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행정구역 개편에 대해 "풀뿌리자치의 근간을 흔들고, 아무런 심사숙고 없이 추진하는 것"이라며 "6월 지방선거 때 국민들이 표로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정부는 마산-창원-진해, 성남-하남-광주의 행정구역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민투표 없이 지방의회의 '찬성의견'으로 통합을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지방의회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역에서는 아직도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마산-창원-진해 통합시의 경우 '통합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통합시 명칭과 시청사 위치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오는 7월 통합시가 출범하게 된다.

 

김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행정구역 통합 추진에 대해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참여정부 첫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행정구역 통폐합과 행정체제 개편을 검토했다.

 

2003년 장관으로 있으면서 경남을 방문했던 그는 연담 기능이 높았던 마산-창원-진해의 '통합' 내지 '준광역시'를 거론했던 적이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국정에 있어서는 야당이었지만, 경남에서는 국회의원과 도지사, 시장, 군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2003년 당시 김 전 장관의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은 '통합 반대'를 외쳤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후 한나라당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통합을 밀어붙였다.

 

행정구역 통합은 앞으로도 계속 다른 지역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마산-창원-진해, 성남-하남-광주지역에서 통합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속에, 김두관 전 장관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전체 그림이 나오고 난 뒤에 추진했더라면 갈팡질팡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 정책의 신뢰 문제이기도 하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003년엔 통합 반대하던 한나라당, 정권 바뀐 후엔 쌍수 들고 환영

 

다음은 28일 저녁 창원에서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다.

 

- 이명박 정부의 행정구역 통합 추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지방자치의 주체인 주민의견을 무시한다. 절차도 무시한다. 기초지방정부의 존폐에 관한 문제다. 그것은 당연히 지방자치시대에 주민들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주민투표법이 있다. 그 법을 만들 때, 고 노무현 대통령과 고건 전 총리로부터 '이르다'는 질책을 받으면서도 관철해서 만들었다. '제주특별자치도'도 주민투표로 결정했다. 청주시와 청원군 통합 문제가 있었는데, 주민투표에서 청주시는 찬성이 많았지만 청원군은 반대가 많아 부결되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행정구역 통폐합이나 지방정부 존폐는 주민의사를 물어야 한다."

 

- 지방의회가 결정했다.

"지금 행정안전부는 지방의회에서 과반수 찬성했다고 해서 밀어붙이고 있다. 물론 지방의회는 대의정치로 주민의 대표성이 있지만 주민들이 지방정부의 존폐를 결정하는 권한까지 위임한 것은 아니다."

 

- 이명박 정부의 행정구역 통합 추진 정책이 갈팡질팡하는 것 같은데?

"전국 230개 시·군·구 행정구역 개편과 기초·광역·중앙의 행정계층 축소는 연동된 문제다. 16개 광역지방정부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부터 나와야 한다. 여수-순천-광양-하동-남해를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니까 정부는 시·도 경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해서 그만두었고, 진주-산청 통합이나 마산-창원-진해에다 함안 통합 이야기가 나오니까 나중에는 국회의원 선거구를 쪼개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체 그림이 나오고 난 뒤에 추진했더라면 갈팡질팡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의 신뢰 문제이기도 하다."

 

- 이명박 정부는 처음에는 전국 47곳에서 행정구역 통합을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추진되는 곳은 마산-창원-진해와 성남-광주-하남뿐이다.

"경남 안에서도 20개 시·군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한 뒤에 해야 한다. 전국 47곳을 통합하겠다고 했지만 '마창진'도 억지로, '성남-광주-하남'도 야당 지방의원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한나라당 단독으로 결의한 것이다. 이것은 제도적으로, 민주주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 국민이 동의할 수 있나. 원칙과 상식에 너무 어긋난다.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주민 의사 묻지 않은 통합은 용납될 수 없어"

 

- 그래도 마산-창원-진해가 통합하면 도시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도시 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마창진'이 로봇산업이나 기계산업, 전자산업에다 진해의 항만물류까지 포함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도시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행정구역은 일정 정도 규모를 갖춰야 한다. 울산광역시가 1997년 경남의 21개 시·군에서 분리 승격되었다. 울산은 지금 많이 발전했다. 과연 울산이 경남의 한 시로 있었다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런 것처럼 '마창진' 통합도 긍정적인 면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참여자치'나 '풀뿌리자치' 측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마창진' 통합시를 제외한 경남의 다른 시·군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런 면을 고려하지 않고 하는 행정구역 통합은 졸속이다. 앞으로 여러 문제점을 많이 노출할 것이다. 주민의사를 묻지 않고 통합한 것에 대해 주민 입장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 참여정부 때 행정구역 개편 방향은?

"행정안전부는 과거 내무부와 총무처가 합쳐졌다. 광역·기초 지방정부가 삶의 질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도우미 부처'로 (행정안전부를) 만든다는 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지방행정을 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역지사지로 보면서 분권과 균형발전을 이끌 사람을 발탁하다 보니 제가 되었던 것이라 본다. 당시 지방자치학회나 행정학회에서도 방안이 많이 나왔다. 지금 행정구역은 길게 보면 갑오개혁 이후의 1부13도 체제에서 시작되어 조금씩 변화되어 왔다. 그 근간이 (만들어진 후) 100여 년 흘렀다. 당시 행정구역개편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는데, 장관이 바뀌면서 계속 진행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 2003년 참여정부 첫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경남을 방문했을 때 '마창진 통합'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는데?

"장관으로 있을 때 경남을 방문해서 '마창진' 통합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마창진'은 연담 기능이 좋은 도시다. 공설운동장만 봐도 이중삼중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로 공간으로 인한 기회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당시에는 하나로 묶어서 광역시 정도로 승격해서 경쟁력을 갖춘 '명품도시'로 만드는 구상을 했었다. 당시 참여정부가 국정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경남에선 야당이 국회의원과 시장을 맡았다. 그러다 보니, 진정성을 갖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 제안을 공격했던 기억이 난다."

 

- 이번 행정구역 통합은 이명박 대통령의 8.15경축사에서 시작됐다.

"진정성이 없다. 2009년 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행정구역 개편을 국정의 한 화두로 던졌다. 이 정부의 특징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물불 안 가리고 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때는 대통령이 무슨 안을 내면 참모나 장관들의 '안 됩니다' 의견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달곤 장관도 학자 출신이기에 잘 알 것이다. 무리하게 진행해서 국민의 심리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47곳에서 시·군·구를 통합하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2곳만, 그것도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하다 보니 그런 것이다. 이는 6월 지방선거에서 심판 받아야 한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 집권 2년 4개월 만에 치러지는 중간평가 성격이다. 어쨌든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심판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 풀뿌리자치의 근간을 흔들고, 아무런 심사숙고 없이 추진하는 것이기에 국민들이 표로 심판해야 한다."

 

"주민투표 요구해도 이명박 정부에서는 힘들 듯"

 

- 아직도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 정부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진해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으려고 했지만, 진해시청에서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상식이 없는 정부다. 이 정부에서 행정구역 통합을 내세워서 '마창진'이 유일하다시피 할 정도로 진행되었고 하나의 성과물처럼 되어 있는데, 주민을 배제한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 이 정부에서 '마창진 통합'은 진행되는 것 같은데,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의견을 보탠다면?

"인구 100만 규모로, 통합시가 국제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통합시는 중국 상하이나 일본의 여러 도시와 경쟁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경남의 다른 시·군과 균형발전하는 방안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 도시가 커지면 특정 지역에 쏠림 현상을 막아야 하고, 특색을 살려 각 지점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통합시 안에서도 균형발전이 되도록 해야 한다."

 

- 지금은 통합시의 명칭이나 청사 위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심이 높은데.

"통합시가 되면 행정조직 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5개 구(창원 2, 마산 2, 진해 1)로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이 갖는 브랜드가 중요하다. 옛 삼천포와 남해 창선 사이에 연륙교를 놓았을 때 이름을 '이순신대교'로 하자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통합시 명칭에 대해 여러 안이 나오는 것 같던데, 딱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시민 공모와 전문가 자문 등의 과정을 거쳐 좋은 의견을 모으면 될 것이다. 통합시청사는 중심에 두는 것이 맞다. 창원에 있는 39사가 이전한다고 하는데, 그 자리도 좋을 것 같다. 기존 청사를 쓴다면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창원시청을 1청사로 두고 마산시청과 진해시청을 제2, 3청사로 할 수 있을 것이다."

 

- 참여정부 때 추진했던 세종시도 지방자치나 균형발전과 관련이 있는데, 최근 세종시 논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이명박 정부의 지방 무시 정책이다. 서울과 경남은 균형발전해야 한다. 경남과 서울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서울과 지방이 서로 '윈윈'해야 한다는 정책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규제 완화'며 '세종시 수정'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는 혁신도시며 기업도시, 지방에 대한 무시로 가는 정책이다. 다 연결되어 있다. 이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하면 인력과 돈, 고급 정보들이 모두 서울로 몰릴 것이다. 서울은 지금도 '수도권 집중화'로 따지면 세계 최고다. 국민을 갈라놓는 수도권 중심 정책을 폐기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나서야 한다. 국민이 숨을 쉴 수 없다. 국민의 마음을 너무 불편하게 만든다. 국가권력기관이 너무 설쳐대는 것도 문제다. 공권력은 개인의 사병이 아니다."


태그:#김두관 전 장관, #행정자치부, #행정구역 통합, #마산창원진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