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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홍준표 전 대표, 정두언 의원, 정몽준 대표(왼쪽부터)
한나라당 홍준표 전 대표, 정두언 의원, 정몽준 대표(왼쪽부터) ⓒ 권우성·남소연

역시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MB와 친이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선 주목할 발언은 홍준표 전 대표의 발언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표를 독불장군에 비유하면서 사실상 당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홍 전 대표의 이 발언은 박 전 대표의 위상은 고사하고, 알아서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친이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친이의 속내 '박근혜는 안 된다'

또 하나, 정두언 의원의 발언이다. 어떤 월간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단다. "민주당은 세종시 문제를 계속 끌고 가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극렬히 저항하는 것이고, 그런 구도 속에 박근혜 전 대표가 빠져들고 있다." 세종시로 민주당이 집권한다고? 소가 웃을 일이다. 그의 얕은 지적 수준은 각설하고, 그의 말은 결국 박 전대표가 민주당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적행위로 규정하는 것에 비하면 탈당권유는 차라리 점잖다 싶다.

누가 뭐래도 수렁에 빠진 한나라당을 건져 낸 사람이 박 전 대표다. 그런 그에게 이런 막 소리를 내뱉는 걸 보면, 친이가 얼마나 박 전 대표를 미워하는지 알 수 있다. 또 세종시 문제를 박 전 대표를 공격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 의원의 표현대로, DJP 연합 때문에 2번이나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이 한나라당이다.

정 의원의 논리는 이런 것이다. 'DJ가 JP라는 인물을 끌어들여 호남+충청연합을 이뤘다면, 노무현은 행정수도라는 정책을 통해 그것을 이뤘다. 그것 때문에 졌는데, 여당의 후보가 그것을 돕고 있다.' 2번의 대선 패배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다. 따라서 정 의원의 발언은 이런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박 전 대표에게 대한 애정을 희석시키려는 것이다.

정몽준 대표의 발언도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미생지신(尾生之信) 발언이다. 그가 이 말뜻을 제대로 알기나 하고 썼나 싶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미생은 약속 때문에 물에 빠져 죽었다. 정 대표가 이 고사를 인용한 이유는 융통성이 없는 고지식함의 어리석음, 원안 고수 입장의 잘못을 지적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맥락을 잘 살펴봐야 정 대표의 메시지가 제대로 읽힌다. '처음 약속만 믿고 있으면 결국 물에 빠져 죽는다', 바로 이것이 그가 하고 싶은 말이다. 요컨대 협박이다. 더 심하게는, 약속을 고집하면 물에 빠뜨리겠다는 몽니마저 느껴진다. 숨은 메시지는 또 있다. '어차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한 여인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 잊으라.' 다시 말하면, 국민들에게 박 전 대표를 잊으라는 권유다. 이런 게 바로 무의식적으로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프로이트식 말실수'(Freudian Slip·은연중에 속마음을 드러내는 실수)이다.

친이의 최근 발언들을 요약하면,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들은 '죽어도' 박 전 대표의 대세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세종시를 거론하는 이유는 박 전 대표가 누리고 있는 독보적 위상이나 대권주자로서의 우위를 흔들어놓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발언을 떠나, 친이가 박 전 대표를 설득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보이지 않는 행태를 보더라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종시 문제는 시작일 뿐!

 서울시장 후보 지지유세 도중 피습을 당했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2006년 5월 29일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퇴원한 뒤 곧바로 대전으로 내려가 후보 지원유세를 시작했다.
서울시장 후보 지지유세 도중 피습을 당했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2006년 5월 29일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퇴원한 뒤 곧바로 대전으로 내려가 후보 지원유세를 시작했다. ⓒ 장재완

친이가 박 전 대표의 위상과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해도 영남, 특히 TK와 충청에선 무리다. 이미 견고한 지지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수도권뿐이다. 지난 17대 대선의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 전 대표가 패배한 것은 수도권 때문이었다. 친이의 속셈은 박 전 대표가 수도권에 안착하지 못하도록 막고, 그 틈을 이용해 수도권에 기반을 두는 대항마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가능할까?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수도권에 기반을 가질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수도권이 지역 이기주의에 빠져서 세종시 원안 백지화에 찬성하더라도, 박 전 대표의 신뢰담론이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박 전대표를 비토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기 힘들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친이의 '박근혜 죽이기'는 성공하기 힘들다. 헛된 노력, 도로(徒勞)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어쩌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박 전 대표가 약속을 지키는 신뢰의 정치인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된다면 도리어 그의 위상을 공고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MB나 친이가 박 전 대표를 압박하는 동시에 지방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카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지방선거 투표일에 세종시 수정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도권 유권자들은 투표할 때 세종시 이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종시 이슈가 선거판의 핵심쟁점으로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지난 19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세종시 이슈는 수도권 여론이 여권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지지가 51.9%로 원안에 대한 지지 34.6%보다 훨씬 높다. 전국여론과 사뭇 다르다. 세종시와 관련해 정운찬 총리가 잘하고 있다는 평가도 서울에선 51.5%나 나왔다.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는 36.5%였는데, 이는 전국 평균과 정반대다. 전국 평균은 잘하고 있다가 37.0%, 잘못하고 있다가 52.5%였다.

세종시 문제가 지방선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전국적으로는 야당에 유리할 것이란 여론이 46.3%, 여당에 유리할 것이란 여론이 36.9%였다. 그런데 서울에선 정반대였다. 야당에 유리할 것이란 여론은 35.9%로 줄어들고, 여당에 유리할 것이란 여론은 45.5%로 늘어난 것이다. 여론의 흐름이 이렇다면 여권이 세종시 이슈를 중심으로 지방선거를 치르는 것에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있다. 충청권과 헌법 조문이다. 충청권 선거를 포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충남·충북·대전 등 충청권 세 권역의 세종시에 대한 태도는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 필요할 경우 한나라당은 뒤로 물러서는 이른바 '우회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예컨대, 여권과 가까운 심대평 의원을 내세우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72조는 이렇게 돼 있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세종시 문제가 과연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인지 여부에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디어법 등에 대한 여권의 태도를 보면, 어지간한 시비는 깡그리 뭉개고 가는 것이 보통 아니던가.

만약 이 프로젝트가 여의치 않다면, MB나 친이의 다음 카드는 개헌일 될 것이다. 이미 '스탠바이' 상태다. 물꼬만 터지면, 분권형 개헌은 대세가 될 것이다. 비록 불가피하게 박 전 대표를 막지 못하더라도 제도적으로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줄여, 나중에 겪게 될 고난의 정도를 좀 낮춰 보자는 방안이다.

이런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박 전 대표의 반대가 극에 달한 순간 MB가 전격적으로 세종시 수정 방침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선 개헌을 이야기한다면, 그때 또 박 전 대표가 결사반대할 수 있을까? 개헌수요에 대해서는, 분권형 개헌에 대해서는 누구도 거역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 만약 야당이 선거구제 변경을 조건으로 동의하고 나선다면, 개헌의 물살은 빨라질 것이다.

한심한 '거덜', 나쁜 '주인'

'나라가 거덜 난다.' 총리가 한 말이다. 조선시대에 사복시라는 관청이 있었다. 가마나 말을 관리하던 곳이다. 여기서 일하는 하인을 일러 '거덜'이라고 불렀다. 높은 사람이 행차할 때, '쉬~ 물렀거라'하는 소리를 외치며 길을 틔우던 사람이다. 거덜은 길잡이 역할에 그치지 않고 높은 사람의 권력을 빌려 온갖 못된 짓을 일삼았다. 이들의 횡포 때문에 생긴 말이 '거덜나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라가 거덜나게 생겼다. 국민통합이 거덜나고, 신뢰가 거덜나고, 균형발전이 거덜나고 있다. 알량한 벼슬 믿고 헛꿈 꾸며 설치는 정모(鄭某) 거덜 때문에 그렇다. 아니다. 정모라는 거덜의 탓이 아니다. 앞장 서 외치는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어차피 하인 아니던가. 원흉은 그 거덜을 시켜 행패를 부리도록 사주한 주인이다. 그가 바로 재앙의 뿌리, 화근(禍根)이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진 않겠지만, 그래도 사마천이 힘만 믿고 설치다 망한 항우에 대해 평가한 이야기를 경구로 들려주고자 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모든 일을 자신의 지혜로만 처리했고, 교훈을 얻고 배우려 하지 않았다."


#박근혜#한나라당#세종시#KSOI#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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