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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롭게 3집 [Sounds Good!]을 발매한 '페퍼톤스'
 이번에 새롭게 3집 [Sounds Good!]을 발매한 '페퍼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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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국내 음악 팬들 사이에서 일본의 '시부야계'라는 장르가 상당히 붐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물론 브리스톨 트립합이나 LA 메탈과 같이, 발상지를 기초로 한 음악적 장르들이 대게 그러하듯 그 음악적 폭을 좁혀 하나의 장르로 묶어내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일본 HMV 레코드 매장에서나 통용되던 시부야계 사운드라는 음악을 계기로, 일본음악이 국내에서 점점 확장을 거듭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빠르게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일본 음악시장이 국내에 완전히 오픈되기 전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일본음악 가운데 비교적 일본냄새가 적게 느껴지던 이 시부야계 사운드는, 그 감각적이고도 귀를 이끄는 훅으로 국내 팬들의 마음을 단 시간에 사로 잡았다. 국내에 회자되는 일본음악의 주류는, 비주얼 록 음악에서 이쪽 계열로 서서히 이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그쪽 계열음악이 가지는 특징인 일렉 사운드와 수반되는 비트. 아울러 대중적인 멜로디라인과 특유의 대중적인 코드진행은 국내 DJ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라디오나 클럽을 통해 여러 매체에서 울려 퍼졌고, 덕분에 국내의 대중들은 일본의 뮤지션들뿐 아니라 유럽의 일렉 음악까지 국내에 유입해 나갔다. 이러한 새로운 소리를 기대하는 수요는 갈 수록 늘어만 간 것이다. 그리고 팬들은 메이저를 떠나 국내에 자생하는 인디뮤지션들 사이에서도 그 답을 찾기 시작한다.

과거 달파란, 전자양을 비롯해, 캐스커(Casker), 아워멜츠(Hourmelts) 그리고 최근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나 하임(Haihim)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결국 이러한 대중들의 수요에 대한 공급의 결과다.

그 모습이 일렉 음악 쪽에 편중된 감이 없지 않아도, 한번 불이 붙은 대중의 수요를 커버하기 위해 훌륭한 인디뮤지션들은 이렇게 각자의 위치를 점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당시 90년대 말에 크게 유행했던 토와테이, FPM, 몬도그로소의 음악들은 그저 국내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마침내 팬들은 이런 세련된 사운드를 강렬한 록음악과 적절히 배합시켜 등장한 페퍼톤스(Peppertones)라는 팀의 음악과 조우하게 된다.

시부야계로 굳이 비교를 하자면 초기 코넬리우스(Cornelius)나 플리퍼스 기타(Flipper's Guitar)와 상당히 닮아 있었던 그들은, 분명 국내에선 쉽게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중들이 기대하던 수요는 이들의 음악을 통해 다른 길로 조금씩 충족되어 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페퍼톤스(Peppertones) 3집 <Sounds Good!>

페퍼톤스 3집 [Sounds Good!]
 페퍼톤스 3집 [Sound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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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톤스는 2003년에 결성된 신재평(기타)과 이장원(베이스) 두 명으로 이루어진 밴드다.

두 명 다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과 최근 멤버 중에 한 명인 이장원이 유명한 금융업계에 입사를 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러한 멤버들의 개인사나 프로필보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역시 그들의 음악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4년 그들의 EP 음반인 <A Preview>가 등장했을 때의 충격을 난 아직 기억한다. 그 충격이란 단순히 시부야계와 관련한 일련의 교집합적 일차적인 놀라움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음악은 단번에 퍼지기 시작했고 2005년  정규 1집인 <Colorful Express>의 발매 이후, 각종 미디어에서 그들의 음악이 CF나 프로그램을 통해 BGM으로 차용되는 일이나 선배 뮤지션들로부터 황홀한 찬사를 받는 일은 그들에게 너무나 흔한 일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그만큼 그들은 대단했다.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의 역할과 사운드를 완벽히 재현해 낸 것이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인 뉴-테라피 2인조 밴드나 페퍼토닉이라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이번 새롭게 발매된 그들의 정규 3집인 <Sounds Good!> 역시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음악적 기조를 충실히 따른다. 어쿠스틱, 현악, 그리고 일렉의 소리들이 더 더하고 뺄 수도 없을 정도로 음반 청취 내내 그토록 조화롭게 펼쳐진다.

아울러 2집 <New Standard>에서 시도했던 그들의 일련의 음악적 시도는 3집에서 약간 보정됐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보컬부분에서 페퍼톤스 정규멤버들의 목소리 대신 뎁(deb)과 이선을 비롯한 객원보컬의 비중이 커졌다는 점. 그리고 조금 더 어쿠스틱한 사운드로 회귀하며,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적 역할과 지향점에 그 비중을 강화한 점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2집에서 그들이 바라던 새로운 스탠더드의 구축은 3집까지 완벽하게 이전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대신 3집 <Sounds Good!>은 그 음반 타이틀답게 대중들 사이에 성공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음악들을 만들어 냈다. 사실 그 점은 이번 그들의 3집을 직접 들어본 사람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동의하고 말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만큼 81년생 동갑내기인 그들의 능력과 재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의미로 철저히 대중 지향적인 음반이기도 한 이 <Sounds Good!>은, 따라서 2집에 실린 'We Are Mad About Flumerides', 'Arabian Night' 같이 질주하는 비트의 트랙들이 존재하기 조금 힘들어진 음반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현재 추구하는 음악적 지향점이 더욱 명확히 들려온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지향점은 결국 당신과 내가 동시에 듣고 느낄 수 있는, 듣는 이들의 기쁨, 행복과 매우 닮아 있는 바로 그곳이다.  

그대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들의 음악은, 그렇게 듣는 이들의 감성에 맞춰져 있다.
 그들의 음악은, 그렇게 듣는 이들의 감성에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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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들은 그들의 뛰어난 음악적 역량만큼이나 이번 음반도 그러한 지향점에 충실히 도달해있다. 듣는 그대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의 노래에 당신이 힘을 낼 수 있다면 언제든 우리는 그 길을 가겠다는 어떠한 의지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그 의지는 면접관과 마주한 취업준비생의 다부진 결심보다는 예의 장난스럽고도 밝은 아이들의 걸음걸이처럼 하나하나 섬세하게 전해진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이 끝자락에 등장한 그들의 3집 <Sounds Good!>은, 그래서 루시드 폴(Lucid Fall)의 4집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과 함께 올해 인디씬의 끝과 시작을 이어주는 음반으로 부족함이 없다. 

겉멋 없이 순수하고도 단순한 마음으로 깨끗하게 들려주는 음악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음악적 재능과 결합하여 스피커에서 울려나올 때 우리는 그 노래가, 그 소리가 비로소 가슴에 닿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담백함은 자신의 공간에서 최고만을 외치는 소리들보다 훨씬 가치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페퍼톤스는 이번 음반을 통해 그러한 점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좋은 음악이란 것은 어쩌면 사실 이런 것이다.


태그:#페퍼톤스, #음반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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