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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성탄의 빛이 온누리에 가득하길
▲ 성탄장식 성탄의 빛이 온누리에 가득하길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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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이 넘치는 도시의 거리나 성탄장식으로 번쩍이는 대형교회엔 성탄인사는 넘치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아기 예수의 의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악한 짓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거나 온갖 좋은 말로 포장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어떤 독재자도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라고 하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말이 얼마나 위선적인 말인지 알지 못하기에 자기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오질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선 고난 속에서 아우성치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자리에, 그 모든 억압의 사슬을 끊어버리기 위해 아기 예수는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현실에서 성탄의 의미는 그런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듯합니다.

말라비틀어져 땅에 떨어진채 겨울을 나고 있다. 소외된 자들의 삶을 보는듯 하다.
▲ 고추 말라비틀어져 땅에 떨어진채 겨울을 나고 있다. 소외된 자들의 삶을 보는듯 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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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아침, 고추밭에서 지난 가을 병들어 떨어져 말라버린 고추를 보았습니다.
저런 고추와도 같이 말라비틀어진 삶, 그래서 희망이라고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해 예수는 오셨는데,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저런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 관심이 있을까요?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교회와 교인들은 이제 그들의 삶을 저주받은 삶인 것처럼, 죄의 결과인 것처럼 말하는데 익숙합니다. 자신들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고백하며, 저들과 같지 않음에 감사하는 정도인 것이죠.

엄동설한 추위 속에도 여전히 새봄을 향한 몸짓은 멈추질 않는다.
▲ 초롱꽃 새싹 엄동설한 추위 속에도 여전히 새봄을 향한 몸짓은 멈추질 않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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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지나간 후에도 여전히 푸른 새싹을 봅니다.
이것이 희망의 징조일까, 이래서 절망해서는 안되는 것인가 싶어 푸른 싹을 찾아보니 겨울들판에도 초록생명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성탄예배를 마치고 황금연휴를 맞이한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느라 고속도로의 차들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뉴스가 들려옵니다. 그 시간, 조금은 텅빈 듯한 도심의 거리엔 여전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폐지를 줍는 이들이 리어카를 끌고 다닙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이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은 아니라지만, 성탄절이면 부자들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이 행복한 날이어야 하는데 어찌된 것인지 그들의 마음이 더 헛헛한 것입니다.

청미래덩굴의 붉은 열매, 하얀 겨울 숲이었다면 더 아름다웠으리라.
▲ 청미래덩굴 청미래덩굴의 붉은 열매, 하얀 겨울 숲이었다면 더 아름다웠으리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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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미래덩굴의 붉은 열매가 너무 예뻐서 화원에서 한 줄기 사왔습니다.
이렇게 예쁜 것들은 상품이 되어 잘려와 눈요기 장식품이 되고, 못생긴 것들은 여전히 들에 남아 이 추운 겨울 배고파하는 새들의 먹이가 되겠지요. 누구의 삶이 더 의미 있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기왕이면 또 다른 생명의 삶을 이어주는 먹잇감이 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겠지요.

언젠가는 저들도 붉은 빛을 잃어버리면 또 다시 흙과 만나겠지요. 그리하면 그 중에 일부는 싹을 틔우겠지요.

낮은 자들을 위해 오신 예수, 그는 이렇게 절망이 깊지만 희망의 빛이 남아 있는 곳에 오셨을 것입니다. 희망이 넘친다고 착각하는 곳이 아니라 지금 당장 힘겨워도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고 올바른 일이기에 절망적이지만 그 곳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곳에 오셨을 것입니다.

성탄절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
▲ 가락수산시장 성탄절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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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맞아 내가 서 있을 자리는 어딜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내 삶의 정황을 핑계대며 함께 있어야 할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래서 죄인입니다. 아기 예수 오신 그 곳에 몸이라도 가 있어야 했는데, 그곳에 서 있지 못했습니다.

성탄절의 의미가 상실된 시대, 아기 예수는 지금 저기 용산참사 현장에서 서울역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냉동창고에서 떨고 있는데 그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이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나도 그들 중 하나인지라 이번 성탄절이 우울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태그:#성탄절,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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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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