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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집은 자연 동굴이었는지 아니면 움집형태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북경 원인이 발견된 곳이나, 우리나라의 '검은모루동굴'로 볼 때는 자연 동굴이 맞다. 그렇지만 산이 없는 평지에서도 동굴 생활이 가능하였겠느냐는 의문이 들면 꼭 동굴이 우선이었다는 주장에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새들도 집을 짓고 동물들도 자기 은신처를 만드는 것을 볼 때 인류도 동굴, 움막 등 어떤 형태든 집에서 공동생활을 했으리라는 점을 추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때 집은 자연과 맹수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은신처였다고 보인다. 

이후 인류가 집단생활을 하면서 지역 혹은 기후 조건에 따라 집의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더욱이 정치적인 계급의 분화가 이루어지고 종교가 발달되면서 집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왕의 궁궐, 세도가의 기와집, 백성의 초가집, 그리고 불교의 사찰 등을 본다면 집의 과거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요즘도 집은 단순히 가족의 보호공간이요 휴식과 창조의 공간이라는 주거 개념을 넘어 권력과 부와 과시의 상징이 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고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는 집이 가진 기능의 왜곡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봄에 잡아둔 마당의 한 장면이다.
▲ 철쭉 필 무렵의 마당 지난 봄에 잡아둔 마당의 한 장면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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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에는 높은 집도 없었다. 결혼 무렵까지도 아직 아파트는 일반화된 주거 형태가 아니었다. 때문에 나로서는 집이라면 먼저 주택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혼 후 처음 마련한 집도 주택이었다. 융자를 받아 어렵게 마련한 집이었다. 마당이 있는 집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셋집을 전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내 자식들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다는 생각 때문에 저지른 일이었다.

처음 장만한 집에서 7년쯤 살았다. 그러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보니 3대가 살기에 집이 비좁다는 생각도 들었고, 마당이 좀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융자금을 겨우 갚을 무렵 다시 집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교육적인 관점에서 아이들의 학교가 가깝고 주변이 번잡하지 않은 조용한 주택단지, 풍수학적으로 나쁘지 않은 곳, 마당이 있고 남향에 동문(東門) 집이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나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집은 거의 없었다. 거기에 3대가 살아야하는 처지를 고려하고, 서재를 갖고 싶다는 욕심, 시장과 은행 등 편의 시설이 집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아파트를 주장하는 아내 때문에 지인들이 사는 아파트를 돌아다녔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이상스럽게 짓눌리는 느낌이 싫었고, 엘리베이터가 주는 단절감, 안으로 들어서면 낮은 천장이 숨 막히게 하고 밖을 보면 하늘에 떠있는 듯한 착각이 불안하게 만들어 도저히 마음을 붙일 수 없었다.

그해 봄 내내 퇴근 후에는 광주를 헤맸다. 자가용이 보급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택시비도 만만치 않게 쏟았다. 그리고 선택한 집이 현재의 주택이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주택은 아니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자식들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부근에 있고, 조용한 주택단지 안에 약간의 마당이 있다는 점 때문에 결정했던 집이었다. 1988년 7월 30일, 한 참 더울 때 우리는 이삿짐을 옮겼다.  그리고 23년째 살고 있다.

지난 여름 장독를 타고 오른 능소화 꽃이 아름다워 잡아 둔 장면이다.
▲ 능소화 지난 여름 장독를 타고 오른 능소화 꽃이 아름다워 잡아 둔 장면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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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택을 구입할 자금이었으면 광주에서는 대형 아파트를 구입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간 아파트 가격이 뛰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우리 집의 재산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아내로부터 '이재에 어두운 사람'이라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현재의 주택에 살았던 20여 년의 세월에 불만은 없다.

그동안 현재의 집에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애환은 쉽게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애환을 집, 혹은 집터와 결부시켜 주술적인 길흉화복으로 설명하는 것은 타당하고 합리적이지는 못할 것이다. 도시의 집에서 꼭 풍수학적인 배산임수를 따지는 것도 의미 없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집이란 사치나 과시의 대상이어서는 안 되며 건물의 크기나 외형을 따지는 것도 속물적인 발상이라는 점에서 경계한다.  집이란 가족에 맞는 크기에 가족이 편안하게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살 수 있는 곳, 개인적인 공간을 갖고 공부하거나 사색하며 쉴 수 있는 곳, 밖의 활동에서 쌓인 긴장감을 풀 수 있으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는 공간이라면 족할 것이다.

즉 생활이 있는 공간(HOUSE)이면서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는 홈(HOME)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호화스러운 집에 살아도 가족끼리 불화가 심하다면 그건 돼지우리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2009) 여름 얼마 전에 이제 나이도 먹었으니 시골에 집을 짓기 전까지 아파트로 가면 어떻겠느냐며 내가 먼저 서둔 적이 있었다. 마침 아내의 뜨락인 '숙지원'도 더 가깝고, 자연과 어우러진 단지도 마음에 들어 분양을 받을 계획을 세우면서 다시 집의 기능과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렇지만 수 십 번 아파트를 들여다보고 현재 주택과 비교하여 얻는 결론은 "시골에 집을 짓기 전까지 이대로가 좋다"였다.

우선 정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현재의 집값에 더 많은 돈을 얹어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었다. 두 아들을 혼인 시키려면 예식장비는 있어야하지 않겠느냐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
또 자식들이 결혼하여 분가한다면 어머니, 아내와 그리고 나만 남는데 현재의 집으로도 부족하지 않다는 판단도 했다. 더구나 자식들의 공부가 끝나면 전원주택을 지으려는 계획이 있는데 굳이 넓은 평수의 아파트가 당장 필요할 것이냐는 의문도 들었다. 베란다까지 확장해버린 실내 공간이 너무 답답하기만 했던 점도 나를 물러서게 했다.

마당이 있는 집!
마당은 여유의 공간이다. 마당은 개인이 조금만 노력하면 꽃과 나무를 가꾸어 사계절을 연출하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더러 화가 나거나 지칠 때 마당은 마음의 평화와 삶의 활력을 얻는 공간이다.  

우리 마당에도 수선화와 개나리, 철쭉, 장미, 능소화, 꽃무릇, 국화 등 봄부터 가을까지 쉼 없이 피고 진다. 넓지 않지만 잔디밭도 있어 앉아 쉬기도 하고 마당가에는 화분과 돌구유, 절구통 등을 두어 눈요기도 할 수 있다.  물론 마당이 없는 집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겠지만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마당에 앉아 듬성듬성한 도시의 별을 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주택은 허드레 물건이 쌓아 둘 창고가 있고 뒤안이 있는 집이다.  살다보면 얼마나 많은 허드레물건이 나오던가. 당장은 필요 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물건들, 조금은 눈에 거슬리는 물건들, 날마다 쌓이는 폐지를 여기저기에 감출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집이 주택이다.

우리처럼 텃밭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예초기를 숨겨두고, 거둔 농작물을 보관하고, 처마 밑에 줄을 치면 시래기를 말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주택 아니면 그런 공간을 찾을 수 없으리라.

핵가족 시대에 아파트가 생활에 편리한 곳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어떤 이들은 주택에 비해 사생활 보장과 방범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짓는 주택은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 배치에 단열과 보온 효과도 뛰어나다. 그리고 도시가스가 연결되고, 음식물 쓰레기도 대문 앞에 두면 수거해가고, 위 아래층 신경 쓸 일 없고, 방범은 용역회사에 맡기면 걱정이 없다. 수도에서는 정수장에서 바로 들어온 시원한 물이 쏟아지고 스위치만 올리면 따듯한 물이 콸콸 나오는 욕실이 있으니 주택이 불편하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물론 주택도 단점은 있다. 현재까지는 주택 선호도가 낮으니 아무래도 가격 상승 폭이 낮다. 때문에 재산증식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는 투자의 대상으로 매력이 없다.

그러나 집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건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가족이 몸을 의탁할 집 한 채라면 가격이 높고 낮은 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는 최근 몇 년간의 부동산 바람에 많은 걱정을 해왔다. 그러면서 서울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몇 10억을 호가 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계급이 강화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이 머리장식과 복장이 화려해진 것, 그런 사람들이 사는 집은 높이가 달라지고 호사스러운 장식을 더했다. 지배층의 사치가 심할수록 백성들은 그만큼 더 고달팠다는 말인데 결국 그 끝이 어떠했는가는 설명하고 싶지 않다.

이제 더 이상 불평등과 부조리를 감출 수 없는 사회다. 더구나 옛날처럼 계급을 인정하는 사회가 아니다. 법적으로는 평등 사회다. 그런데 가난한 서민들은 접근조차 할 수도 없는 수 십층 아파트 고급아파트가 밀림처럼 솟아있는 현실, 휴양지의 별장 등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경쟁적으로 솟아오르는 집과 고급스러운 숨은 별장들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이 도를 넘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성서의 바벨탑을 떠올리며 물신(物神)을 모시는 새로운 욕망의 종교를 보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오늘날 사회 불안의 큰 원인 한 가지도 집 때문임을 안다면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화려한 것은 꽃만이 아니다. 화분위에 내려앉은 눈은 가버린 날의 그리움과 봄날을 향한 기다림의 꽃이다.
▲ 마당의 겨울 화려한 것은 꽃만이 아니다. 화분위에 내려앉은 눈은 가버린 날의 그리움과 봄날을 향한 기다림의 꽃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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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작은 마당에서 나의 주택을 본다. 그리고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20년이 지난, 그래서 오는 봄이면 수리해야 할 곳도 많은 낡은 주택이다. 가족들의 영혼과 육신의 안식처가 되었던 집, 섣불리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가족들의 비망록(備忘錄)이 담겨 있는 집이다.

이제 더 이상 집이 욕망을 부채질 하는 투기의 대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점점 인간이 개별화 되고 대상화 되는 세상에서 집은 가족의 정을 모으며 살아야 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나아가 집이란 단절의 벽을 두른 가족들만의 토굴이아니라 이웃과 정을 나누는 근거지로서의 의미를 살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웃집 지붕을 비켜 거실로 들어온 겨울 햇살 한줌이 어른거리는 작은 마당에서 2010년에는 낮은 곳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집,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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