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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일요일에 가족과 함께 춘천을 갈 일이 생겼다. 지난 토요일에도 춘천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에 자가용을 포기하고 기차표를 샀다. 우리 집 자가용은 1992년산이다. 장거리거나 눈길에는 운행하기가 쉽지 않다. 사고를 미리 예방하겠다는 마음과 눈 온 산야를 기차를 타고 가보자는 생각에 마음도 살짝 들떴다.

 

기차표는 4시 30분 차였다. 정오가 조금 지나서 남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 자주 만난다. 같이 산행을 가잔다. 춘천을 가야 하는데 기차로 갈 거라니까 자기차로 함께 가잔다. 사실 옮길 짐도 있었고, 그 친구 차는 7인승 승합차여서 우리가 종종 신세를 진일도 있다. 기차표는 취소했다.

 

어린이대공원 후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큰딸을 태워야 했기에 내비게이션에 '어린이대공원'을 입력했다. 이제는 어느 집 차나 거의 내비게이션이 달려있다. 이것이 없을 때는 도대체 어떻게 운전들을 하고 다녔나 싶게 일단 차를 타면 그것부터 켜고 목적지를 입력하기 바쁘다.

 

그런 내비게이션이 오래된 우리 차에는 없다. 남편친구 차를 함께 타고 지방을 여행할 일이 있을 때면 내비게이션보다 오히려 남편이 지름길을 더 잘 알고 있다. 내비는 큰 길을 위주로 안내를 하기에 목적지를 입력해 놓고도 남편이 옆에서 내비와는 상관없이 방향을 이리 저리 바꾸라고 친구에게 알려줄 때가 많다.

 

대공원 정문을 목적지로 인식하고 있는 내비는 후문을 향하고 있는 우리에게 자꾸 몇 미터 앞에서 유턴을 하라는 어여쁜 아가씨 목소리의 멘트를 흘러 보낸다. 무시하고 후문에서 딸을 태우고 춘천을 가기위해 천호대교를 건너려고 하는데도 유턴하라는 멘트가 나온다. 다시 목적지를 춘천으로 입력을 했다. 내비에서 흘러나오는 멘트를 듣고 있자니 혼자 차를 타고 갈 때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로 뚫린 춘천고속도로는 제설작업이 잘 되어 있어서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심성 많은 친구는 달리지 않았다. 주행선이 아닌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고속도로를 잘 달리고 있는데 저 멀리 강촌국도로 빠지는 교통안내판이 보인다. 

 

"평소에 저 쪽 길로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내비게이션도 있고 하니 저리로 빠져볼까?"

"그러지 뭐, 쉬엄쉬엄 천천히 가지 뭐"

 

뒤에서 보자니 앞에서 남편과 친구는 그리로 빠질 생각을 맞추고 있다. 사실 운전을 못하는 나로서는 길에 대한 감각이 없다. 그냥 데려다 주는 대로 갈 뿐이다. 아무리 고속도로라도 어두워지면 노면이 얼 테고 그래서 어둡기 전에 춘천에 도착을 했으면 싶은데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는 국도로 가겠단다. 시간도 더 걸리고 혹시 눈길일 수도 있을 텐데 싶었지만, 뒤에 앉아 있던 나와 딸은 그냥 두 사람이 하는 대로 있었다.

 

춘천고속도로는 터널을 많이 지나가기에 주변의 경관을 볼 짬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국도는 논도 보고 산도 보고, 집도 보고, 사람도 보고.... 풍경이 눈에 쏙 들어오니 재미는 있다. 춘천고속도로를 입력하고 있던 내비는 갑자기 바뀐 항로에 잠시 주춤거리더니 다시 생기를 찾고 안내를 한다. 몇 미터 앞에 무엇이 있고, 몇 미터 앞에 우회전을 할 것인지 좌회전을 할 것인지 열심히 미리미리 길안내를 하고 있다. 

 

 

강촌으로 빠지는 국도는 도로가 온통 눈이었다. 제설작업을 한 것 같은데도 쌓인 눈은 물 눈이 되어서 차량의 바퀴에 붙어 질척이고 있었다. 길도 굽이굽이 좁은 산길이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이런 굽이진 산길을 얼마큼 돌아야 하나 하는 불안감이 든다. 옆에 앉아 있던 딸이 "왜 이런 길을 가야하는 거지?"하며 중얼거린다.

 

그렇게 20분쯤을 달렸을까 바로 앞에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은 '춘천, 강촌' 방향의 안내판이, 오른쪽은 '춘천, 팔봉산'의 안내판이 나온다.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내비게이션이 예쁜 목소리로 전방 몇 미터 앞에서 "우회전 하십시오"한다. 남편은 좌회전을 하란다. "애가 우회전하라는데?" 친구는 내비의 말을 들을 태세다.

 

남편도 처음 길이라서 강력하게 주장을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서로 우길 상황도 아니었다. 삼거리에 도달하고 보니 푸석푸석한 눈길이 아니라 반들반들 윤기 나도록 잘 길들여진 썰매 장 같은 도로가 양쪽으로 넘어가는 해의 마지막 꼬리를 붙잡고 반짝이며 펼쳐져 있었다. 길은 눈이 온 이래 한 번도 제설작업을 하지 않은 길이었다. 그만큼 차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잘 닦여진 고속도로가 있는데 반드시 이 길로만 가야하는 차들을 제외하고는 눈이 와서 위험할 수도 있는 국도를 굳이 택할 일이 없는 것이다.

 

 

결국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살살 우회전을 했다. 저 앞에서 조그만 2.5톤 트럭이 탈탈거리며 달려오고 있다. 그 트럭이 우리 차 옆으로 거의 다가왔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갑자기 우리 차가 트럭을 향해 미끄러진다. 그 트럭도 잠깐 찰나에 휘청한다. 우리 차와 부딪치기 일보직전에 재빨리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놀란 남편 친구가 얼른 핸들을 반대로 트는데 이미 미끄럼방지 제동이 풀린 차는 옆의 논바닥으로 굴러들어갈 태세다. 뒤에 앉아 있던 나와 딸은 손을 잡고 너무 놀라서 '어 어'소리 밖에는 못 내고 차가 빙글 도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대로 논으로 처박히는가 싶었다. 그나마 그곳은 좁은 이차선 길이 아닌 삼거리 길이라서 논 옆 공터에 조그만 건물(정신이 없어서 건물로 기억되는데 어쨌든 커다란 무엇이 있었다)이 서 있었고, 건물 바로 옆에 논으로 통하는 길가로 눈이 뭉쳐서 치워져 있었다.

 

차가 미끄러지면서 그곳에 앞바퀴가 박힌다. 그 바람에 논두렁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에 차가 멈췄다. 정신없는 두 남자도 아차 싶어서 그 길로는 도저히 갈 수 없음을 간파하고는 살살 유턴을 했다. 유턴을 할 수 있는 삼거리였기에 망정이지 그것도 할 수 없는 좁은 이차선 도로에서 미끄러졌다면 모두 황천 행 티켓을 예매할 뻔했다.

 

유턴을 해서는 남편은 자기 말대로 반대편 '춘천, 강촌'길로 가란다. 자기가 그 길을 조금 아니 괜찮을 거란다. 그러나 그 길도 바로 앞에 보이는 대로는 빙판으로 반질반질 윤기가 나고 있다. 운전을 한 남편 친구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나가 고속도로를 타잔다.

 

"아니, 이런 위험 때문에 차를 놔두고 기차로 오려고 했는데, 이런 길은 날 좋을 때 돌아보아야지 하필 이럴 때 모험 하냐고, 잘 가고 있던 고속도로에서 왜 벗어 나냐고욧!"

 

남편을 향해 뒤에서 냅다 소리를 질러 버렸다.

 

남편도 더 이상 주장을 못하고 친구가 하는 대로 따른다. 차를 돌리니 내비가 잠시 또 주춤거리더니 예의 그 상냥한 목소리로 제 할 일을 한다. 이럴 때는 내비게이션도 화난 목소리를 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살았다는 안도감이 컸나보다.

 

왔던 길을 굽이굽이 다시 돌아 나가는데 고속도로가 나오는 길까지의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던 두 남자는 묵언수행 하듯 한마디도 없이 긴장한 뒷모습을 보이며 한 사람은 운전하고 한 사람은 앉아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을 했고, 볼 일을 본 후에 저녁을 먹으려고 숯불 닭갈비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앞에 트럭을 보고 그 트럭을 보낸 후에 가려고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는데, 그렇게 홱 미끄 러 진거야, 만약에 막 달리다가 그랬으면 영락없이 논바닥에 쳐 박혔을 거다."

 

한숨 돌린 남편친구가 말한다.

 

빨갛게 타오르는 숯불위에서 닭갈비가 익어가는 냄새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삶의 현장에 아직 남아있다는 안도감 같은 그 냄새가 반가웠다.

 

올 해 유난히 많이 오고 있는 눈 때문에 생긴 아찔한 에피소드로 남편과 친구, 그리고 나는 함께 여행할 일이 생기면 오늘의 일을 계속 우려먹을 것 같다.


태그:#춘천고속도로, #춘천, 강촌 국도, #국도 빙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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