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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공광규(50)가 이야기를 삽화처럼 끼운 시론집 <이야기가 있는 시창작 수업>(화남)을 펴냈다
▲ 시인 공광규 시인 공광규(50)가 이야기를 삽화처럼 끼운 시론집 <이야기가 있는 시창작 수업>(화남)을 펴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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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다른 시인이 쓴 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스스로 쓴 시는 이 거친 세상살이를 거울로 삼아 훌쩍훌쩍 흐느끼고 있고, 다른 시인이 쓴 시는 땡겨울에도 빨갛게 피어나는 동백꽃처럼 하하 호호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아니면 스스로 쓴 시가 훨씬 더 곱고 아름다워 보이고, 다른 시인이 쓴 시는 모가 나고 거칠어 보일까.  

여기 다른 시인이 쓴 시를 삽화처럼 이야기하는 시인이 있다. 그는 시야말로 인류가 남긴 으뜸 문화유산이며, 감성을 가득 채운 보물창고라고 말한다. 그는 사이버문화센터와 문예 아카데미,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 발품과 입품을 팔며 시를 끌어안는다. 시는 순수한 마음으로 만나야 하고 그 무엇을 알거나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훨씬 더 낫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공광규 시인이다. 시인 공광규는 어려운 이론이란 감옥에 갇혀 끙끙거리고 있는 시론이나 낱말을 이리저리 비틀고 구겨서 쓴 시를 깨뜨리기 위해 시와 시인에게 야유와 독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는 시와 예비시인에게 "모든 예술은 양생을 위한 것"이라며, 시가 고통스럽다는 등 엄살이나 겉멋을 부리지 말고 자연스럽고 즐겁게 받아들이라고 못 박는다.

그는 시와 시인, 좋은 시를 써서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 모두를 하나로 여긴다. 왜? 그들은 저마다 시를 통해 '함께 사는 세상'이자 '아름다운 삶'을 가꾸는 시 짓는 농사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은 시를 낳는 어머니이며, 이 세상살이는 시가 제대로 일어서서 걸어갈 수 있도록 길러주는 아버지이다.      

시는 사람이 가진 으뜸 문화유산

이 책은 시를 공부하고 있거나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문학교실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꼼꼼하게 다시 갈무리하여 엮은 쉽고 재미있는 시창작 안내서이다
▲ 시인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창작 수업> 이 책은 시를 공부하고 있거나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문학교실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꼼꼼하게 다시 갈무리하여 엮은 쉽고 재미있는 시창작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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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인류가 남긴 최고의 문화유산입니다. 감성의 보물창고인 시를 알거나 좋아하는 것을 넘어 놀면서 즐기기 바랍니다. 이 책을 책상만 고집하지 말고, 침상이나 식탁, 공장 쉼터, 여행지 등 아무데서나 펼쳐보며 공감과 조화의 힘을 키우고 상상력을 단련하기 바랍니다." -'책을 내며' 몇 토막

'놀랜 강' 등 9편으로 지난 해 제4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을 받은 시인 공광규(50)가 이야기를 삽화처럼 끼운 시론집 <이야기가 있는 시창작 수업>(화남)을 펴냈다. 이 책은 시를 공부하고 있거나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문학교실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꼼꼼하게 다시 갈무리하여 엮은 쉽고 재미있는 시창작 안내서이다.

제1부 '창작원리, 이론적 접근'과 제2부 '창작실천, 제재적 접근'이란 2가지 물줄기를 따라 사공이 시란 배를 움직이기 위해 이론이란 노로 천천히 젓듯 나아가고 있는 이 시론집은 모두 30주에 걸친 이론과 창작이 손뼉을 치고 있다. '동서양 시의 전통과 흐름', '상징, 뜻을 사물에 숨기자', '고백적 시 쓰기, 일터 이야기 쓰기' 등이 그것.

시인 공광규는 26일(화) 전화통화에서 "시는 창작능력을 지닌 전문 시인과 연구하는 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우리 선조들이 시 읽기와 쓰기를 교양으로 해 왔듯이 현대의 시 읽기와 쓰기도 교양으로 가능해야 한다"며 "이 책은 창조가 중시되는 감성의 시대에 고양서로 활용이 가능하도록 이야기를 삽화처럼 끼워 넣었다"고 말했다.

시는 왜 산문과 달리 행과 연을 가를까?

"시가 산문과 달리 행과 연을 가르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행과 연의 일정한 반복을 통하여 음악적 율동감을 고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음악적 반복의 효과, 즉 청각적 효과를 통한 정서적 환기를 조성하는 것이 시입니다... 산문시 역시 외형상으로는 행과 연이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내적 운율을 형성합니다."-43쪽, '운율의 전통' 몇 토막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공광규 시인. 이 책은 그동안 강의실 안과 밖에서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상 물었던 "시는 무엇이고, 어떻게 쓰는 겁니까?"에 대한 대답이자 메아리이다. 그는 이 책 곳곳에 한 시인이 쓴 시를 올려두고, 그 시에게 농을 걸기도 하고,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

그는 '진달래꽃'과 '산유화'를 끄집어내며 김소월 시를 장작개비처럼 쪼갠다. 김소월은 "반복을 통한 음악성 실현"이 "주요한 창작방법"이었다는 것이다. 김소월이 현대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대중적인 공감과 학문적 매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평이한 언어와 간결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울림"을 주는 것도 이 '반복' 효과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쓴 시 '소주병'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곁들인다. 시인이 말하는 소주병은 "아버지의 희생과 늙어서 소외된 아버지"이다. 값 싼 소주병과 그 소주를 마시며 힘겹고 고달픈 삶을 살았던 아버지. 이젠 텅 비어 아무렇게나 뒹구는 소주병이 곧 이 세상에서 버려져 잊혀져가고 있는 아버지라는 것이다.

아버지 나라를 섣불리 믿을 수 없나이다
         
"풍자는 사회비판을 목적으로 합니다. 사회적 의도가 있는 문학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풍자는 독자에게 웃음이나 통쾌함을 주는 만큼 대상에게는 상처를 줍니다. 풍자는 인간의 우행과 위선, 사회의 악덕과 부조리를 폭로하는데 주력합니다. 그러나 풍자의 궁극적 목적은 부정적 대상과 가치를 개선하고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는데 있습니다."-214쪽, '세태풍자' 몇 토막

그는 세태를 풍자하는 시 중 시인 김광규가 쓴 '묘비명'과 시인 황지우가 쓴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 시인 박남철이 쓴 '주기도문, 빌어먹을' 등을 은근슬쩍 들춘다. 김광규는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라며 시는커녕 소설조차 읽은 바 없는 사람들이 돈을 믿고 높은 자리에 오른 것과 유명한 문인이 묘비명을 썼다는 것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황지우는 "친구 누나의 벌어진 가랑이 /를 보자 나는 자지가 꼴렸다"에서 공중화장실 낙서를 시가 입는 옷으로 삼는다. 공광규는 이에 대해 "그는 기존 시 형식을 파괴한 낯설기와 비속한 내용의 드러냄이 독자에게 재미를 주고 있다"며 "풍자는 진지성과 가장 거리가 먼 문학형태"라고 쐐기를 박는다.

박남철은 "지금, 하늘에 계신다 해도 / 도와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 아버지의 나라를 우리 섣불리 믿을 수 없사오며"에서 하나님을 조롱한다. 공광규는 "패러디도 풍자의 대표적 기교이며, 원래의 작품을 모방하는 형식에서 상립되는 기교"라 말한다. 즉, 주기도문을 통해 신도 어쩔 수 없는 구제불능인 인간을 풍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가 이야기를 하고 노래 부르며 논다

"민중의 소난과 저항을 서술한 <남한강>을 읽어가다 보면 서경, 서사, 서정이 유기적으로 배합되는 가운데 민요나 무가 등 전통 민중시가와 공동체 놀이 등이 시의 진행과정에 효과적으로 수용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시에 나오는 인물들이 대립하며 갈등과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이 발견 됩니다."-330쪽, '신경림의 장편 서사시' 몇 토막

시인 신경림은 장편 서사시 <남한강>을 쓰게 된 까닭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 고장에 흩어져 있는 많은 얘기와 노래를 들으면서 자랐다. 시를 쓰게 되면서 이 얘기와 노래를 시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내 꿈"이었다고. 즉, <남한강>은 신경림이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와 노래가 주춧돌이었다는 것이다.

공광규는 "시인은 '서사시라는 서구적 개념의 문학형식을 무시'하였다고 하였으나 <남한강>은 당연히 민족과 민중의 고난에 찬 생활과 투쟁사를 이야기한 서사시"라고 말한다. 그는 "전통적 민중시가 양식의 수용은 서사시 <남한강>에서 자주 발견되며 어떤 경우는 시가의 원래 모습이 그대로 채용되기도 한다"고 썼다.

그렇다면 이야기에 노래와 놀이가 어떻게 섞일까. 신경림이 쓴 '새재'를 살펴보자. 이 시는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어기야디야'라는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 '황소떼'에서 놀이와 민요를 다룬다. 즉 이야기 속에 노래와 놀이가 자연스럽게 포옹하고 있는 것이다. 공광규는 "'새재'는 민중의 소망과 식민지 각축의 현실, 인물의 성격, 민중의 역동성이 민요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인류가 남긴 최고의 문화유산입니다
▲ 시인 공광규 시는 인류가 남긴 최고의 문화유산입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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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때리거나 꼬집지 말고 무조건 사랑하라 

시인 공광규가 쓴 <이야기가 있는 시창작 수업>은 딱딱한 이론이란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 그대로 시를 어루만지며 사랑하라고 말한다. 왜? 시를 때리고 꼬집으면 사람처럼 아프고 피멍이 들지만, 꼭꼭 숨겨둔 사랑하는 애인처럼 포근하게 품으면 그대로 다가와 촉촉한 입술을 맞추기 때문이다.  

시인이 쓴 이야기가 있는 시 이론서. 참으로 오랜만에 누구나 읽어도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제대로 된 시론집 한 권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더 많은 시와 시인들, 습작을 하고 있는 예비 시인들이 쓴 시들을 함께 다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다음 시론집에서 더 다루면 되니까.    

시인 공광규는 1960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충남 청양에서 자랐다. 1986년 월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으로 작품화동을 시작한 그는 시집으로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가 있다.

시론집으로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을 펴냈다. 1989년 제1회 신라문학대상, 2009년 제4회 윤동주상 문학대상을 받았다. 지금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편집위원과 계간 <불교문예>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 개정판

공광규 지음, 문학의전당(2013)


태그:#시인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창작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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