 주문하고 싶다. 민주노총이 칙칙하잖아요. 재미없잖아. 이런데 아이디어가 나오겠냐. 세상을 좀 재미있게 보자는 것이다."

 

"성폭력보고서 채택 못하면 대의원대회 열 이유 없다"

 

-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성폭력사건 보고서가 결국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 지도부가 성폭력 사건 비대위로 출범했으면 그건 마무리해야 한다. 그런데 뭐한 거냐. 이 안건이 두 번 세 번 올라가는 것도 (피해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책임지고 대의원들을 설득해서 동의된 안을 올려야지, 그 고통을 누가 감당하나. 이 문제는 차기 대의원대회 1호 안건이다. 보고서 채택 못하면 대의원대회 열 이유가 없다."

 

- 어제 오늘 당선되고 나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이 뭔가.

"기쁘지 않았다고 하면 유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닌데 한편으로는…, (당선 당시) 제 표정 보셨겠지만 무거운 책임감이 들었다. 선거운동 기간 조합원들과 얘기하면서, 현장은 준비되어 있다고 확인했다. 그런데 80만 조합원의 수장으로 제가 준비됐나. 무거운 시간 보내고 있다. 많이 도와달라."


태그:#김영훈,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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