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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리허설 하는 것을 보고

심포지엄을 준비하는 일본 측 회원들
 심포지엄을 준비하는 일본 측 회원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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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나 시립역사박물관을 보고 우리는 심포지엄이 열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심포지엄은 오후 1시부터 열린다. 아직 2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그런데 일본 측에서 우리를 회의장인 호텔 별관으로 안내한다. 예행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회의장에 들어서니 일본 측 회원들이 심포지엄 준비에 한창이다. 입구에 접수대를 마련하고 발표논문집과 관련 책자를 판매한다.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니 컴퓨터와 스크린을 설치해 놓았다. 우리 측 발표자들이, 준비해간 USB를 꽂아 내용이 스크린에 제대로 투영되는지 시험을 해 본다. 모든 게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자 예행연습에 들어간다.

학술대회를 시작하기 직전의 모습
 학술대회를 시작하기 직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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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심포지엄의 주제는 "구마모토현 북부의 고대문화와 한반도"이다. 일본 측에서 두 사람, 한국 측에서 두 사람이 발표를 하기로 되어 있다. 일본 측 발표는 다카기 마사후미(髙木正文) 선생의 "장식고분에 대하여-기쿠치가와의 고분"와 니시다 도세이(西田道世) 선생의 "에다 후나야마 고분과 국제교류"이다. 한국 측 발표는 길경택 선생이 "충주지역 고분의 조사현황과 그 성과"와 김현길 선생의 "고대 한일관계와 고천원(高天原) 고지(故地)"이다.

기쿠치가와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구마모토현 북부를 동에서 서로 흐르는 강이다. 이 강변에 에다 후나야마 고분이 있다. 그리고 고천원 고지는 고천원 옛 땅으로<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지명이다. 고천원은 일본말로 다카마노하라라 불리는데, 그곳에 해의 신(日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 아마데라스 오미가미)이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쟁점이 된 사안들

니시다 선생
 니시다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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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길 선생
 김현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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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심포지엄에서 쟁점이 된 사안은 두 가지다. 첫째가 에다 후나야마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이 어디로부터 영향을 받았느냐 하는 점이다. 니시다 선생은 중국과 한반도 양쪽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고, 우리는 한반도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말한다. 둘째 쟁점이 된 사안은 고천원 고지가 어디냐 하는 문제다. 김현길 선생은 고천원을 경상도 고령군 고령읍 지산리로 보고 있다.

니시다 선생은 논문에서 세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첫째가 지방의 작은 고분에서 이렇게 많은 부장품이 나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둘째는 이 고분에 묻혀있는 피장자의 가문과 혈통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다. 그리고 셋째가 큰 칼(大刀)에 새겨진 은(銀) 상감(象嵌) 명문 "이 칼을 갖고 있는 자는 자자손손 영화를 누리고..."가 갖는 의미이다.

후나야마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제 귀걸이
 후나야마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제 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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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장식 귀걸이
 세 줄 장식 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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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다 선생은 중국과의 교류를 이야기하면서 후나야마 고분의 피장자가 당시 중국의 송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중국으로부터 구리거울(銅鏡)을 하사받았고, 그 물건이 고분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이다. 한반도와의 교류를 이야기하면서는 금동제 관모, 귀걸이와 신발 등이 백제 무령왕의 하사품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갑옷은 가야의 옥전고분 것과 유사함을 이야기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반도의 직접적인 영향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김현길 선생은 자신의 논문에서 <고사기(古事記)>를 인용, 일본의 천조대신이 손자인 경경오존을 큐슈의 구지후루다케(高千穗槵觸峰)로 내려 보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경경오존은 다음과 같이 고한다. "이 땅은 가라쿠니(韓國)를 향하고 있으니 가사사(笠沙)의 갑(岬)을 곧바로 지나서 아침 해가 바로 비치는 나라, 저녁 해가 쪼이는 나라다. 그러므로 매우 길한 땅이다."

5세기 한반도 지도
 5세기 한반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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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가라쿠니는 천손들의 옛 고향이 된다. 그리고 가라쿠니를 일본음으로 표기하면 가라국(加羅國)이 된다. 이를 근거로 김현길 선생은 고천원을 가야국에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일본의 학자인 마부치 가즈오(馬渕和夫) 교수가 고천원을 고령가야로 비정하여 그 장소를 더욱 구체화하였다는 것이다. 김현길 선생은 이를 받아들여 고천원을 현재 가야대학교가 있는 고령읍 지산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찬도 주도면밀하게

심포지엄은 계획대로 오후 5시에 끝났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사람은 큐슈 고고학회 회원과 지역의 학자들로 150명이 넘었다. 이들은 심포지엄이 끝날 때까지 거의 자리를 지켰다. 요즘 우리 학술대회를 보면 시작할 때는 100명 정도 있다가 끝날 때면 절반쯤 빠져나가는 것이 상례다. 이번 심포지엄을 보면서 느낀 게 많다. 심포지엄은 공부하는 곳이지 사교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참가비를 내면서까지 심포지엄에 참여해 공부하는 그들의 자세 역시 배워야겠다.

만찬장의 모습
 만찬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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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가 끝나고 30분 정도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우리는 관련 자료를 호텔방에 갖다 놓고 다시 간친회장(懇親會場)으로 간다. 간친회라면 일종의 파티로 학술대회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친교를 하는 자리다. 이 자리 역시 구마모토 일한문화교류회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크게 세 부류로 참석자를 분류하고 다섯 개의 테이블로 자리를 배치했다. 세 부류란 한국 충주의 예성문화연구회원, 일본 구마모토의 일한문화교류연구회원, 구마모토 지역의 초대 인사들이다. 다섯 개 테이블은 상석인 송(松)으로부터 죽매복록(竹梅福祿)으로 구분되어졌다.

우리 회원 6명 중 회장은 송 테이블에 배치되었고, 나머지 5명은 죽 테이블에 배치되었다. 송(松)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우리 측 어경선 회장, 일본 측 오쿠라 류지 회장 그리고 초대인사 3명이었다. 죽(竹) 테이블에는 우리 회원 5명과 일본 측 발표자 2명 그리고 일본 측 부회장이 앉았다. 물론 각각의 테이블에는 통역이 가능한 사람이 하나씩 배치되었다.

감사의 인사를 하는 우리 측 어경선 회장
 감사의 인사를 하는 우리 측 어경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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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는 양 단체 회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학술대회를 잘 마치게 되어 감사하다는 얘기, 초대를 해 줘서 고맙다는 얘기 또 참가해 줘서 고맙다는 얘기 등을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일본 측 회장인 오쿠라 선생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먼저 한국의 '아리랑'을 연주하고 이어서 자신이 작곡한 '기쿠치가와의 추억'을 연주했다. 오쿠라 선생은 원래 음악을 전공하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불교미술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구마모토현 야스시로(八代)시 박물관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어서 술이 한 순배 돌기 시작한다. 소주, 맥주, 양주 등 여러 가지 술이 있지만 우리는 일본의 사케를 선택한다. 어디를 여행하든지 그 지방의 음식과 술을 먹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시마즈 부회장이 개개 사케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 설명해준다. 사케라면 우리의 청주(淸酒)를 말하는데 우리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수가 높은 편이다. 술은 역시 사람들을 친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모두들 웃고 떠들며 친교를 나누는 것을 보면.

다마나 라멘의 추억

다마나 라멘의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들
 다마나 라멘의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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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끝내고 방에서 하루를 정리하려고 하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도리츠 상이 와서 아래층에 2차가 마련되었으니 내려오라는 것이다. 잠시 후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편안한 차림으로 벌써 대화가 한창이다. 일본측에서는 오쿠라 회장이 좌장이고 우리 측에서는 장준식 교수가 좌장이다.

대화는 학술적인 얘기부터 개인적인 얘기까지 다양하게 이어진다. 그런데 통역을 하는 나카가와 선생이나 아와타니 선생이 없으니 의사소통의 정확도는 떨어진다. 장준식 교수가 한중일 삼국의 교류와 방문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교류와 협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뜻으로 얘기를 한다. 그러자 모두들 이에 동감을 표시한다.

한 10시가 넘자 장준식 교수가 라면을 먹으러 나가자고 바람을 잡는다. 이렇게 늦게 장사를 하는 곳이 있을까? 그러나 오쿠라 회장이 앞장을 선다. 한 10분쯤 걸었을까? 옥룡(玉龍)이라는 상호의 라멘집이 나온다. 모두들 들어가 한 그릇씩 주문을 한다. 밤늦게 음식을 먹지 않는 나이지만 아주 맛있게 먹는다. 우리 라면과 다르게 기름기가 있고 첨가물이 있어 색다른 맛이다. 김치가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하고 장 교수가 아쉬워한다.

이곳 다마나 라면이 큐슈 지역에서 두 번째로 맛이 있다고 누군가 말한다. 그러면 어디가 첫 번째냐고 물어보니 구루메(久留米)라고 말한다. 구루메는 치쿠고가와(筑後川) 변에 있는 도시로 후쿠오카 현에 속해 있다. 또 이름에 쌀미자가 들어가니 미질이 좋아 라멘이 맛있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라면을 먹고 술에 적당하게 취해서 호텔로 돌아온다. 몇 가지 못한 일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이제 본 행사가 끝났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하기만 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11월13일 "덴보칸(天望館) 건축에서 느끼는 추미학(醜美學) ④ 다마나(玉名)시의 문화유산"에 이어지는 다섯 번째 기사다. 앞으로 2-3회 더 이어질 예정이다.



태그:#심포지엄, #일본 고대문화와 한반도, #에다 후나야마 고분, #고천원 고지, #다마나 라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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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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