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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는) 번식기인 봄부터 초여름까지 주로 애벌레를 잡아먹으며, 가을부터는 10마리 이내로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주로 풀씨를 먹는다. 겨울나기를 위하여 박새가 먹이를 저장한다는 것을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으나 동궐에서는 보지 못했다. 늦겨울 먹이를 찾지 못한 작은 박새가 쌓인 눈을 헤치고 나무의 꽃눈과 잎눈을 먹는 것을 보았는데, 한 가지의 꽃눈과 잎눈을 모조리 따먹지 않고 다른 가지로 옮겨가 하나씩 따먹었다. 봄이 가까워 나무에 물이 오르면 단풍나무에 구멍을 뚫어 수액을 먹기도 한다.  -<동궐의 우리 새> 박새 편에서


<동궐의 우리 새> 겉그림
 <동궐의 우리 새> 겉그림
ⓒ 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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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의 우리 새>(눌와 펴냄)에서 만난 박새의 먹이 이야기는, 책을 덮고서도 딱히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설렘으로 자꾸 떠오르곤 한다. 작은 박새 한마리가 먹이를 찾아 포르르 나뭇가지들을 옮겨 다니는 모습까지 연상되면서.

한 가지에서 배를 채우지 않고 좀 귀찮아도 다른 가지로 옮겨 다니며 아주 조금 배를 채우는 박새의 이런 배려가 없다면, 일방적으로 당하는 식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한해를 박새에게 몽땅 빼앗길 터이니 말이다. 두곰두곰 기억할 이야기다.

박새는 아주 흔한 텃새로 박새류 중 가장 많다. 참새와 함께 사계절 내내 우리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뺨 부분이 하얗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백협조'라고 불렀단다. '비죽새'라고도 불렀다. 멱에서 배로 이어지는 굵은 넥타이 비슷한 검은 무늬가 있다.

역사와 문화의 공간 동궐에서 사는 우리 새들

<동궐의 우리 새>는 탐조 여행 안내서이다. 탐조 여행지는 우리에게 역사와 문화의 현장으로만 인식되기 십상인 창경궁과 창덕궁, 그리고 종묘.

창경궁 춘당지에는 원앙·청둥오리·흰뺨검둥오리가 같이 번식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이 치열하다. 주로 암컷이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고, 수컷이 이들을 보호한다. 2006년 5월 16일에는 청둥오리 가족과 흰뺨검둥오리 가족이 마주치면서 수컷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35초 정도 진행된 첫 싸움에서는 무승부로 끝났지만, 얼마 뒤 벌어진 두 번째 싸움에서 청둥오리 수컷이 승리했고 흰뺨검둥오리 수컷은 달아났다. 그 후로 흰뺨검둥오리 수컷은 여름 내내 보이지 않았고, 흰뺨검둥오리 암컷 혼자 새끼들을 길렀다 -창경궁 춘당지 청둥오리의 '영역다툼'중에서

청둥오리 수컷과 흰뺨검둥오리 수컷의 영역 싸움
 청둥오리 수컷과 흰뺨검둥오리 수컷의 영역 싸움
ⓒ 장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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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위)를 쫒아내고 있는 어미 흰뺨검둥오리
 왜가리(위)를 쫒아내고 있는 어미 흰뺨검둥오리
ⓒ 장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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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벌어지는 듯한 장면이 연상되어 빙긋 웃으며 읽은 부분이다. '한순간 눈에 거슬려 여름 내내 혼자 새끼들을 길러야만 했던 흰뺨검둥오리 아줌마는 여름 내내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존심이 꺾일 대로 꺾여 집을 나간 흰뺨검둥오리 수컷은 돌아오긴 돌아왔을까?' 이와 같은 생각까지 하면서.

청둥오리의 영역 다툼이야기 못지않게 흥미롭게 읽은 것은 창경궁의 까치 이야기. 창경궁 까치는 낯선 새가 나타나면 공격을 해 죽일 만큼 치열한데, 함께 살기 때문에 낯익은 왜가리는 그냥 두지만 어느 날 날아든 낯선 왜가리는 어떻게든 내쫓을 만큼 영리하단다.

-'까마귀 날아가듯(as the crow flies)'이라는 영어표현이 있는데, 이는 '일직선으로', '가장 가까운 길로'라는 뜻으로, 곁눈질 하지 않고 목적한 곳을 향해 직선으로 나는 까마귀의 비행습관에서 나온 말이다. -큰부리까마귀편

-창덕궁 낙선재 남쪽 정원에서는 오색딱다구리 1마리가 나무 틈새에 살구 씨를 끼워 고정시킨 뒤 그것을 깨뜨려 속을 파먹는 것을 관찰하였는데, 정원 바닥에는 오색딱다구리가 먹고 버린 빈 껍질이 즐비했다-열매채취와 수액 먹기 편에서

저자의 이런 새 이야기는 썩 재미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조류학을 공부한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류학자 원병오가 이 책을 감수, "지은이 장석신은 아마추어지만 이미 훌륭한 조류학자이다.…"라고 할 만큼 새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다.

7년간 동궐에 1200번, 30만장에서 엄선한 600장의 생태사진

책 서문에 그는 '2002년 봄 창경궁에서 쇠딱다구리를 우연히 만난 후 궁궐의 새에 관심을  갖기 시작, 그 후 새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며 2009년까지 9월까지 7년여 동안 새를 찾아 1200차례나 궁궐을 찾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새들은 텃새 30종·여름새 28종·겨울새 20종·나그네새 21종·길잃은새 1종 등 자그마치 100종. 저자는 이들 새들의 전체생김새부터 다른 새들과의 구별법은 물론 먹이나 영역다툼, 구애나 짝짓기 등 한 종류 새를 둘러싼 지식과 상식을 맘껏 풀어 놨다. 또한 어디에 가면 어떤 새들을 만날 수 있는지를 7년의 관찰과정과 기록을 통해 알려준다.

박새
 박새
ⓒ 장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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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롱이(천연기념물 제323-8호)
 황조롱이(천연기념물 제323-8호)
ⓒ 장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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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새
 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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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까막딱따구리(제242호), 소쩍새(제324-6호), 붉은배새매(제323-2호),참매(제323-1호),솔부엉이(제324-4호),원앙(제327호),황조롱이(제323-8호) 등과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보호종인 큰기러기와 말똥가리 등의 생태까지 만날 수 있다.

책에 수록된 사진은 600여장. 저자가 7년 동안 찍은 30만장 중에서 엄선한 것들이라고 한다. 수컷과 암컷, 어미새와 새끼새, 여름깃과 겨울깃 등의 사진은 물론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 구애 장면과 짝짓기 등 한 종류 새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사진들이다.

한마디로 저자의 검질긴 노력과 열정이 담뿍 느껴지는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백과사전들이 이처럼 재미있으면 우리의 자연 생태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지리라. 자연과학 분야 독자들이 훨씬 많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어 본 책이기도 하다.

-참새소리처럼 빠르고 짧게 지저귀기 때문에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 말 많은 사람을 촉새에 빗대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경망스럽게 촐랑거리는 행동을 '까불기는 촉새 같다'고도 한다. 먹이로는 풀씨, 낟알, 곤충의 성충 및 유충 따위를 먹는다-촉새편

사족이다. 몇 년 전 일인데, 동틀 무렵마다 매일 창 가까이에 와 지저귀는 새들이 있었다. 이사를 온지 3년쯤 지나서야 매일 와서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매일, 혹은 며칠 간격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잠깐 지저귀다 가는 새도 있는가 하면 며칠 만에 한번 들러 꽤 오랫동안 지저귀다 가는 새가 있었던 것이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새들의 이런 만남을 몇 년 동안 소리로만 느끼며 종종 우리들의 생활 한 부분을 떠올리기도 했다. 매일 잠깐이라도 들러 수다를 풀어놓고 휭 가버리는 수다쟁이 아줌마 같은 새도 있고 며칠에 한 번씩 들러 차 한 잔과 함께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새들의 만남이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촉새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몇 년 전 아침마다 나타나 귀가 따가우리만치 수다를 정신없이 늘어놓고 가버리는 수다쟁이 새가 생각났다. 말 많고 촐랑대는 사람을 빗대는 촉새가 설마 있으랴 싶었는데 정말 있단다. 촉새를 이 책에서 처음으로 봤다. 앙증맞다. 참새목 멧새과에 속하는 나그네새로 길이는 대략 16cm, 번식은 5월부터 7월까지란다.

탐조여행은 가볍고 쉽다

먹이를 먹고 있는 직박구리(위에서부터 차례로 진달래꽃,산사나무,감,회화나무 열매)
 먹이를 먹고 있는 직박구리(위에서부터 차례로 진달래꽃,산사나무,감,회화나무 열매)
ⓒ 장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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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의아했다. <동궐의 우리 새>란 제목도 제목이려니와 '창경궁· 창덕궁·종묘로 가볍게 떠나는 탐조여행의 든든한 안내서'란 부제 때문이다.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는 새라고 해봤자 비둘기나 참새, 까치 등처럼 흔한 새들이 대부분일거라, 굳이 탐조여행이라고 할 수 있으랴!'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의 이런 지레짐작과 탐조여행에 대한 인식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흔히들 탐조여행이라고 하면 작정하고 나가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것도 사람들의 생활터전과 다소 동떨어진 곳으로 비싼 장비들을 갖추고. 그러나 저자는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역사와 문화의 공간인 동궐에서 이처럼 의미 있는 탐조여행을 하고 있지 않은가!

딱다구리는 나무를 두드리는 것만으로 어떻게 벌레 있는 곳을 찾아낼까? 창경궁과 창덕궁, 그라고 종묘에는 어떤 새들이 살고 있을까? 새들의 알은 왜 타원형일까? 새들도 기지개를 켠다는데? 집짓기의 달인 오목눈이는 어떤 집을 지을까? 새에 대해 문외한인 나, 동궐로 탐조여행 떠나볼까? 신기하고 흥미로운,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 이야기가 풍성하다.

▲새끼에게 솔방울로 먹이 저장법을 가르치고 낯선 새로부터 궁궐을 지키기에 바쁜 까치 ▲ 곤충이나 나뭇잎, 깃털 등의 가짜미끼로 물고기를 유인하는 검은댕기해오라기 ▲얕은 물에서 사냥하는 왜가리가 수심이 깊은 춘당지에서 익힌 사냥 법 ▲이름에 얽힌 가슴 찡한 이야기가 있는 진홍가슴새 ▲새 점을 치는 데 사용할 만큼 사람과 친한 곤줄박이 ▲소설 <비밀의 화원>에서 주인공 메리가 열쇠를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울새 ▲구슬프게 우는 소리가 사람의 혼을 빼앗는다 하여 '혼새' 혹은 '저승새'로도 불리는 호랑지빠귀 ▲고사 성어 '어부지리(漁夫之利)의 주인공인 깝작도요(도요새) 등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덧붙이는 글 | 동궐의 우리 새|장석신 (지은이) | 원병오 (감수) | 눌와 | 2009-11-20|18000원



동궐의 우리 새

장석신 지음, 원병오 감수, 눌와(2009)


태그:#탐조여행, #창경궁, #창덕궁, #종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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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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