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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열공'중이다.
▲ 서강대 내 열람실 크리스마스 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열공'중이다.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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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도 '절간'처럼 조용한 곳, 도서관. 거리에 캐롤이 울리든 말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꼭 있다. 날씨 참 '구질구질'한 크리스마스 오후, 만날 애인이나 지킬 약속도 없이 빈둥대다 서강대 도서관으로 향했다. '축제' 같은 이 날에 몇 명이나 공부하러 나올까? 그 사람들, 대체 무슨 생각할까?

(왜 거기로 갔느냐, 왜 거기만 갔느냐 딴지걸지 말자. 하나뿐인 몸이 게을러터졌으니, 딱 한 곳 가자면 자타공인 '서강고등학교'가 적합하지 않나 판단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오늘도 미친 듯이 공부한다!

오후 네 시에만 120여 명. 70% 이상이 내년 초에 있을 행정고시, 사법고시, 회계사 및 공무원시험 준비생이다. 그 외엔 거의 제2외국어와 자격증을 위해 공부했다.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12월 중의 하루"요, "금요일"일 뿐. 공부할 게 많아 "놀아도 노는 게 아닐테니" 오히려 공부가 속편하다는 반응이다. 씁쓸하고 울적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하고 "사람 없어 좋다"는 거다.

Q. 크리스마스 같은 날 도서관 오면서 혹은 공부하면서 드는 생각이나 심정은?
A. 젊어서 놀면 늙어서 개고생한다?ㅋ / 먹고 살기 힘드네 / 내년엔 여기에 없었으면 / 불쌍(미리 좀 해놓을걸...) / 생각보다 많이 왔네요 / 오늘 공부한 것 중에서 시험이 나온다는 생각으로 뿌듯 / 뻘쭘하다 / 별 감흥 없는데...

이 사람들, 도서관에 오면 '뽕 뽑고' 간다. 쪽지 설문을 해봤더니 오늘 8시간 이상 공부하고 가겠단 사람이 46명 가운데 33명이었다. 70%가 넘는다. 5시간 미만은 4명이고 12~16시간 공부하고 가겠다는 이들도 1/3 이상인 16명이었다. (전문가들은 8시간 자고 8시간 놀고 8시간 일하라 했는데... 예수님, 이 사람들 너무 오래 공부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내년 크리스마스엔 "공부만 빼고 아무거나" 하겠다고 말하는 걸 보니 이들도 사람이다. 손종화 씨(27)처럼 "아마도 도서관 오지 않을까 싶다"며 덤덤히 답하는 이도 네 명 있긴 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연인과의 데이트, 여행, 집에서 TV보며 쉬기 등 올해와는 다른 크리스마스를 꿈꿨다.

"제겐 크리스마스가 특별하진 않아요. 어제 잠깐 광화문 갔는데, 다들 억지로 즐거운 척 하는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 연인들은 징징대고 달래고, 부모들은 아이 잃어버릴까 난리고... 내년엔 저도 나가서 즐거운 척 할지 모르지만, 시험이 코앞이니 오늘은 공부해야죠, 뭐. 내년에 시험 떨어지면 이번 크리스마스에 놀았다고 뻥치고요, 하하하"

이거 원 참. 크리스마스에 공부하러 나온 김정현 씨(25)의 솔직한 속내다.

도서관에 죽치면서 봐도 대한민국은 "빵꾸똥꾸"

서강대 내 24시간 열람실은 '수족관'으로 불린다. 유리로 된 열람실 출입문 너머로, 학생들이 수조 속 물고기처럼 늘 꼬물거린다는 것. 크리스마스고 뭐고 도서관에 '짱 박혀' 지내다보니,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고 했다.

"밝고 즐거운 사람이 없어요, 여긴. 웃을 일이 별로 없으니까. 뉴스를 봐도 짜증만 나고, 시간만 잡아먹어서 저는 인터넷을 아예 끊어버렸어요. 사회 문제에 등 돌리게 되죠... 그래도 두 전직 대통령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죄책감 같은 게 조금 들어서요, 시험 끝나면 사회에 관심 많이 가지려고요."

보통 아침 9시에 와서 자정에 집에 간다는 김수연 씨(22)의 말은 '사회에 관심 갖고 싶어도 내 코가 석자'라는 거다. 그럼에도 도서관에 앉아 사회를 보는 시각은 대체로 삐딱했다. 도서관의 사람들은 올 한해 대한민국을 두고 "빵꾸똥꾸", "막장", "back to the future!", "작년에 이어 개판", "멋대로 굴러 간다"며 혹평했다.

이명박 대통령에겐 "아... 좀... 제발...", "적당히 하세요"라는 의미 모호한 말부터, "청년들에게 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는 청년실업문제 해결 호소까지 다양한 주문이 있었다. "4대강은 쫌 아니에요. 애들 점심은 먹여야죠"라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도 하고 "국민 원망 안 듣고 편안히 눈감을 자신 있는지 묻고 싶다"고도 했다.  

Q. 이명박 대통령 혹은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웃고 삽시다, 쫌!! / 열심히 하세요. / 리더십을 보여주세요, 그래야 역사에 남지요. / 그 성격에 몽둥이 들고 국회로 좀 가서, 정리 좀 해주셨으면... /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사회, please. / 투표 좀 해라, 이 바보들아! / 전달될 가능성이 없으므로, No comment! 

공부방해할까 조심조심 돌린 설문지에 적힌 친절한(?) 답변들
▲ 쪽지 설문지 공부방해할까 조심조심 돌린 설문지에 적힌 친절한(?) 답변들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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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거둔 단'을 모두와 함께 하길

빨간 날에도 '열공'하는 이 사람들은 언젠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맡을지도 모른다. '눈물 흘리며 씨 뿌린' 이들이 '기쁨으로 거두는 단'은 비단 개인의 입신양명뿐 아니라 "답답하지 않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에도 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의실현을 위해" 공부한다는 닉네임 배짱이(34)의 말처럼.

어슬렁어슬렁 도서관을 나오는데 눈이 내렸다. 하느님의 은총과도 같은 눈이 도서관 앞뜰에도, 신촌 유흥가에도 흩날렸다. 그래, 어쨌든 메리 크리스마스다.


태그:#크리스마스 날 도서관 풍경, #열공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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