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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경제연구소가 올 한해를 정리하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도보체험관광이 8위로 나왔다고 한다. 효율과 속도에 목을 맨 사람들이 이제는 느림과 전통과 문화와 성찰을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느림과 환경과 건강이 새로운 화두가 되어가는 이 시대에 이것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느리게 가는 것이리라. 도보는 이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길 문화 축제 세미나 장면
▲ 길 문화 축제 세미나 장면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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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이사장 : 신정일)가 주최한 <제4회 길 문화 축제>가 최명희 문학관과 한옥마을, 전주천 일대에서 벌어졌다. 세미나와 함께 열린 길 문화 축제에선 한벽당과 오목대, 한옥마을, 경기전 풍남문 객사, 전동 성당 답사 등과 '보부상놀이,' '상여놀이,' '풍물굿', '판소리 한 마당'이 펼쳐졌다. 날씨가 몹시 차가웠으나 행사 주인공들이 프로답게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아 감동을 주었다.

'차를 타는 것보다 느리게 걸으며 우리 국토를 다시 보아야 한다', '역사와 문화가 깃든 길을 따라 걸어보지 않고서 우리 국토를 사랑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를 만들었고, 길문화 축제는 그런 취지로 만든 것이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에서 펼치는 <길 문화축제>는 새로운 국토 사랑 법이자 문화 운동의 일환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로부터 출발했습니다. 2006년 처음 개최된 길 문화축제에서는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길을 문화재나 국립공원으로 지정 추진 운동'을 주창하여 그 이듬해 '구룡령 옛길,' '죽령 옛길,' '관갑천 잔도'를 비롯한 다섯 개의 지역이 명승지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길 위에서 일생을 보냈던 부보상을 재현해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와 함께 추진했던 운동이 11월 11일을 <길의 날>로 지정하는 운동입니다.

우리나라에는 365일에 걸쳐 수많은 날들이 있지만 길의 날은 없습니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에서는 11월 11일을 '길의 날'로 지정하여 이날 하루나 아니면 몇 시간은 자동차를 타지 않고 우리 국토를 걸으며 우리 국토를 이해하는 하루가 되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길인 삼남대로, 영남대로, 관동대로 등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삼남대로상에 길 박물관을 건립하며, 자동차 전용도로를 제외한 모든 길에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신정일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세미나로 진행된 1부는 신정일 이사장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전주에 어떤 길을 만들 것인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전주의 길은 어디인가

이에 대한 발제에서 첫 번째로 조선시대 6로인 '통영대로' 길과 조선시대 7로인 '삼남대로' 길이 대표적인 길이라고 했다. 6로인 '통영대로'는 서울에서 경상도 통영을 잇는 도로로 동작진을 지나 남태령을 넘어 과천에 이른다. 이어서 수원을 지나 천안에 이르고 공주와 은진(지금의 논산)을 지나 여산에 이른다. 이어 삼례와 전주, 오수, 남원, 함양, 산청 진주를 거쳐 통영으로 가는 길을 말한다.

7로인 '삼남대로'는 서울에서 삼례에 이르는 길은 같고, 전주, 태안, 정읍, 나주, 강진을 거쳐 해남의 이진항에서 제주의 조천관을 거쳐 관덕정에 이르는 길이다. 설명을 듣고 보니 서울에서 삼례까지 내려와 경상도와 전라도 양쪽으로 갈라지는 통영대로와 삼남대로, 이 두 길은 전국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신정일 이사장은 이 길을 복원하여 국가에서 진행하고 있는 천리 길 프로젝트에 부응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길로는 전주시 중인동에서 독배마을을 지나 청도재 넘어 귀신사에 이르고 금구와 원평을 지나 금산사 지나 배재를 넘어 중인리에 이르는 모악산 마실길을 들었다. 그는 모악산은 '어머니의 산'이라는 호칭에 맞게 수많은 종교사상이 잉태된 곳이라 했다. 진표울사의 미륵사상, 정여립의 대동사상, 원평 김덕명의 동학사상, 강증산의 화엄적 후천개벽사상 등 민족 민중사상의 집결지인 이곳에 마실길을 조성한다면 민족사상이나 기를 공부하는 사람들, 그리고 평지돌출의 산인 모악산의 정기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장거리 도보답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호남의 명찰인 금산사, 의상대사가 세운 화엄십찰 중 한 곳인 귀신사, 종교사상가인 강일순이 깨달음을 얻은 대원사, 진묵대사의 자취가 서린 수왕사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한 '모악산 마실길'은 접근성이 좋아 금세 도보답사의 명소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 길은 전주의 서쪽에 자리 잡은 서곡에서 황방산을 넘어 시인 기형도의 자취가 서린 서고사에 이르는 길을 들었다. 기형도 시인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서고사 가는 길, 그리고 서고사에서 일망무제로 펼쳐진 호남평야를 바라보는 것도 좋은 답사처라고 했다. '서고사 가는 길'은 "세상이라는 작은 접시 속에서 벗어나자마자 길을 잃는다"는 내용이 담긴 기형도의 짧은 기행의 기록문이라 한다.

네 번째로 원평에서 전주 국립박물관을 거쳐 삼천 거쳐 용머리 고개를 지나 풍남문에 이르는 길인 동학농민군의 진격로를 따라가는 역사길을 소개했다. 다섯 번째로 후백제를 창건한 견훤이 쌓았다는 남고산성(통일신라시대 석축산성으로 사적 294호 지정)은 역사가 서린 길이자 아름다운 도보답사길이라고 했다.

이어 삼천천을 따라가는 길, 전주천 길, 문화유산을 따라가는 한옥마을길, 만경강 길, 전주 덕진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전주 동물원과 건지산을 연결하는 길 등 10개의 길을 소개했다. 그의 말대로 그렇게 길이 만들어진다면 전주는 역사와 문화가 함께 숨 쉬는 더없이 아름다운 길의 도시가 될 것이다. 지금 도로는 온통 자동차 차지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길을 만든다는 것은 문화를 바꾸는 것이고 자동차가 아닌 사람이 길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어 사례발표로 춘천의 걷고 싶은 길을 디자인한 김동식(춘천분권 아카데미 원장) 교수가 아름답고 실용적인 춘천길을 소개했다. 좋은 길이란 안전해야 하며 언제나 가고 싶을 때는 밤이든 낮이든 사계절 어느 때든 갈 수 있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라 했다. 닭갈비로 유명한 춘천은 겨울연가 덕분에 춘천의 한 길이 그대로 일본에 만들어졌고, 촬영지를 직접 찾아와서 보고 가는 일본관광객도 늘었다고 한다. 모든 것은 역사와 주기가 있는데 그 예로 춘천은 겨울연가 덕분에 관광객이 높아졌다가 조류독감으로 하락했고 다시 경전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찾는 사람이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한옥마을 아름다운 기와 지붕들
▲ 한옥마을 아름다운 기와 지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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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한옥마을 7000m에 이르는 올레길을 걸어가다 한옥마을을 내려다보니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 길을 지나 오목대에 올랐다. 오목대는 전북기념물 제16호(1974년 지정)로 조선시대 왕실과 관련된 유적지이다. 태조의 5대조인 목조 이안사의 출생지로 알려진 곳으로, 오목대는 후에 조선을 세운 이성계 장군이 당시 군사를 이끌고 잠시 쉬어가던 장소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 유적지는 조선 왕조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가치 있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으리라.

오목대 이목대
▲ 오목대 이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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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주천
▲ 아름다운 전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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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통문화센터 마당에서부터 전주천을 걸으며 전통장례인 상여행렬 재현이 있었다. 억새꽃이 하얗게 핀 전주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길을 따라 걷는 길이 장례행렬보다 더 눈길을 빼앗을 정도였다. 보부상 행렬 재현, 전주의 전통인 떡과 팥죽나누기 행사는 참가자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국악 한 마당, 풍물굿은 추위 속에서도 흥을 돋구어내기에 충분했다.

장례행렬 전통장례행렬 재현
▲ 장례행렬 전통장례행렬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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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행렬 마무리
▲ 장례행렬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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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 재현 길 위에서 상권을 행사했던 보부상들
▲ 보부상 재현 길 위에서 상권을 행사했던 보부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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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과 팥죽 나누기 전주의 전통
▲ 떡과 팥죽 나누기 전주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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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한마당 공연
▲ 국악 한마당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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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홍살문
▲ 경기전 홍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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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보전 기념비
▲ 조선왕조실록 보전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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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전동 성당을 들렀다. 100년이 다 되어가는 성당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성지순례에서 만난 외국의 유명한 성당들처럼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경기전의 넓은 뜨락을 거닐면서,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의 풍남문을 지나면서 도심 한가운데서 고즈넉한 옛날을 음미할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 하기도 하고, 시간이 정지하는 듯 하기도 한 색다른 느낌이었다.

석양의 전동 성당  하얀 낮달과 함께
▲ 석양의 전동 성당 하얀 낮달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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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성당 내부
▲ 전동 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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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고도(古都)답게 역사와 문화가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전주에 있는 내내 과거로 돌아가 시간이 멈추어선 듯 그 기나긴 역사와 문화가 내 안에서 하루 종일 살아 있다가 지나갔다.


#길 문화 축제#도보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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