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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참 맹랑한 꼬마다. 여덟 살인 로다. 소풍을 갔다가 같은 반 남자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다. 전혀 슬픈 기색이 없는 로다를 보고 아파트 관리인이 비난을 한다. 친구가 죽었는데도 넌 슬프지 않느냐고. 로다의 답변은 아주 냉정하다.

"왜 슬퍼해야 해? 물에 빠져 죽은 건 클로드지, 내가 아닌 걸."

ⓒ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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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성격이 한순간에 확 드러난다. 아이는 클로드가 죽은 것에 관심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감정의 동요도 없다. 그러니 슬프지 않은 건 당연하다. 슬퍼하지 않는다고 아이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게 바로 이 아이라면? 자신의 행각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는 기색이라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는 태연하다. 이런 아이, 자라면 어떤 사람이 될까?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길어지겠지만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을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이들의 성향은 감정의 기복이 별로 없고 공격적이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연쇄살인범 중에 사이코패스가 많은 건 사람을 죽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사이코패스가 전부 연쇄살인범이 되는 건 아니다.

한국에도 사이코패스로 분류되는 연쇄살인범이 여럿 있다. 대부분 남자이며, 살인 대상은 주로 여자였다. 그래서인지 사이코패스는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남자, 라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 한데 <배드 시드>는 그런 편견을 확실하게 깬다.

고작 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살인을 저지른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아이가 하는 거짓말은 금세 드러나기 마련. 어른들은 아이의 거짓말을 눈치 채지만 아이의 순진함과 천진함을 믿는다. 설마, 여덟 살짜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 그것도 살인을? 아이는 어른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약자가 아닌가 말이다. 의혹은 쉽게 사라진다. 아이를 의심한 어른이 외려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린 연쇄살인범들 가운데 대다수는 어렸을 때부터 살인의 조짐을 보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유난히 잔혹한 일면을 거침없이 드러내지만 부모를 비롯한 누구도 아이의 악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설마, 그럴 리가 없어, 하면서 아이의 내면에 악마가 혹은 마성(魔性)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걸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의 행동을 선의로 해석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뒤따른다. 결국 아이는 자라서 세상을 놀라게 한다, 연쇄살인이라는 범죄를 통해서.

<배드 시드>는 이런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다. 여덟 살짜리 여자아이가 사이코패스란다. 이 아이, 참으로 특별하다. 자기가 할 일은 알아서 한다. 옷을 더럽히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고, 공부도 열심히 잘 한다. 어른들에게 인사도 잘하고 상냥해서 어른들도 좋아한다. 한국으로 치면 모범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데 욕심이 과하다.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손에 넣어야 한다. 아주 집요하다.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갖고야 만다. 죄의식, 당연히 없다. 이 아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아이의 범죄를 눈치 챈다. 내 아이가 살인범이라니, 그것도 한두 명을 죽인 게 아니다. 아이의 범행은 치밀하거나 계획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발적이지도 않다. 아이가 살인을 하는 장면을 목격한 아이의 엄마는 두렵다. 아이의 장래를 떠올리는 게 무섭다. 이런 경우, 아이의 엄마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이를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하나? 아니면 경찰에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고 아이를 사회에서 격리해야 하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내 아이가 사이코패스라고, 연쇄살인범이라고 고백을 하는 순간, 세상의 온갖 비난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에게 향할 것이다.

소설의 결말은 섬뜩하다. 어쩌면 세상은 착한 사람보다는 악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카인의 후예는 사라지지 않고 인류의 역사에 등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954년에 출간된 소설인데도 조금도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사이코패스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다면, 아니 사이코패스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나?


배드 시드 - 순수한 연쇄살인범의 탄생

윌리엄 마치 지음, 정탄 옮김, 책세상(2009)


태그:#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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