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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늦가을 겨울에 먹을 상추, 쑥갓 등 채소 몇 가지를 비닐하우스에 심었다. 그 전에도 했던 일이기에 노지 상추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 가족이 겨울나기는 문제없으리라고 여겼다. 따뜻한 날보다는 더디게 싹이 텄지만 기대에 부응하듯 채소들은 기운차게 자라주었다.

우리 가족만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다. 이웃들과 나누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었고 후배들에게도 뜯어가라는 생색을 낼 수도 있었다.

비닐하우스 한족에 심은 상추가 소담하게 자랐던 모습이다.
▲ 지난해12월 20일 상추밭 비닐하우스 한족에 심은 상추가 소담하게 자랐던 모습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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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 1월 초 한파가 지나간 이후 상추들의 모습이 이상해졌다. 노지 상추를 살폈더니 더 추운 곳에서도 성장이 더디긴 했지만 상추는 끄덕이 없었다. 병은 아닌 듯 싶었다. 땅이 약간 마른 듯 하여 물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에 갔더니 쌈 싸 먹을 크기의 잎이 얼어서 축 처져있었다. 다시 노지 상추를 봤으나 멀쩡했다.

며칠전 눈이 왔을 때 노지 상추의 모습. 크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싱싱하게 추위를 이기고 있었다.
▲ 눈속의 적상추 며칠전 눈이 왔을 때 노지 상추의 모습. 크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싱싱하게 추위를 이기고 있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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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인가! 노지 상추는 멀쩡한데 하우스 안에서 얼다니!

이럴 경우는 전문가에게 묻는 것이 상책이다. 상추를 전문적으로 재배하여 남광주 시장으로 내는 박영감을 찾았더니 "낮에는 따뜻한데 밤에 기온이 많이 내려가 얼었다. 하우스 안에 비닐 터널을 만들어 이중으로 보온을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낮에 하우스 안의 따뜻한 기온 때문에 긴장을 풀고 있던 상추들이 급격히 내려간 밤의 추위에 당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심한 일교차가 일차적인 원인이라는 말이었다.

일차적으로 몇 십 년 만의 폭설과 한파가 원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자연의 변화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큰 잎은 추위에 약한 탓인지 먼저 얼기 시작했다.
▲ 잎이 시든 상추 큰 잎은 추위에 약한 탓인지 먼저 얼기 시작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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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원인은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얕은 경험에 의지하여 상추는 하우스에만 심으면 산다는 잘못된 믿음이 화근이었다. 이제 겨우 3년차 되는 농부가 얼마든지 예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2년의 경험만으로 판단했으니 정확했을 것인가? "선무당이 사람 잡고 반 풍수 패가 망신한다"는 말이 딱 맞는 경우였다.

둘째, 자연의 변화는 심하여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혹독한 추위를 예상하지도 못하고 대비하지도 못한 점이 문제였다. 농사는 자연이 반을 짓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이들은 농사도 투기라는 말도 한다. 그만큼 인간의 힘만으로 안되는 것이 농사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개연성을 무시하고 이중 보온장치를 생각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실패는 자초한 셈이었다.

셋째, 그렇지 않아도 일교차가 커서 밤이면 혹한인데 내가 낮에 물을 준 것도 상추에게는 독약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위한다고 한 일이 결국 피해를 준 셈이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목숨은 순간에 가고 만다. 혹독한 추위 한 방에 목숨을 꺾었을 상추를 생각하며 내 무지를 탓할 뿐이다.  

유기농 농사는 실패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 하되 못 먹으면 할 수 없는 것" "조금 덜 먹더라도 오염되지 않는 농작물을 기르고 먹는 것"이라고 느긋하게 생각하고 산다. 아마 수익에 대한 부담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태풍, 가뭄, 홍수 등 천재지변으로 인해 목표했던 소득을 얻지 못하거나, 탄저병으로 고추농사를 망치는 것 등은 어쩔 수 없다고 접으면 되지만, 판단의 실수는 소중한 경험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마음에서 안타까움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 많던 상추는 어떻게 되었을까?
▲ 2010년 1월24일 상추밭 그 많던 상추는 어떻게 되었을까?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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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추밭은 참담하다. 시든 큰 입을 떼어냈더니 몽당 빗자루 꼴이다. 이웃과 나누기는커녕 우리 먹을거리도 부족할 지경이다. 상추 뜯으러 오겠다는 전화라도 있을까 싶어 걱정이다.

자연의 힘 앞에 무기력한 인간이라는 자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의 실수를 탓하며 가슴을 친들 또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농사는 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은 공장에서 물건을 찍을 수 있는 것처럼 되는 일도 아니다. 또 농사는 사람이 혼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항상 성공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새들에게 콩을 빼앗기기도 했고, 열무와 배추는 벌레들에게 희사했고, 막 익으려던 고추는 병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농약의 유혹을 뿌리친 것은 의도된 실패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실패의 결과는 사람의 몫일 수밖에 없다.

고작 텃밭 농사를, 그것도 소득보다는 즐거움 가운데서 건강을 찾고자 하는 일에 성공과 실패를 말하는 것이 주제넘은 일인지 모른다. 겨우 상추 몇 포기 잃고 큰 실패라도 되는 양 호들갑이냐는 비난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많건 적건 농사는 농사다. 그리고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실패가 안타까운 법이다. 그래도 나 한 사람의 피해로 끝났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작은 실패가 남긴 교훈을 다시 되새겨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 사는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상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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